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08(일)
 

작년 여름 피아골 계곡에서 한가롭게 보내던 한낮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 딱 봐도 더위에 지친 얼굴로 마주한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찬물을 몸에 끼얹었다. 어허이- 소리가 절로 나고 한 걸음 한 걸음 물속으로 들어가다가 에라이 풍덩 몸을 넣으면, 도대체 언제 더웠나 싶다. 한순간에 뼛속까지 얼어붙는 차가움.

한참을 놀다 추워지면 뜨끈한 바위 위에 누워 햇볕에 몸을 노릇노릇 지진다. 그럼 이런 생각이 든다.

, 나는 이런 여름을 보내려고 구례에 왔구나.

이 세상을 거쳐, 또 거쳐 지금 내가 폭 안긴 이 물은 지리산에서 흘러온 물이다. 자연이 만든 계곡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통실 통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진 파란색의 하늘.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친구들이 아직 물속에서 노는 소리. 이런 시간을 통해 서서히 알아갔다. 지리산의 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얼마 전에는 산청군의 대원사를 찾았다. 초여름 아직 신록이 완전히 짙어지지는 않아서 연둣빛이 물씬했고 올라가는 내내 점점 기온이 낮아지며 바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산속에 고요히 위치한 아담한 사찰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시간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대원사는 흐트러진 부분이 하나도 없이 정갈했다. 천천히 공간을 둘러보고 내려가려는데 나 물이야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 물이야 라는 말도, 글자도 너무나 귀여웠다...! 대원사의 약수터였다. 해외에서 온 물 소믈리에가 극찬을 했다는데 안 마셔볼 수가 없었다. 손을 둥글게 만들어 물을 받아 마셨다. 기분 탓일까? 눈이 번쩍 뜨였다. 화학적 맛과 향이 전혀 없이 달고 시원했고 무엇보다 목 넘김이 무척 부드러워서 놀랐다. 몇 번을 연거푸 마셨다. 몸이 아프면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라는 말이 이해됐다. 이 물을 계속 마시면 내 몸 안의 뭔가가 정화될 것만 같은 강한 느낌이 들었다. 해발 700미터에 위치한 대원사는, 같이 간 선생님의 말마따나 상부 오염원 제로이니까, 물이 깨끗하고 좋을 만했다. 과연 지리산 약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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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왜 지리산에는 약수가 많을까. 지리산은 중생대 지각운동에 의해 형성된 복잡한 암석 지대이다. 빗물이 깊은 암반층으로 스며들고 오랜 시간 동안 여과 정화되어 약 알칼리성이며 칼슘과 마그네슘, 칼륨 등 미네랄이 들어있어 건강에 이롭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역시 의학적으로 효능이 검증되어 있지는 않으니 맹신하진 말지어다

무엇보다 약수는 정신적 부분과도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약수를 쉬이 얻을 수 없었다. 높이 올라야 하고, 물통을 짊어지고 가되 내려올 때는 그 안에 꽉 차 있는 물 때문에 더욱 힘들게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약수를 기르는 여정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한 여정이자 수행이었을 것이고, 약수가 필요한 가족 등 누군가를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쉽게 얻기 힘들기에 더욱 소중한 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 쉽지 않은가. 너무 쉽게 취수하고, 너무 쉽게 돈으로좋은 물을 얻는다. 언젠가부터 물은 상품이고 그 상품을 많이 팔수록 이윤이 남는다. 바로 기업에게 말이다.

아이러니하다. 산청의 맑고 깨끗한 물을 너무도 쉽게 취수하는 것이. 물이 좋으니 취수량이 늘어나고, 결국 물이 마르는 것이. 그리고 그 이득을 생수 기업이 취한다는 것이.

 

작년 겨울, 산청군 삼장면 주민들이 지하수 고갈 문제를 공론화하고 싸움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장면에 위치한 생수 공장, 엘케이샘물과 지리산산청샘물은 매일 최대 1천톤의 물을 취수하고 있다. 지리산산청샘물은 20242, 기존 600톤 취수량에 더해 추가로 600톤을 증량하는 임시허가를 받았다. 날이 갈수록 피해가 심해지는데 이렇다 할 속 시원한 답변을 받지도 못한 상황에서 주민들의 속도 말라갔다. 지하수를 길어 올리던 모터가 탔다. 생수를 실은 덤프트럭이 땅을 울려대며 하루에도 수백 번 지나갔고 집 벽에 크랙이 생겼다. 지하수 수도를 틀면 흙탕물이 나왔다. 하지만 면, 군단위 행정기관은 주민의 의견에 기반한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2024년 초, 지역 주민 몇몇이 모여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한 이유다.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어떤 의사도 공적으로 표출할 방법이 없기에. 그러니까 문제가 문제로 다뤄지지 않았기에. ‘이 대로는 못 살겠다는 설움이자 답답함도 있었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위원들에겐 어떤 결단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온 산청에서 앞으로도 잘 살아갈 권리를 쟁취하겠다는 결심. 삶의 터전이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마음.


 

지리산사람들 회원 활동으로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의 활동 기록을 읽어보고 있다. 2024년도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는데, 자료가 무척 많다. 표재호 위원장님 장 연구소에 가면 홀 한 쪽에 위치한 3개의 테이블 위에는 자료가 겹겹이 쌓여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셨구나-’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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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문제는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물이 좋은 산청에 살기에, 그 물이 상업적으로 이용되었고, 그 현장에 살기에 누구보다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앞장서서 문제 제기를 시작한 것이니까 어쩌면 이 기록으로 지하수와 관련한 문제들을 톺아보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한 공부가 되지 않을까. 2080년 한국에서 300만 명이 지하수 고갈을 경험할 수 있다는 국내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하수 수위가 계속 낮아져서 지하수를 얻는 데 어려움은 계속 배가될 것이다.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의 활동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깊고 넓다. 지하수 고갈로 인한 지역 주민의 피해와 더불어 더 복잡한 문제에 가닿을 수 있다. 생태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떻게 같이 가는지, 또한 생태계 보전을 위해 시군구 및 마을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숙고를, 삼장면의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역량은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표재호 위원장 이하 대책위 분들처럼 열정을 가지고 지역 문제에 접근하는 주민들을 만나는 것 또한 내게는 큰 배움이다. 짧은 기록으로나마 참여해보고 싶다. 부족한 점은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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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지하수 이야기] 나 물이야, 지리산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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