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봉성 버들 사진 (2).jpg

 

 

감나무에 대한 예의

 

 

우리 구례는 단감과 대봉으로 이름난 고장이죠. 감 덕분에 살림을 이어가는 감 농부님들도 많습니다. 또 감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즐거운 이웃들도 많아 보입니다. 해마다 우리에게 감을 선물하는 감나무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살았을까요? 고려시대인 1138년에 고욤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하니, 짧게 보아도 고려 때에 이미 우리나라에서 감나무속 나무가 자라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나무는 제법 추위를 잘 견디지만, 겨울철 온도가 영하 25°C 이하로 떨어지면 다음 봄철에 가지가 부서지기 쉽고 새순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아시아 온대 지방인 중국 중북부, 일본, 한국 중부 아래쪽에서 주로 자라 왔지요. 그렇다면 더위엔 강할까요? 열대지방에도 감나무속 나무가 살고 있긴 하지만 감이 달리지는 않는다고 해요. 열대기후가 되면 감을 먹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해마다 불볕더위가 늘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2080년쯤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남도까지 아열대 기후구에 속하리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렇지만 울릉도 동해 연안에는 벌써 열대 어류가 나타났고, 지리산을 포함한 고산지대에서만 서식하는 구상나무는 말라 죽어 가며, 가을에 남쪽 나라로 날아가야 할 여름 철새들이 한겨울에도 우리나라에서 먹이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서 벌써 한반도에 열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사계절 내내 이어진 이상기후로 먹을거리가 사라질 수 있음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봄철 이상고온으로 사과나무는 보통 해보다 2주나 일찍 꽃을 피웠고, 뒤이어 닥친 늦서리로 꽃들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귀해진 사과는 한 알에 5,000원이나 하여 많이들 사과 먹기를 포기했지요. 배추는 어땠나요?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가을 들머리까지 이어진 데다 선충 피해까지 겹치면서 고랭지 배추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지요. 지난 추석엔 어땠나요? “이렇게 더운 추석은 처음이다.” 할 정도로, 기온이 30도를 넘었습니다. 당연히 추석 밥상 물가는 껑충 뛰었습니다. 게다가 벼멸구가 무섭게 퍼져 전국 논의 3% 정도가 누렇게 죽었습니다. 그뿐인가요, 11월 첫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려 수많은 농가 시설이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렇듯 한반도 열대화와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기후는 먹고 사는 일상을 어렵게 합니다. 앞으로 인류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2070년대에 사과는 한국에서 사실상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주식이 밥과 김치가 아닌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지구 기온이 계속 올라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권이 되면 쌀 그리고 고랭지 배추, 고추 같은 김치용 작물을 재배할 수 없으리라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동남아시아 같은 아열대 기후권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살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이렇게 빠른 기후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들은 멸종할 수밖에 없어요. 벌써 15분에 한 종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른 종들이 사라지면 현재 지구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인 인간 역시 살아남기 어렵겠지요. 참 슬프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2024년 들머리에 윤석열 정부는 국내 과일값 폭등 대책으로 해외 과일 수입을 크게 늘리기로 했습니다. 그해 상반기에만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모두 30만t을 무관세나 낮은 관세로 수입했습니다. 기후위기로 먹을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윤 정부는 사과 대신 바나나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감 대신 망고를 먹으면 될까요? 우리 구례 농부님들은 감 농사 대신 파인애플이나 망고 농사를 시작하면 될까요?

 

사과나 배추를 외국에서 들여오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자고요? 계속해서 먹을거리가 없어질 텐데요? 마실 물과 잠잘 삶터가 줄어드는 이 기후재난 시대에요? 그건 마치 구례군수님의 신년사에 나오는 “1조 4천억 원 규모의 양수발전소, 550억 원 규모의 지역활력타운, 12월에 착공될 오산케이블카, 온천지구에 들어설 산수유 스카이워크와 힐링꽃길, 화엄사 야간 경관 길, 밤에도 빛날 서시천 미디어 파사드 분수, 섬진강 그린케이션”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지역을 살려 줄 것이라 믿는 것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가져온 똑같은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풀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감 없으면 망고를 먹자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 감나무가 감나무답게 살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넓은 땅에서 한 작물만 키워 파는 산업형 농업과 목축으로 토양은 생명력을 잃어 갑니다. 강으로 흘러든 비료 성분은 해수면 아래에 산소가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녹조현상을 일으켜 강 생물을 죽게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뿌려진 살충제와 제초제는 벌처럼 가루받이를 돕는 생물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또 가축과 사료를 기르느라 숲을 없애고 엄청난 물을 써 왔습니다.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산업형 식량 시스템은 뭇 생명을 죽이며 오늘날의 이상기후를 불러들인 한 축입니다. 왜 이러한 대규모 산업형 농축산업이 전 세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먹을거리를 더 싸고 편하게 길러 대량으로 유통해야만 싼 임금으로 공장을 돌리고 더 소비를 부추길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을 버느라 밥할 시간도 내 먹을거리를 기를 시간도 없는 임금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지금까지 농업은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많이 키우기 위한 방식으로 생명을 죽여 오지 않았습니까? 돈만 있으면 1년 365일 삼시 세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삶을 뒷받침해 오느라, 돈만 있으면 가뭄에도 아랑곳없이 골프장과 수영장을 드나드는 삶을 지탱하느라, 숲을 벗기고 물을 써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감나무가 감나무답게, 흙이 흙답게, 강이 강답게 살려면 감을 망고로만 바꾸면 안 되겠지요.

 

돈이 주인인 삶을 지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숲이 벗겨지고 얼마나 많은 어린이 노동자가 죽었고 얼마나 많은 종이 사라졌는지를, 이제껏 우리는 내 눈으로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쉽게 그런 풍요를 고맙게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아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지구 밑에 잠들어 있어야 할 화석연료를 꺼내 펑펑 쓴 결과가, 또 돈이 되기만 하면 막개발이어도 환영해 온 결과가, 또 능력만 되면 끝도 없이 성장하는 게 제일이라고 경쟁을 부추겨 온 그 결과가 이제 불볕더위, 홍수, 태풍, 산불, 가뭄, 한파 같은 재해의 모습으로 그리고 먹을 것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감나무 덕에 살림을 이어 온 감 농부님들뿐 아니라, 수많은 나무 덕에 삶을 이어 온 우리 인간은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덕이 있다면 이제라도 기후위기를 막는 일에 함께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막개발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먹여 온 감나무에 대한, 나아가 지구에 대한, 예의이자 지구를 함께 사는 종으로서의 마지막 할 일이 아닐까요.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2월 입춘 호에 실렸습니다.)

 

 

 

BEST 뉴스

전체댓글 0

  • 00587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기후+마을] 감나무에 대한 예의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