• 최종편집 2025-04-16(수)
 

그 봄에 있었던 일

 

민영

 

 

 

그 봄은 유난히 쌀쌀맞았다.

눈이라곤 오지 않는 항도 부산에

파편같이 예리한 눈발이 날려

입간판을 쓰러뜨리고 길에 쌓인 눈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1952년 꽃도 피지 않은 3월이었다.

부산역 플랫폼에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이 하역되었다.

지척에 있는 부두에서는 미국에서 온

수송선이 의기양양하게 고동이 울리는데

뼛속까지 얼려서 시멘트 바닥에 내던진

냉동인간이 누구이며 왜 죽였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기관차 뒤에 매달린 객차가

슬그머니 떨어져 나가고 빈 곳간차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자, 사람들은

그제야 이 강철로 만든 화물차가

냉동인간을 싣고 온 철마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황급히 죽은 자의

몸에 붙은 짐표를 살피기 시작했다.

 

구례부산, 남원부산, 곡성부산

하동부산, 산청부산, 거창부산

 

그렇다면 이 냉동인간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 역사의 고샅

지리산에서 왔단 말인가?

지금도 항쟁의 불길이 타오르는 산골짜기에

흰 눈으로 덮인 슬픈 전사들

때 묻은 꼬리표 가슴에 달고

말없이 누워 있는 그들이 누구인가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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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염무웅 선생님의 책 역사 앞에 선 한국문학에 실려 있는 것이며 선생님은 지리산 골짜기에서 숨진 수많은 빨치산들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는 어느 책에서도 그 답변을 읽지 못했다. 6.25 전쟁 전후 이 땅 곳곳에서 억울하게 처형된 수십만 민간인들의 원혼을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애도의 절차를 밟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들의 숨죽인 울음은 날씨만 궂으면 다시 돌아와 오늘도 한반도 전역에서 살아있는 사람들 가슴을 떨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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