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나무 없는 거리, 인권 없는 거리

 

 

구례군에서 살면 나무를 꽤 많이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지리산이나 봉성산에 가지 않는 한, 일상에선 다양한 나무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길가의 나무는 집 밖으로 나와 처음 마주하는 자연입니다.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가 정작 길에 자연이 별로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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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늘어선 나무가 거의 없어 한여름 땡볕에 고스란히 달궈진 구례군의 거리들.

 

 

 

나무 없는 길은 반인권적

 

길거리에 늘어선 나무는 봄부터 푸르른 녹음으로 마음을 달래 주고, 여름엔 뜨거운 태양 빛을 가려 주고, 사계절 변화를 느끼게 해 주지요. 아시다시피, 기후위기 시대에 길거리 나무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나무가 늘어선 도심 녹지는 나지보다 온도가 평균 3~7도 더 낮고 습도는 9~23% 높습니다. 또 미세먼지를 평균 25.6%, 초미세먼지를 평균 40.9% 줄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길에 늘어선 나무는 맑은 공기와 시원한 그늘을 만들며, 또 동물과 곤충이 살고 쉬고 먹이를 구하는 보금자리가 되어 도시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데도 도움을 주지요. 나무 길은 한여름 불볕더위를 줄여 주어 동식물과 인간 모두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구례의 거리에서 나무 한 그루 보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구례엔 일단 보행로가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있는 보행로에도 나무가 별로 없습니다. 커다란 나무 없이 땡볕을 고스란히 받아 달궈진 아스팔트와 시멘트 길은 걷는 이들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렇게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나무 하나 없는 길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웬만하면 자동차를 덜 타려는 자발적 뚜벅이들을 탄소 유발자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운전하기 어려운 어르신이나 장애인과 차가 없는 어린이 청소년은 선택지조차 없이 그저 이 열기를 참으며 걸어야만 합니다. 가로수가 없는 길은 반인권적입니다.

 

 

주차장 말고 녹지를 주세요

 

불볕더위 날 수는 더욱 늘 거라는데 구례도 이런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나무를 거리 곳곳에 심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동차를 덜 탈 수 있는 교통정책과 보행로 역시 먼저 만들어져야 할 테고요. 그런데 어떻게 보행로와 가로수가 늘기는커녕 계속 주차장만 새로 만들어지고, 자동차 타는 이들이나 멀리서 오는 관광객을 위한 정책만 있는지. 구례군은 실제 구례에 사는 사람을 위한 녹지 공간을 늘리고, 보행로에 나무를 심어 보행 약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때입니다.

 

 

도시숲과 거리 나무를 늘리기 위해

 

2021610일부터 시행된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도시숲법)과 시행규칙에 따라 구례군은 20251월에 구례군 도시숲 등의 관리지표 측정·평가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구례군 도시숲 28개소와 가로수 14개소를 목록화해 조사 결과를 내놓았는데, 결과가 좀 의아합니다.

 

보고서 속 표준지들 상당수가 시민들의 활동 공간 밖의 장소였습니다. 구례군이 발표한 보고서의 목적은 도시숲의 변화상을 모니터링 및 평가하여 도시숲 조성·관리 계획 방향성 제시인데, 시민들이 찾지도 않고 갈 수도 없는 곳들을 표준지로 선정해서 조사하고 그걸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의아합니다.

 

예를 들면 한 달에 한 명이라도 올까 싶은 백련마을숲이나 까막정주차장공원, 밤재산수유공원, 청마기후대응도시숲, 이걸 숲이나 녹지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군청 앞 교차로 경관숲, 녹색쌈지숲, 터미널 녹지, 그리고 생활권과 동떨어진 백두대간생태교육장, 공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봉북어린이공원, 구례노인회관 이런 곳들이 도시숲 표준지였고, 가로수 표준지 역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차로 바로 옆이 많았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생물다양성 항목을 빼고는 생태적 건강·활력도, 사회·경제적 편익, 유지관리 항목에서 전반적으로 우수하거나 양호 평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도시숲법이 제정되고 그 시행규칙을 만들어 활용하려는 배경에는 산업화, 도시화 등의 부작용인 미세먼지 농도의 증가, 기후변화로 인한 불볕더위 증가 등이 국민의 일상생활과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권 숲이 늘어나야 한다는 과학적 사회적 요구가 있습니다. 구례군도 이런 문제의식을 깊이 느껴 시민의 일상에 푸르른 녹지를 제공하고, 거리 자체가 기후변화 적응과 대응에 맞게 변화할 수 있게 도시숲을 제대로 갖추고 평가함으로써 관련 정책을 펴 주시면 좋겠습니다.

 

구례군의 생활권 도시숲은 정말 모자랍니다. 시민들의 녹색 수요를 충족시킬 수도 없고, 도시생활권 환경 문제를 해소할 수도 없습니다. 보행 약자들의 인권마저 침해할 정도로 거리 나무도 없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이 마을에 사는 시민을 위해 시민들이 바라고 공감하는 방향으로 도시숲, 마을숲, 경관숲, 학교숲, 가로수가 만들어지고, 시민들과 함께 가꿔 가면 좋겠습니다.

 

 

 

버들 (독립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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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 나무 없는 거리, 인권 없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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