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마을을, 지구를 커머닝하라
2021년 4월 22일, 구례에서는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사건’이 있었어요. 이름하여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 이 사건은 우리 구례의 길이 자동차 중심이어서 정작 사람은 자기 발로 혹은 자전거나 휠체어로 지나가기 어려운 현장임을 깨달으면서 시작했어요. 여러 날 거리를 조사한 시민들이 구례의 거리가 얼마나 걷기 어려운지,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곳인지를 밝혔고, 그 뒤로 생태적 교통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모였지요. 여기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해진 덕분에 아주 짧은 거리긴 하지만, 그해 구례에서 조금 더 생태적이고 조금 더 안전한 길이 잠시 만들어졌던 사건이었더랬지요.
거리는 지자체의 것? 거리는 모두의 것!
그때 시민들이 만든 길은 단지 차 없는 거리만이 아니었어요. 그건 모두의 거리였고, 모두를 위한 거리였고, 모두에 의한 거리였죠. 무슨 말이냐고요?
이렇게 걷기가 어렵고 불편한 구례의 거리가 여태 바뀌지 않은 까닭은 거리가 ‘모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길은 나라님 것, 길은 지자체 관리 아래 있는 것’으로 인식해 온 탓에 ‘길은 시민들이 바꾸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모두의 것이었던 길이 지자체나 기득권 세력의 것으로 바뀐 거지요. 힘 있는 자들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소유물이 돼 버린 거예요.
그러니, 길을 어떤 주체가 지배하는 것 혹은 소유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버리면 좋겠어요. 길은 모두가 함께 돌보고 모이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장소여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2021년 구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차 없는 거리는 ‘모두의 거리’를 되찾는 경험이었던 거예요. 차가 주인인 줄 알았던 거리를 사람과 동물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요. 시민이 거리의 역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커먼즈로 기후위기 늦추기
지자체의 길은 매연이 가득해도, 위험해 보여도, 쓰레기가 쌓여도 대부분 신경 쓰지 않아요. 하지만 모두의 길이 되면 달라져요. 우리 모두의 길이니까 스스로 돌보고 가꾸게 되지요. 쓰레기가 떨어지면 누구라도 주워요. 위험한 곳이 있으면 누구라도 고쳐요. 누군가 힘겨워하면 길 가다 멈춰 도와요. 누군가 길 위에서 새 일을 시작하면 함께 맞이하고 응원해요. 또 나무도 심고 꽃도 가꾸어 길 위아래 모든 생명에게 이롭게 해요. ‘길은 모두의 것, 길은 우리의 것’이라는 마음이 바로 변화를 만드는 밑바탕이에요.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의 것을 함께 돌보고 가꾸는 이러한 마음이 더욱 주목받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를 커먼즈(commons) 혹은 커머닝(commoning) 같은 말로 불러요. 커먼즈는 우리말로 공유지, 공유재, 공동자원, 공동자원체제, 공통재, 공통장, 공통계 같은 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딱 들어맞는 한 단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만큼 다양한 방식을 의미하겠지요. 제 생각엔,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돌보는 무언가 혹은 함께 돌보고 함께 살자는 삶의 양식을 만드는 행동을 뜻하는 듯해요.
우리 거리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지금까지 길은 차량 중심으로 쓰였고, 길의 역할을 행정기관이 정해 왔지만 길을 시민이 함께 돌보는 커먼즈로 본다면 완전히 다르게 쓸 수 있어요! 지금과는 다른 길을 상상해 보세요.
차가 막고 있던 도로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어요. 도로 일부를 녹지, 정원, 텃밭, 빗물 정원 같은 생태 커먼즈로 바꿀 수도 있지요. 남성-젊은이-어른-인간 운전자 중심의 공간이던 거리를 모든 보행 약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는 거예요.
길의 ‘사용권’을 시민에게 돌려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 시민들이 스스로 거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어요. 시민, 상인, 행정이 함께 운영할 수 있겠죠. 청년들이 원하는 거리, 어린이가 원하는 거리, 예술가가 원하는 거리, 선생님이 원하는 거리가 다 다르겠지만 천 명이 있으면 천 개의 거리가 탄생하도록 함께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그런데 길을 커먼즈로 되살리려는 노력이 또 하나의 ‘소비, 경쟁, 유흥의 공간’을 만들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제가 제시하고픈 커먼즈로서의 길은, ‘아는 이들을 만나 속닥거릴 수 있는 공간, 내가 직접 기른 작물이나 직접 만든 물품이나 작품 등을 가져와 팔고 나눌 수 있는 공간, 기후정의 팻말을 들고 행진할 수 있는 공간, 재난 상황에선 돌봄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자립기술을 공유하는 공간, 새로운 삶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 청소년과 청년이 다른 삶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차 없는 거리로 끝날 게 아니라, 생태적 위기를 초래한 지속 불가능한 삶의 양식들을 반성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거리로 거듭나야 진짜 ‘모두의 길’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로 다섯 번째 맞이하는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을 주목해 주세요. 올해는 장날에 맞추어 4월 23일에 할 예정이래요. 아이들이 모여 거리 쓰레기를 줍고, 지구가 불타는 상황을 알리며 모두의 것을 모두가 돌보자고 외치는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기후위기를 늦출 수 있는 실마리가 아니겠어요? 23일에 거리에 나와 외쳐 주세요. 이 거리를, 이 마을을, 이 지구를 함께 돌보자고요. 어린이들에게뿐 아니라 동식물과 지구에게도 안전한 거리, 나무와 새가 행복한 거리, 아이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거리를 만들자고 말이에요.
구례 경찰서 로터리에서 군청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바뀌면 어떨까요? 챗GPT와 함께 만든 생태적 거리 상상도입니다.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4월 청명호에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