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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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휩쓸고 가 잿더미가 된 하와이주 마우이섬 서부 라하이나의 주거지역. CNN 캡처(Patrick T.Fallon_AFP)

 

 

하와이 산불을 기억하십니까?

 

 

2025년을 맞이하는 지금, 저는 2023년 8월 하와이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때 하와이 마우이섬에 난 불은 하와이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난으로 기록됐습니다. 100명이 넘게 사망했고, 실종자만 1,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그 불은 허리케인과 극심한 가뭄 그리고 줄어든 강우량이 섞여 벌어진 ‘기후재난’이었습니다. 기후위기는 전 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산불과 홍수, 가뭄, 불볕더위, 태풍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 재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와이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까닭은 좀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예부터 작은 불을 이용해 큰불을 잡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전통으로 불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불행히도 1800년대 식민지 이주 정착민들이 들어온 뒤로 원주민들은 쫓겨났습니다. 불을 다루던 그들의 전통은 금지되었지요. 정착민들은 하와이 숲 나무 대부분을 베어 내 중국으로 목재를 수출했습니다. 벗겨진 숲에는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이나 파인애플 농장을 세웠지요. 하와이 식생에 맞게 자라 오던 토착종들은 마구 베어졌습니다. 이 농장들은 1900년대에 가격이 싼 외국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문을 닫았고, 농장주들은 목축업과 관광 개발로 눈을 돌렸습니다. 빈 농장엔 가축 먹이용으로 들여온 외래종 기니아그라스가 우거졌는데, 이 풀은 불에 잘 타는 성질이 있어요. 게다가 물을 많이 쓰는 골프장과 호텔이 늘어나면서 지역의 물이 사유화되고 독점적으로 가둬지면서 담수가 말라 갔습니다. 이렇게 습지가 건조해지면서 기니아그라스는 더 잘 퍼져 나갔죠. 결국 2023년 8월 허리케인 도라가 몰고 온 강풍으로 전신주가 끊어지면서 불씨가 퍼졌고, 마우이섬은 속수무책으로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소방관들은 말라 버린 소화전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난을 만드는 배경이 무엇인지 보이시나요? 그곳엔 생태적 지혜를 잃어버린 개발 광풍과 생명의 식민화가 있습니다. 땅을 돌보며 살던 원주민들이 쫓겨난 뒤로 오래전부터 천천히 그러나 계속해서 단일 작물 농장과 공장식 목축업으로 숲은 벗겨졌고, 관광 개발로 물은 가둬지면서 재해와 참사를 키울 조건들이 마련되어 온 셈입니다. 섬찟하게도 이 막개발과 식민화의 풍경은 지금 우리 눈앞에도 펼쳐지고 있습니다. 숲의 다양성을 지켜 오던 생태적 지혜는 무시되고 돈 되는 소나무만 심어 놓은 숲이 어떻게 되었나요? 작은 불씨에도 불이 쉽게 퍼져 대규모 산불로 번진 사례가 늘었습니다. 골프장을, 케이블카를, 양수댐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버젓이 나부끼고, 섬진강이 말라 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숲에 산악열차가 들어오고, 갯벌이 사라지고, 지역마다 공항이 새로 지어져서 무수한 생명이 쫓겨난다 해도 ‘돈이 되면’ 괜찮다 합니다. 재해를 재난으로, 참사로 키울 조건들이 우리 둘레에도 켜켜이 쌓여 가고 있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너무 힘들어서 개발을 부추기던 시대는 이제 갔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투자 유치 같은 허울 좋은 말들에 넘어가서 숲을 벗기고 물이 마르도록 놔두어선 안 되는 때에 이르렀습니다. 지리산을 경외하며 우리나라 첫 국립공원을 만들던 구례 사람들의 생태감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골프장이든 케이블카든 들어와서 한 사람이라도 더 돈 쓰고 가면 좋잖아” 같은 말에 생태적 지혜가 묻혀서는 안 되는 기후위기 시대입니다.

 

아시다시피 기후위기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이상기온 현상들로 큰 피해를 보았지요. 동해안 산불과 강남역 침수, 오송 지하차도 참사 그리고 2020년 우리 구례에서 일어난 수해까지 기후위기를 떼고 설명할 수 없는 기후재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기후위기로 자연재해의 세기와 수는 더 늘어날 거라는 경고가 여러 사례로 검증되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책은커녕 재해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지리산을 둘러싼 지역들은 어떤가요? 구례, 남원, 산청(함양과 단일화)은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며 저마다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남원시는 13.22km 지리산 산악열차를, 함양군과 하동군은 산 높이까지 올라가는 23.8km 벽소령 도로를, 또 구례군은 국립공원에서 겨우 170m 떨어진 숲에 27홀 규모 지리산 골프장을, 계족산 둘레엔 양수댐을 짓겠다 합니다.

 

지난 하와이 산불을, 그리고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기후재난을 지금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앞으로 빈번해질 자연재해가 더 큰 참사로, 더 큰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바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하와이 산불 재난이 벌어지기 전 조지 그린 하와이주지사는 주택난을 들먹이며 ‘건물 건축 시 불연재나 준불연재를 사용’하도록 정한 표준법 적용을 그만뒀습니다. 그 탓에 산불은 더 쉽게 건물들을 모조리 태울 수 있었지요. 이윤만을 좇는 정책들이 재난의 배경을 쌓아 오고 있다는 걸 밝은 눈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정책 결정자의 선택이 얼마나 큰 폭탄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지난 12.3 내란 사태로, 아니 여태껏 우리나라 역사상 계엄을 발동한 대통령들을 통해 넉넉히 깨닫지 않았나요? 전시 상황이 아닌데 전시 상황으로 인식한 군 통수권자는 파면되겠지요. 기후위기 비상상황인데 비상상황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어떻게 될까요? 내란범을 막은 주체가 깨어 있는 시민이었듯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지자체들을 막을 주체도 깨어 있는 시민일 것입니다. 지금은 기후위기 비상상황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 만나야 할 때입니다.

 

산과 강이 안전한 날들이 이어져야 우리도 비로소 안전할 수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재난을 키우는 조건들을 선택할 때가 아니라 생명과 생존을 선택할 때라는 걸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장소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더는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지금 선택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1월 두 번째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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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하와이 산불을 기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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