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지하수 이야기] 작은 동네, 목소리 내기, 민주주의
파커 J. 파머의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는 말한다. 아이 한 명을 기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대화에서 우리의 생각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나의 개념을 현실로 변화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모으기 위해서, 심지어 가장 고독한 형태의 창의적인 작업을 자극하고 지지하기 위해서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구례에 살러 오기 전에 나는, 서울 상왕십리역 근처의 오피스텔에 지내며 회사를 다녔다.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람은 배달기사였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가끔씩 화장실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랐을 뿐이다. 구례에 살며 내가 놀란 것은 ‘마을에 산다는 감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광역시 아파트에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파트에 오래 살았고 중간에 고시원과 오피스텔에서도 살았다. 아주 어릴 적에는 마을에 살았다곤 하는데 다섯 살 이전이라 기억에 남아있는 건 어렴풋한 풍경 정도다. 집 밖으로 나서도 아는 사람, 읍내에 나가도 아는 곳들. 얽혀있는 사람들, 마주치면 인사 나누는 이웃들. 구례살이는 새로운 인간관계망을 배워가는 일이기도 했다. 익명성이 기본값인 도시와 너무도 달랐다. 아는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감각이 생겼다.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썼던 소설가가 말했던가. ‘작은 동네에 살면 사람들이 서로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덧붙인다. 사실 서로를 절대 전부 알 수 없다고.) 어디를 가도 몇 번 얼굴이 낯이 익나 싶으면 사람들은 물어봤다. “근데 어디 산대요?” 어느 마을이라고 하면 그 동네 아는 사람이 꼭 있을테니,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곧 아는 사람이니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것일테다. 하지만 나는 극 내향인으로서 그런 질문에 편하게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혼자 산대요?” “뭐하고 산대요?” “일은 나간대요?” 나는 특유의 ‘아하하하하하...’ 웃음 권법으로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피한다. (절대 싫어서가 아니다... 그냥 항마력이 딸리는 것일 뿐!)
말하고 싶은 것은, 작은 동네에 살면서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다는 말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고, 내 근거지와 생계,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 대충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쉬운 말로 약점이 드러나기 쉬운 조건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위험 감수가 배로 드는 일이다. 나의 어떤 것을 걸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삼장면의 지하수 관련 이슈를 톺아보고 산청을 방문하며 느낀 점은, 이것이 마을 내에 일어나는 갈등이라 더욱 정교하게 언어화되고 가시화되며 동시에 공적으로 다뤄지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노골적인 충돌’보다 관계의 얽힘과 암묵적인 규칙이 은근하게 작동해서 더 어렵다. 갈등이 노골화되기 전 관계망을 따라 조용한 편 가르기가 시작되고 누가 어느 편에 섰는지 ‘은근히’ 드러난다.
생수공장과 주민들간의 1:1 갈등이라면 오히려 단순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다양하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먼저 마을 내에서 생수공장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취수 증량에 찬성 입장으로 사인을 해준 이장단 중 일부다. 그리고 그들 중 핵심인사는 각종 사회단체협의회 장들일뿐만 아니라, 마을 내에서 입지도 강하다. 게다가 집성촌인 곳에서는 가족 단위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농사를 직접 짓기엔 건강 문제가 있어 어르신들의 밭을 기계로 농사를 지어주는 이들이기도 하다. 마을 내 ‘힘’이 작동하는데, 이는 공식적이라기보다는 비공식적 권력 구조처럼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을 주민들의 진짜 의견이 자연스레 표출되기 어려운 상황인 듯 보인다. 관계 단절이 곧 생존 단절로 이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의 발족과 활동은 놀랍다. 이분들은 삶의 터전의 많은 부분을 걸고 싸운다. 마을에서 입지가 흔들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거니와, 원래 형-아우 하던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며 살아가는 마음의 생채기도 말로 다 못할 것이다. 2024년 10월경, 표재호 위원장은 삼장면주민자치위원회 2개월 남은 감사에서 위촉 해제당한다.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치중해서 자치위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정족수를 다 채우지 못했거니와 기본 절차를 지키지 않아 해당 위촉 해제는 무산되었지만 이 일로 표 위원장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마을에서 지금껏 살아온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이지 않았을까. 드러난 사건도 이럴진대, 꺼내놓기 쉽지 않은 심적 증거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사진 출처: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
처음에 나는 이런 일들이 ‘마을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예’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정보가 제한된 소수에게 독점된다. 그들이 투명한 일처리를 하지 않기로 ‘결심할 때’ 주민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당한다. 민주주의의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표재호 위원장과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가 지금껏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근거를 모아 온 일은 절실했고 필사적이었다. 그들이 1년 반 넘게 집요하게 파들어가니 이 정도라도 ‘무리한 지하수 개발에 따른 주민의 삶터와 생태에 대한 위협’이라는 논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즉, 비대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론장’을 만든 것이다. 그것이 민주적 과정을 무서워하는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론장이 만들어지니 민주주의는 놀랍도록 대단한 일을 했다. 바로 주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비대위분들은 공부했고, 민원서를 썼고, 각종 행정기관에 연락했으며, 언론과 접촉하고, 시민단체에 자문을 구했다. 이런 일들의 성과로 비대위는 최근 국회에 갔다. 환경부와 간담회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이야기도 다음에 쓸 예정이다) 그래, 이 모든 과정은 완벽하게 ‘민주주의의 존재 증거’였다.
(사진 출처: 삼장면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
갈등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존재 근거이다. 갈등 속에서 사회는 부단히 앞으로 나아왔다. 호주제 폐지 이슈가 번뜩 떠오른다. (나라 망한다던 사람들, 다 잘 살고 계실 것이라는 데 500원을 걸겠다)
다만 민주주의의 부재는 이럴 때 일어난다. 첫 번째, 오히려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때다. 마을도 공식적으로는 주민총회, 마을회의, 이장 선출 등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를 갖추고 있다. 문제는 형식만 있고 실질적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비공식 권력구조에 의한 민주주의 무력화가 더 정확한 문제의 원인일 것이다. 왜곡된 민주주의는 ‘사적 이해관계’가 앞설 때 쉬이 벌어진다.
민주주의의 부재 두 번째, 갈등을 조정하고, 토론할 공론장과 공적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 때 일어난다. 비대위는 몇 번이고 산청 군수와 낙동강환경유역청, 환경부에 민원서, 호소문를 제출했다. 산청군의회가 ‘지하수 보존 결의서’를 채택하고, 군수 역시 ‘지하수 보존’으로 공식 입장을 내는 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행정 기관에서 더욱 빠르게 공론장을 만들고 투명하게 의견을 나누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비대위가 접촉한 그 수많은 행정기관을 돌아보면 이 지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다.
마을은, 가장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생각을 시험할 가장 최소단위의 사회다. 작기에 빠르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의 수많은 의사결정을 원하는 주민 누구나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을 공시제도’ 법제화는 어떨까. 물론 수많은 행정 비용이 들 것이고, 마을 이장도 불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또한 주민 다섯 명 이상이 서명하면 마을 회계, 외부 계약 등에 대해 지자체에 감사를 요청하는 조례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마을 회계감시단’같은 시민조직을 구성할 수도 있다. 또한 실질적 활동을 위한 교육과 예산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성인에게도 민주주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장 선출시 공약과 예산 집행 계획을 공개하고 평가받도록 의무화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를 위해 ‘이장’의 월급을 올릴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단체협의회나 이장단협의회, 청년단체 등 그 수많은 단체가 하는 공적 활동에 대한 투명한 정보도 주민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지하수 보존 문제인데, 파고 파고 들어가면 역시 민주주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생태 이슈는 결국 민주주의와 결부된다. 음, 이건 다음 시간에 더 써보기로 하자.
그 전에 마지막으로.
작은 동네를, 하지만 나는 사랑한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을 대소사에 참여하지 않는 동네 철없는 젊은이이기는 하지만 할머니들과 잠시 인사 나누는 것이 좋다. 김장철이면 한두 포기씩 얻어먹는 김치맛은 꿀맛이다. 가끔 내 맘대로 빵을 구워 할머니들께 한 덩이씩 드리면 기분이 더 좋다. 할머니들이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내게 어떤 안도감을 준다. 서로가 서로를 아주 대충 보살피는 이 시스템이 맘에 든다. 게다가 작은 동네에 사는 것은 ‘더 직접 민주주의’(내 맘대로 이름 지은 것이다. 형식적 직접 민주주의 이상을 나가보는 것)가 달성될 기회이기도 하다. 이 곳은 정말 작기 때문이다. 작아서 가능한 것도 있는 법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