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16(수)
 

도쿄의 봄은 매화로 시작해서 벚꽃으로 이어졌다. 나경은 일본에서 생활이 즐거웠다. 해야 할 일이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했다.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학교 공부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딱히 하고 싶었던 공부도 아니고 관심이 가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가 가라는 과에 입학했고 그저 그런 학점을 받았다.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도쿄에 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 나경은 종종 군대에 있는 수현에게 편지를 써볼까 생각했지만, 하지 않았다. 벚꽃이 피면 수현과 함께 걸었던 그길과 그시절이 생각났지만, 편지를 보내는 것은 수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경은 일본에서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도 나경처럼 학생이었다. 그들은 곧 동거를 시작했다. 도쿄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은 니시하라이근처였다. 그들은 쉬는 날이면 아라강을 산책했다. 주말에는 많은 아이들이 야구를 했고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의 치열함과 다른 일본 생활의 나른함이 주는 평화가 좋았다. 역사 민중 독재 권력 해방 이런 단어들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지금이 나경은 좋았다.

 

아라강은 이타마현에서 발원하여 하류에서 스미다강(隅田川)과 나뉘어 도쿄만으로 흐르는 길이 173km 강이다. 일본에서는 강폭이 가장 넓은 강이었고 수도 도쿄로 흘러 태평양으로 흘러갔다. 서울의 한강 같은 강이었다. 나경은 여기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크면 야구하는 아이를 보러 오고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고 때로는 조깅하거나 이자카야에서 남편과 술 한잔하는 평범한 생활을 꿈꿨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일본인이었다. 나경은 소심하지만, 배려심 많은 그가 좋았다. 하지만 나경의 아버지는 나경이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는 나경은 결국 그 남자와 헤어졌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다시 수현이 생각났다.

한국으로 돌아가 수현을 만나야겠다고 나경은 생각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수현은 1년 동안 공사판을 전전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집회장이 아니라 도서관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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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목숨이라도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이나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귀퉁이에 쌓여 있는 먼지 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현은 달랐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학내 분위기는 더 이상 학생운동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독재정권이 막을 내렸고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시기였다. 김영삼 정권은 학생운동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과거의 방법에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학부제였다.

 

학생운동의 기본이 되는 것은 학생회였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학생회를 찾아오기 마련이고 학생회 활동이나 엠티를 통해 친해지게 되고 그러다가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운동권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가 만든 5.31일 교육개혁안으로 학과가 사라지고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신입생들에게 학생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결국 학생회 역시 힘을 잃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수현은 학부제를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수현이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 학생운동을 하지 않던 학생들도 운동권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하고 복귀한 학교는 더 이상 그런 응원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과거처럼 거리투쟁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수현은 학생회실 캐비넷의 자신이 집회 때마다 들고 다녔던 쇠 파이프가 사라졌다는 것도 알았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선배 아직도 학생운동 같은 것을 해요?”

후배들의 이런 질문에 수현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수현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 날들이 이어 질 때 나경이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오랜만이야"

“잘 있었지!"

나경은 어제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말했다.

수현은 오랜만에 나경을 만난 것이 좋았다.


“선배 잘살았어요?”

“어, 너는"

“네 저도 군대 제대하고 뭐 이렇게 살고 있어요.”

“지숙이도 잘 있어?”

“아… 네 지숙이도 잘 있죠?”

“우리 같이 술 한잔하자”

그날 밤 지숙과 나경 수현 세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은 끝없이 술을 마셨다. 각자 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하지 못했다, 

지숙은 나경에게 물어야 할 말이 있지만 묻지 못했다.

수현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맥주에서 소주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끝을 모를 그들의 관계처럼 길고 깊었다.


다음날 새벽 수현은 일찍 잠에서 깨었다.

오늘 오후에 집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하는 가두집회였다.

 

총학생회는 다시 한번 학생운동의 불꽃을 살려보기 위해 가두 투쟁을 결정했다.

오후 1시 학생회관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민중가요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문선대의 공연이 있었다.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


문선대의 공연이 끝나자 풍물패들의 힘찬 연주가 시작되었다.

집회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학생회장과 투쟁국장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투쟁의 길로 나서려고 합니다.”

“그 동안 움츠렸던 우리 청년 학생들의 각오를 다시 보여줄 때입니다,”

“남한 사회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여전히 민주적이지 않고, 미군은 여전히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김영상 정부 타도하고 평화통일 이룩하자"

여기저기 집회가 그리웠던 고학년들과 처음 집회에 참가해 본 신입생들 이렇게 300여 명의 학생들이 학생회관 앞 민주 광장을 꽉 채웠다.


수현은  전날부터 집회에 사용할 화염병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후 2시 수현과 사수대 그리고 학생들은 교문을 나섰다.


경찰과 전경 그리고 백골단이 교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수현은 언제나처럼 제일 앞 자리를 잡았다.

점점 시들어가는 학생운동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버리기라도 하듯 전경과 사복 체포조, 페퍼포그까지 대동해 교문 앞을  꽉 막고 있었다.

총학생회는 여러 번 집회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허용하지 않았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안전과 교통 통제를 위해 교문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민주 경찰은 여러분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안전한 학내에서 집회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교문 밖으로 나오게 되면 경찰은 여러분을 즉각 해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웃듯이 사수대가 교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노동운동 탄압하는 김영삼 정부 물러가라"

수현이 맨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지숙은 멀리서 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는 언제나 같구나.. 지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자신이 떠날 때와 변하지 않은 한국 현실이 느껴졌다.

도쿄에서 보내는 동안 나경은 학생들이 집회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일본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민당 독재라고 해야 할 만큼 일본은 2차대전 패망 후 자민당 일당 독재였다. 

다른 정권이 정권을 잡은 적도 없다. 일본의 정치는 자민당으로  시작해서 자민당에 의한 자민당의 정치였다. 

하지만 68년 전공투 이후 일본에서 학생운동은 사라졌다.


하지만 나경은 이런 상태가 좋았다. 해야 할 일이 없고, 선택해야 할 일이 없다는 현실이 좋았다.

무엇을 선택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시대의 현실을 외면해도 미안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


한국에서 나경은 항상 선택해야 했다.

지숙은 수현이 오늘 집회에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전투경찰이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학생들이 교문 100미터 정도 나오는 것은 적당히 봐주고 시작했다. 

이 정도 거리는 집회 신고를 하면 대부분 받아 주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문 앞에서부터 막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만의 나름의 유효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더 나오면 전경들이 밀려오고 

그렇게 되면 뒤로 갔다가 나왔다 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쉬면서 공연도 하는 패턴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전경들은 학생들이 교문을 나오자 마자 입구부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늘 전경들이 이상해요”


수현도 오늘 전경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학생 지도부는 대오를 뒤로 미루어 교문 안으로 들어와 회의를 시작했다.


총학생회장 수철은 대오를 뒤로 미루자고 했다.

오늘 밀리면 내일도 없다고 투쟁국장이 말했다.

수현은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한 번 밀어 보고 적당한 선에서 오늘 집회를 마무리 하자.]


100미터가 안 된다면 50미터라도 밀고 나서 그 자리에서 집회를 이어가자고 했다.

오늘 처음 집회에 온 신입생들도 있는데 이렇게 밀린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집회에 나온 신입생들은 뒤로 가세요.

선배들이 앞에서 뚫어 보겠습니다.”

수현은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멀리서 수현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경찰 수사과장은 김충선은 학교 앞 5층 빌딩 옥상에서 수현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야…. 오늘 저놈 좀 놈 잡아"

수사과장은 수현을 잡고 싶었다.


[저놈이 오래전에 우리 전경 아이 하나를 죽일 뻔한 놈이잖아….군대 가서 안 보이더니 … 다시 쳐 나왔네.

저놈은 오늘 반드시 잡아야해..]다시 교문을 열고 사수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바로 전과는 다르게 뒤로 살짝 빠지기 시작했다.


‘자!! 우리 한 번 쭉 밀고 나가봅시다"


“통일운동 가로막는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

학생들 300여 명이 전경들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화염병 줘!”


전경들은 수현을 앞에 두고 쥐 앞에 고양이처럼 이야기했다.

“야 신병 네가 잡아봐….”“너도 대학 때 운동권이었다며….”

“잘 되었네”


신병 하나를 전경들이 수현 앞으로 밀었다.

수현은 갑자기 전경이 자신을 잡으려고 앞으로 나오자 전경의 전투모를 내리쳤다.

“윽"하고 전경이 뒤로 밀려났다.

“야. 이 자식아 이것도 못 해….”

그 순간 수십 명의 전경이 수현을 공격했다.

수현은 질질 끌려갔다.

수현의 하얀 티셔츠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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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키즈의 생애 10편 마지막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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