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6-02(화)
 

겨울이 가고 봄이왔다. 

다시 농사철이 시작되자 수현은 매일 논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봄이었다. 들판에는 멀리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윙윙 거릴뿐 사람은 없었다. 

아직 동트려면 7시는 넘어야 했다. 수현은 아무도 없는 들판에 나가 자신의 논을 둘러봤다. 


요즘 주변에는 콩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늘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밭을 논으로 만들려고 산비탈 밭을 개간해 다랭이 논을 만들었는데 

이제 쌀이 남아돌다 보니 쌀대신 논에 콩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콩농사가 밭농사보다 수익이 좋다 보니 논은 점점 밭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수현은 항상 벼를 심었다. 벼를 심고 가꾸는 것이 

아버지 어머니가 가꾼 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식량이 되는 쌀이 콩보다는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벼가 크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수현은 땅과 더 가까워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키운 쌀로 수지가 크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밥을 먹을 때마다 

자신이 키운 쌀로 생명을 이어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농자는 천하지대본 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생명을 이어주는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금 돈이 안 되는 

쌀농사를 강요 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수현은 논두렁이 앉아 부모가 물려준 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와 수현까지 온 땅이었다. 아버지와 논을 고르고, 

어머니와 피를 뽑던 날들, 그리고 처음 혼자서 논두렁에 풀을 깍던 일들이 영화처럼 스쳐갔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수현이 논에 살충제를 뿌렸던 적이 있었다. 

가루로 된 살충제를 손으로 직접 뿌렸다. 

그러다가 살충제 봉투가 논으로 들어가 물에 젖어 버린 것이었다,  

고등학생 수현은 농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수현은 물에 젖은 살충제를  뿌리다 쓰러졌다. 농약에 중독된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걱정된  덕산댁이 논에 와보니 

수현은 논두렁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덕산댁이 수현의 몸을 잡고 흔들자 눈을 떴다. 


집에 돌아온 수현은 한참을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수현은 

그 일로 인해 농약을 쓰는 농사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시작하자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었다. 

수현이 유기농을 벼농사를 짓자 주변에서 편한 방법을 두고 왜 오래전의 농법으로 돌아가냐고 했다.


하지만 수현은 자신의 선택한 방법을 후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자 수현의 논에는 오랫 동안 보이지 않았던 생명들이 다시 돌아왔다. 

개구리가 돌아왔고 미꾸라지가 살기 시작했다. 가끔은 붕어나 송사리가 보이기도 했다.


얼마전 부터는 살아있는 긴꼬리투구새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현은 자신의 논의 돌아온 생물들이 자신의 선택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 좋았다. 


수현은 논에서 돌아와 수지의 아침밥을 챙겼다. 매일 하는 요리지만 

소질이 없는지 메뉴는 거의 같았다. 전자렌지에 돌려 만든 계란찜 아니면 후라이 

그리고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 가끔 하는 카레 사실 이 것 이외에 수현이 하는 요리는 거의 없었다.

텃밭에서 수확한 상추나 가지 오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는 것이 수현이 먹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야했다. 


수현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수현아 나랑 읍에서 장사라도 하자?

수지의 엄마 현주랑 함께 살 때 현주는 수지를 낳고 나서 매번 시골을 떠나 자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수현은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현주에게 농사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현에게 농사는 삶의 유일은 희망이었다. 


희망을 버리고 살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미래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희망때문에 하루를 살고 버티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삶은 현주에게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가난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수현은 현주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 석태가 죽은 이유도 다 가난 때문이었다. 수현의 집이 부자였다면 

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가난은 죽음을 강요하고 비루한 삶을 선택을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현은 학생운동을 선택했다. 

열걸음쯤 세상이 진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언제나 스무걸음 뒤걸음 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수현아 나는 미래가 없는 삶을 살 수는 없어" 라고 현주가 말했을 때 수현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해 현주야….”  수현은 텃밭의 상추를 보며 떠난 현주가 생각났다. 

현주는 텃밭의 있는 채소만 가지고도 맛좋은 음식을 만들어 냈다.


아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어.. 우리 수지 무슨 반찬을 해줄까 하고 생각했지.. 

아빠가 요리를요. 

오늘 저녁은 맛있는 것이라도 해줄거예요?

어. 아빠가 한 번 생각해 볼게.


수지는 아침을 대충 먹더니 가방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수현은 수지의 뒷 모습을 보면 현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겨울이 왔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었다. 한 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며칠씩 내리 내렸다. 

사방이 눈에 덮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속으로 숨어 버렸다. 

푸른 소나무는 백색의 소나무로 변했다. 검은 아스팔트는 스키장처럼 보였다. 

밤새 눈을 이기지 못한 나무가지들이 아우성을 치며 쓰러졌다. 

세상을 버티지 못하는 것들은 시련이 닥쳐 오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각자가 버틸 수 있는 최대치를 살아가다가 어느날 툭 하고 낙하는 것이었다.


수현은 문을 열고 나갔다. 


“올해도 풍년이겠구나" 라고 석태가 말을 따라했다. 

수현의 아버지 석태는 매번 폭설이 내릴 때마다 “수현아 올해는 풍년이겠구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다르게 그 예언은 쉽게 빗나갔다. 

하지만 수현도 폭설이 내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했다. 


빗자루를 챙겨 수현은 눈을 치웠다. 매일 아침마다 1-2시간씩 눈을 치우지만 

다음 날이면 치운 만큼 또 내렸다. 그렇게 눈을 치우다 보면 어느 날 봄이 왔다. 



“여보세요"

“네"

“나경선배"

“저녁 먹으러 가도 되요?”

“그럼" 나경은 수현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마트에 갔다. 수현이 좋아하는 재료를 골랐다. 


수현은 수지를 트럭에 태우고 눈덮인 도로로 나갔다. 오후 5시였지만 사방은 어둑했다. 늘 가던 길이었다. 

수현은 눈 내린 도로를 운전하는데 익숙했다. 나경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 할 때쯤 멀리 나경과 석민이 보였다. 


나경이 수현에게 손을 흔들었다. 

석민이도 나경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수지야”


석민이 수현의 트럭을 보고 트럭 앞으로 달려갔다.  

수현이 브레이크를 페달을 힘껏 눌렀다.


트럭이 빙판위를 춤추듯 빙빙 돌기 시작했다 .


쾅!!!


달려오던 차가 멈추지 못하고 수현의 차와 부딪쳤다.

빙판위를 빙빙돌던 수현의 차가 아파트 담을 들이 받았다.

수현은 마지막 순간 자신이 타고 있던 방향으로 핸들을 꺽었다.


수현아!!!


나경의 울부짖는 소리가 아파트를 가득 채웠다.


눈이 많은 곳이었고 한 번 눈이 내리면 며칠은 내리는 곳이었다.


수현아.. 수현아..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아버지와 함께 들판에 서 있었다.


수현의 논에는 벼들이 어느새 쑥쑥 자라 마음껏 포기를 늘리고 있었다.

끝이 없는 평야….  지평선  넘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향긋한 풀냄새가 났다. 


아버지! 

어머니가 새참을가지고 오시네요.

수현은 달려가 어머니의 짐을 들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애호박에 새우를 넣어 만든 호박국

그리고 나물과 고기반찬 상추와 고추


아버지 식사하세요.

그래 수현아…

어머니 밥이 너무 맛있어요.

그래 우리 아들 어서 먹어…

우리 아들 배고프지….

어머니…..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아버지 어머니…. 

수현은 깨어나기 싫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아.. 수현아.. 아빠…

나경과 수지가 수현을 불렀다.


수현이 눈을 떴다.


여기 어디야….

병원이야…


그랬구나….


수지랑 석민이는 괜찮아…


아빠… 수지가 울면서 수현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 석민이가 눈물을 흘렸다.


나경은 석민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놀랬다.


다행이네요.

모두 무사해서….


수현은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수현은 이 동네 출신이고 눈 길 운전에 익숙했다.

이 동네 출신이 아니라면 아마도 수현은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수현이 퇴원하고 나경과 수현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나경은 아파트를 처분하고 수현의 시골집으로 들어왔다.


비가 내렸고 눈이 녹았다.


봄이왔다.

다시 농사가 시작되었다.

나경과 수현은 함께 들로 나갔다.


“생각나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 때 만약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나경이 말했다.

“그러게요.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처럼 예쁜 여자를 사랑하지 못했겠죠?”

수현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경도 따라 웃었다.


나경과 수현은 아무것도 심어있지 않은 텅빈 논을 바라봤다.


수현씨 우리 여기에 뭘 심어 볼까요?

글쎄요.. 전 논농사 만 해봤어요.


그걸로 우리 식구가 다 먹고 살수 있을까요?

글쎄요.  수현이 웃으며 말했다.

나경이 수현의 손을 꼭 잡았다.


지평선 너머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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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마지막편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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