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13(일)
 

연일 35도에 가까운 무더위가 지독했던 여름의 불볕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다. 

수현은 논에 나가서 벼를 살폈다. 찬바람이 불자  이삭이 통통 살을 불려가고 있었다. 


“이제 곧 수확을 하겠구나”


아빠. 

어..

수현은 어느새 커버린 딸을 바라봤다.

현주와 자신을 닮은 아이 늘 떠난 엄마를 그리워 했지만 애써 내색도 하지 않은 착한 딸이었다. 

수지야.. 

“이제 곧 수확 할 거야”

그러면 가을이고…

가을이 오면 우리 수지도 3학년이 멀지 않았네…


수지는 수현의 자전거 등뒤에 달라 붙었다.

아빠. 

왜..

아니요. 그냥 아빠라고 부르는게 좋아서요.

그래 우리 수지….

수현은 수지를 바라보면 자신이 수지를 키우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처음 아이를 키울 때 힘들었던 시기가 떠올랐지만, 아이는 삶의 목료를 잃고 방황하던 

수현에게 목표가 되어 주었고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빠. 제가 아빠를 위해서 오늘 요리를 했어요.

수현이 논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수지는 가끔 반찬을 만들었다. 

수지야 .. 수현은 네 엄마를 닮아서 요리를 잘하는 구나..라고 하려다가 말을 멈추었다.

엄마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엄마 이야기를 할 수없었다.


수현은 딸이 만든 반찬을 먹으면 떠난 현주를 생각했다. 

자신이 현주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아빠 우리 학교에 석민이라는 오빠가 있는데요?”

“어”

“그래 그 새로 전학온 아이구나"

“네"

“그런데요"

“어"

“좀 엉뚱한 데 재밌어요"

“아는 것도 많고… “

“그래"

“잘해줘라 수지야"

“네"


“아빠 내일이 운동회 날이에요”

“아빠 오실거죠?’

“그래"


수지가 다니는 학교는 학생수가 40명이 되지 않은 작은 학교였다. 

운동회날이 학부모 학생 교사가 모두 참가했다. 


농사로 바쁜 수현도 이 날 만은 꼭 참가했다. 수현은 시골에 내려와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일에 참가를 부탁해도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동회는 참가하지 않으면 매일 딸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고 사랑하는 

딸이 맘이 아픈게 싫어 매년 운동회에 참가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인사를 해야 하고 가끔은 왜 여기서 사는지 

왜 그렇게 사는지 불필요한 질문을 받는 것이 싫어 수현은 운동장 귀퉁이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수지가 수현을 찾으면 겨우 손짓을 할 뿐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운동장에 있다가 수지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그날도 수현은 귀퉁이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아이를 붙잡으러 다니는 학부모 한 명을 봤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석민아..  석민아.. 교장 선생님 이야기 하시는데 가만히 있어야지..

아이는 엄마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운동장을 종횡무진 달리고 있었다.

아이가 수현의 앞으로 달려 왔을 때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석민을 붙잡았다.


“아… “


수현과 나경은 눈이 마주쳤다. 


“수현아"

“나경선배"

“어.. 오랜만이야"


선배가 여기 왜…

어.. 아이가 이 학교로 전학왔어…


“ 아 그러면 석민이가 선배 아이였군요"

“아.. 그래"

“어떻게 알아?”

“제 딸이 가끔 석민이 이야기를 해서요”

“수지?

“네"

“어떻게 알아요?”

“학교에 왔을 때 그 아이가 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역시.. 수현이 네가 맞았구나.. 수지 아빠"

‘수지 엄마는 안 왔어?”

“아.. 네"

“그냥…”


한국에는 언제 왔어요?

일본 생활은 어떻게 하구요.

너에게 처음 만나자고 했던 때 나 그때 이미 이혼했어…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기 너무 힘들어서…

우리 석민이 봤지..

막 뛰어 다니는 거… 

우리 아이 장애가 좀 있어…

그래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그래서 시골에 내려오신 거예요?

어..

내가 아는 시골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 여기 오니까 서울에서는 아무도 안 받아주던데 여긴 좋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여기 오게 되었어.

이 학교는 교육청에서 추천 하더라..

아이도 별로 없어 아마 좋아 할 것이라고 하더라구.


그랬군요.

수현이 너는 여기서 뭐해?

저요.

농사요.

농사?

네.


뭐 잘 어울린다.

힘도 좋고 농사도 잘 할 것 같은데?

그래보여요.

그래

논 농사 조금 짓고 살아요. 


수현아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 하자

나 석민이하테 가봐야 할 것 같아….

우리 아이가 좀 특별 하거든

네. 선배.


나경은 운동회의 마지막 계주 주자가 된 석민이를 향해 달려갔다. 

수현은 아들을 향해 달리는 나경을 보면 오래전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경이 떠나던 날의 광안리 앞바다 

부산의 해운대 여관방 그리고 담배 냄새 수현은 학교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또 한 모금 담배는 서둘러 필터까지 타들어 갔다. 

수현은 갑자기 머리가 핑 돌았다. 수현은 가끔 머리가 아팠다. 

논에서 피를 뽑다가 일어나면 머리가 어질했다. 

병원에서는 빈혈이 있다고 했다.  수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현이 쿵하고 쓰러졌다. 나경은 수현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 

석민이와 수지의 손을 잡고 수현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수현아.. 수현아!!

수현이 깨어 난 곳은 읍내 병원이었다. 

아. 선배.. 

여기 제가 왜…

어..너 큰일 날뻔 했어

왜요.

너 쓰러졌던 거 기억 안나 아… 그랬군요.

요즘 머리가 좀 아프더라구요.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빈혈에다가 먹는 것도 부실하다고… 

이 좋은 시대에 영양실조가 뭐냐?

아.. 요즘 귀찮아서 밥을 안 먹고 일만 해서 그런가봐요. 

수현은 부쩍 야윈 모습을 본 나경은 마음이 아팠다. 


대학에 다닐때 수현은 항상 강한 모습이었다. 

집회가 있어도 가장 선봉에 서 있었다. 전경이 달려와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강철 처럼 보였던 수현이었다.  

긴 세월동안 수현의 야윈 모습이 나경은 마음 아팠다.  


나경은 보호자 의자 앉아 있었다. 수현의 딸과 

그리고 석민과 함께 수지는 석민과 함께 놀고 있었다. 

석민오빠 가위 바위 보 게임하자.. 그래.. 

석민오빠 끝말 잇기 하자.. 그래

수지가 이야기 하면 석민은 그래라고 답했다.

수현은 놀고 있는 수지와 석민을 봤다.

좋아 보였다.


그 사이 담당 의사가 왔고 영양제를 다 맞으면 퇴원 해도 된다고 했다. 

병원 응급실 간호사가 수현의 팔에서 주사바늘을 뺐다.


우리 어디가서 저녁이라도 먹어요?

그래 수현아….


수현과 나경이 병원에 나오는 시골읍의 식당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시골은 밤은 도시보다 일찍 시작했고 가게들은 7시가 넘으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제 갈 것이라고는 야식집 뿐이었다. 

선배 이 동네에 이 시간에 갈 수 있는 가게는 야식집 뿐인데요. 


그래… 그럼 우리집에 갈래

지금요?

늦었어요. 

그냥 야식집에 가요?

그래


수현과 나경 그리고 아이들은 나경의 차에 탔다.

병원과 야식집이라고야 해봐야 차로 5분 거리도 되지 않았다. 

야식집에서 제육볶음을 시켰다. 아이들이 먹을 만한 메뉴는 그것 뿐이었다. 

수지와 석민은 같은 놀이를 반복했다.


“수지 엄마는?’

“우리 엄마요?’

“저 어렸을 때 떠났어요"

아… 그랬구나.

미안

아니에요.

전 아빠로 충분해요.

근데 아줌마

우리 아빠랑 친구에요?

어…

학교 다닐때 친구였어

아.. 

여자친구요?

어…..

아니…. 


나경은 수지의 당돌한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어쩌면 맞아라고 대답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수현을 좋아했지만 고백하지 못했고 이제는 고백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수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키우는 자신이 수현에게 부담이 갈 것이 뻔했다. 

발달 장애아를 키우는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그런 아이를 키우는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한 다는 것은 사치일뿐이었다. 


나경은 수현과 헤어지고 집에 들어와 한 참을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수현에게 잘 들어갔어라고 문자를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문자를 보내는 것도 전화를 하는 것도 

나경은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이어지면 자신이 수현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수현은 운동장에서 나경을 만난 이후 계속해서 나경을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했던 유일한 사랑은 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수현을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시골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반짝이는 별들은 모두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생각이 났다. 스스로 빛이 나면 항성, 그렇지 못하면 행성이었다. 

스스로 빛나는 별은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뜨거운 별이고, 

빛이 나지 않는 지구엔 수없이 많이 생명들이 살고 죽어간다. 

수현은 자신이 했던 일들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중 스스로 빛나는 시간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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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7편 “다시 시작 할 수 있을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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