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 요즘은 어제 뭘 했는지 생각해보면 갑자기 기억나지 않거나 어제 있었던 일이 일주일 전처럼 까마득하게 여겨진다. 지나간 시간은 우주의 아카식레코드에 새겨지겠지만, 아카식레코드에 의식적으로 접속할 능력도 없고, 우연히 접속하더라도 그것이 창작이나 망상이 아닌 우주의 기록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기에, 매일 짧은 일기라도 써봐야지 해도 쉽지 않다. 연일 읽어야 하는 글들도 쌓여간다. 타인의 글을 읽는 시간만큼, 내 머릿속을 밝히는 시간도 있어야 할 텐데.
그래서 오늘은 일기가 아니라 일주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일주일마다 일주일기를 쓰자는 결심은 아니고 오늘 한 번만. 그래도 한번이 두 번 되고 세 번 될 수는 있겠지? 회상의 편리를 위해, 일주일기는 어제부터 시작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짧은 과거로의 여행.
오늘은 2월 26일. 어제 저녁에는 <함양산청시민참여학교 제 2강좌- 탄핵 이후 사회대개혁의 방향>에 갔다. 강사는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경영학 박사이시고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강의(2025)>,<기후위기 시대, 슬기로운 경제수업(2023)> 다수의 저서가 있다. 오늘 아이들 회원증을 만들어주러 산청도서관에 간 김에 검색대에 ‘강수돌’을 입력해보니, 무려 31권의 소장 도서가 있었다. 실제 저서는 더 많겠지. 간혹 산청도서관에 책을 납품하는데, 어제 오후 2시경 납품한 153권의 책 중 강수돌 교수의 신간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강의>가 있었다. 저자를 만나기 전에 읽어봐야지, 하고 열흘 동안 책장에 모셔두었지만, 영 시간이 나지 않아 몇 군데 슬쩍 펼쳐보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요즘엔 책을 눈으로 읽지 않고 손으로 읽는 거 같다. 검수, 진열한다고 몇 번 만졌으니 이만하면 그분의 주파수와 충분히 접촉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공감공감. 탄핵 이후에는 내란 세력은 해체되고, 거대 양당이 점령하고 있는 현재의 선거법에서 탈피하여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로 가야되고, 더 나아가 돈 없이도 살아지는 생태민주주의 세상이 되어야지. 자본주의가 이 정도로 기반 시설을 건설해놓고 경제 성장율이 낮아지면 확장과 개발보다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 두루 행복하게 사는 방향으로 가야지.
그런데 거기까지 어떻게? 이미 가시적 위기가 닥쳤는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정신을 차릴 것 같지 않다.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혁명밖에 답이 없는 걸까. 방법을 알고 싶다면 <자본주의와 생태주의 강의>를 읽어보면 되겠다.
어제는 도서관 납품 기한. 보통 마감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처리하는 편인데, 목록 중에 있던 빌 게이츠 자서전 <소스코드: 더 비기닝>이 출간예정작이라 기다렸다 주문해야 했다. 어제 아침에야 비로소 책이 도착. 시간을 절약시켜준다고 하면서 연일 이어지는 업그레이드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희대의 연금술사, 빌 게이츠. 소스코드라니, 프로그래밍 용어인줄은 알지만 마법의 암호 같은 어감. 빌 게이츠의 인생이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1분 펼쳐보고 도서관으로 직행. 강수돌 교수 책과 마찬가지로 손으로만 읽은 소스코드. 두 책 다 정독해야 거인들에 대한 예의일텐데.
<소스코드>를 눈으로 읽어봐도 30년 동안 빌 게이츠가 만든 창문 써보고 든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다. 시간=숫자=돈. 연금술사는 미래의 시간과 에너지를 현재로 끌어와서 돈을 만들고, 사람들의 시간과 삶을 통제한다. 빌 게이츠가 돈을 벌수록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느라 바빠진다. 지금도 빌 게이츠가 만든 창문에다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아이러니. 빌 게이츠, 당신은 왜 이름도 Gates(문), Bill(계산서)인 거죠? 문계산씨, 이제 새 창문 좀 그만 만들고 당신이 양산한 디지털 쓰레기나 어떻게 좀 해줘요, 제발. 당신이 가속한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다들 허덕였다고요. 이 정도로 시간을 끌어다 써서 전 지구를 바쁘게 만들었으면, 지금쯤은 우주가 홍해처럼 갈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AI디지털교과서가 논란이다. 산청에는 대안교육/육아 모임 ‘민들레’가 있다. 나름대로 역사가 오래된 모임인데 나는 2년 전부터 참여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모임을 갖는데, 2월에는 판타지 서점에서 모여 <오늘의 교육> 82호 특집 'AI디지털교과서, 엇나간 혁신'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의 교육> 지난호의 글들은 ‘교육공동체 벗’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비판적 지성의 무료 나눔. 지난 지리산사람들 동지모임에서 채효정 편집장이 전쟁위기, 금융위기, 기후위기를 오늘날의 3대 위기로 들며, 그러한 위기로부터 우리들을 지키고 생존할 수 있는 돌봄공간의 구축을 역설한 바 있다. 채효정 편집장이 빌 게이츠를 만나면 뭐라고 할까?
AI디지털교과서도 타인의 시간과 돈을 아껴준다고 홍보하면서 시간과 돈을 빼앗는 거짓말이지 싶다. 세계 최초, 혁신 어쩌고저쩌고 하며 정치적 성과로 삼고, 기술 개발해서 잘되면 특허로 쭉~ 돈 벌고 싶은데, 자금과 실험대상이 필요하니 교육예산과 아이들을 이용하는 거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난 세상이 똑똑해진 건지 잘 모르겠다. 더욱 다양한 정보를 어린 나이에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똑같은 아웃풋을 창출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와 더 많은 단계의 인풋이 필요해진 거 같다. 다섯 줄 짜리 레시피를 읽고 요리할 줄 아는 것과, 시청하는데 5분 걸리는 동영상을 보고 요리할 줄 아는 것 중 뭐가 나은 걸까? 전자는 본인의 요리 내공, 두 번째는 집적된 타인의 노동이 필요하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클릭하느라 손목 인대가 파열되는 현대의 디지털 노동자를 생각해보라.
일요일에는 백만 년 만에 서점 청소를 했고, 토요일·금요일에는 지리산사람들 총회가 성심원에서 있었다. 청소년 수련관에서 성심원으로 가는 둘레길 걷는 시간이 좋았다. 선녀탕까지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염소목장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성심원에서 준비해 주신 식사도 맛있었고 잠자리도 따뜻했다. 이번 총회에는 생수 공장에 의한 지하수 고갈 문제로 분투하고 계신 삼장면 주민들과 4계4U 사업으로 위기를 겪은 함양 대광마을 주민들도 오셨다.
작년에 있었던 경계 침해 사건의 결과로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회에서 만든 ‘평등문화약속문’을 우선 발표했다.
<지리산사람들 평등 문화 약속문>
1. 우리는 생명의 편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따르며, 뭇 생명을 착취하지 않도록 힘쓴다.
2. 우리는 경력, 나이, 성별,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소득, 외모, 장애, 종교, 출신지, 학력 등을 까닭으로 차별하지 않으며 서로 존중한다.
3. 모임 안에서 지위나 역할이 다르다고 해서 권리나 힘이 달라지지 않으며 모두 평등하다.
4. 나이에 상관없이 보통 높임말을 쓰고, 호칭이나 반말은 서로 의논해서 쓴다.
5. 겉모습, 나이, 성별 등을 기준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역할을 멋대로 판단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6. 우리는 저마다 신체적‧심리적 거리 혹은 경계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하지 않는다.
7. 소수자를 혐오‧배제‧비하‧조롱하는 말과 행동, 성차별적이거나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말과 행동, 겉모습을 평가하는 말과 행동에 반대한다.
8. 연애, 결혼, 임신, 출산은 필수가 아니며 저마다 신념으로 결정한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9. 이 약속을 깨뜨리는 행위가 벌어지면 누구나 행위자에게 문제를 말하여 그만두게 할 수 있고, 행위자는 의도와 상관없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넉넉히 사과한다.
10. 평등하지 못한 문화를 고치는 책임은 모두에게 있으며 문제가 생기면 함께 풀어 간다.
이제부터 회의나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약속문을 함께 낭독하기로 했다.
작년 사업 보고 후 새로 구성된 운영위원들이 인사하는 시간이 있었다. 앞으로 지리산을 지켜갈 사람들.


이번에 대표직을 내려놓은 윤주옥 선생님이 끝까지 진행을 맡아주셨다. 감사했습니다, 윤주옥 선생님.

목요일에는 서점의 피아노를 조율했다. 작년 9월에 당근에 피아노 나눔이 나와서 전문가를 불러 운반과 조율을 했다. 요즘엔 다들 운반이 편리한 디지털피아노를 사는 추세라, 운반을 직접 하는 조건으로 곧잘 나눔이 나온다. 무거운 중고 피아노를 사려는 사람이 없어 비싸게 주고 산 피아노를 비용을 내고 버려야 하기 때문. 이 피아노는 신품이 300만원이 넘는 모델이었는데, 사서 얼마 쓰지도 않고 수년간 방치되어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사용하지 않다가 장소를 옮기고 조율해서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음이 틀어져 버려 6개월 만에 다시 조율했다. 번거롭고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아이가 디지털 피아노는 소리가 마음에 안 든단다. 실은 피아노를 나눔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방과후수업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큰아이가 당근에서 피아노 나눔을 발견하고 집에 가지고 오자고 했던 것.
옮기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선선히 OK 했던 건, 피아노와 관련된 나의 슬픈 추억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한테 학교에서 나만 피아노 못 친다고, 피아노 쳐보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가 어떻게 피아노를 사니? 학원에 가려면 읍까지 가야 하지 않니? 그렇게 노동집약적인 악기는 나쁜 거야! 그런 건 칠 줄 몰라도 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많이 울었다. 도와주길 거절하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피아노를 쳐보고 싶은 마음마저 나쁜 걸로 비난하는 기분이었다. 질질 짠다고 또 야단맞았다.
한때 피아노가 계급의 상징이었던 적도 있었건만, 요즘은 아무도 안 가져가려는 애물단지라니. 여태까지 만들어진 노동집약적인 애물단지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애물단지들은 몇 세대를 갈 거라서, 필요한 사람에게 제때 전달되기만 한다면, 당분간은 새로 만들지 않고 모두가 같이 잘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돈을 벌기 위해 ‘더 좋은’ 업그레이드 제품들을 개발하고, 반영구적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일부러 부실한 소모품으로 만드는 일만 없다면. 그런데 돈을 안 벌기도 어려운 것이, 콘크리트 건물에 누워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지 않는가. 사람이 피아노, 컴퓨터, 포크레인, 케이블카를 뜯어먹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스나기를 씹어먹은 미셸 로티토(Michel Lotito, 1950.6.15 ~ 2007.6.25)나 빛과 공기만을 먹고 산다는 빅토르 뚜르비아노(Victor Turviano, 생존중)의 초월적 능력이 없으니, 매년 새로 생산해야 하는 동식물 먹거리 문제가 세계 3대 위기를 심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