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718일 금요일 저녁, 비가 꽤 오길래 부모님 집에 내일 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비 많이 오는 김에 베란다 방충망 청소를 하고, 난간에 그물을 친 스파이더맨들을 대거 떨어뜨린 다음, 창문을 다 닫고 잤다. 방음 잘 되는 창문과 암막 커튼 때문에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잤다. 늦잠 잘 수 있는 주말, 마구 울려대는 카톡음 때문에 깼다. 곧이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했다. “주차장과 도로에 물이 차고 있으니, 입주민 여러분들은 통행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비옷을 입고 내려가 보니, 읍이 엉망이었다. 산사태가 나서 도로에 토사가 쌓여 있고, 물이 빠지지 않아 시장에 물이 차고 있었다. 오부면 일물리에 있는 부모님께 전화하니, 물이 끊겨서 안나오고 닭장 아래 축대가 무너졌지만 집은 괜찮다고 하셨다. 그런데 경작지가 반이 사라졌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재난의 소식들이 들려왔다. 십 년 마다 한 번 있는 수해 정도가 아닌 듯 했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사태. 일물의 이웃들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가장 험지에 사는 J 아저씨는 집 옆이 계곡이 되었지만 허리가 아파서 계곡을 넘어 탈출할 수가 없다고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아이들과 <콘크리트유토피아>를 봤다. 나무의 호흡이 통하는 숲속의 시골집에 익숙해 아파트를 좋아한 적이 없지만, 갑자기 아파트가 안전하게 여겨졌다.

 

곳곳에 산사태가 나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집이 휩쓸려가고 묻혔다. 경호강 휴게소 위에 어마어마한 산사태가 나서 국도 3호선이 끊겼다. 단계천이 범람하고, 딸기하우스들은 엉망이 되었다. 전기와 수도가 끊긴 곳이 여러 군데.

 

폭우가 끝나자 폭염이 시작되었다. 토사를 치운 도로에서는 뙤약볕에 구워진 흙먼지 구름이 일어났다. 큰 아이는 방학, 둘째 아이는 등교. 일물리는 올라가는 길이 양쪽으로 막혀 가 볼 수가 없고, 어딜 가서 도우고 싶어도 야외 작업이 가능한 아침과 늦은 오후에는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았다. 방학중 국어교실에 다녀온 아들이 중학교 기숙사에 이재민들이 백몇십 명 왔다고 전해주었다.

 

일주일 후 길이 뚫려서 아이들을 데리고 본가에 갔다. 일물마을 올라가는 급경사 도로가 시작되는 오성저수지. 제작년 12월 완공되어 물이 다 채워진 것은 1년 남짓. 저수지를 만들면서 개벌한 가파른 산비탈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저수지가 메워져 버렸다. 저수지 때문에 새로 만든 도로 옆 비탈에서 어마어마한 바위들이 굴러내려왔다. 바위는 아스팔트 도로 한켠으로 치워져 있었다. 비오는 날 저녁에 일물에 갔다면 자동차 위로 바위가 떨어졌을 수도?

오성저수지 1.jpg
오성저수지

 

오성저수지 3.jpg

 

오성저수지.jpg
일물가는 길에서 촬영한 오성저수지 위쪽

 

마을은 괜찮았지만 경작지는 반이 사라진 상태였다. 고작 1m 폭에 불과했던 도랑이 폭 15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계곡이 되어있었고, 우리 논은 반파, 아래의 오미자밭 두 마지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절망보다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손쓸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는 목숨 부지에 감사할 뿐이다. 비가 올 때만 산길 위로 쫄쫄 물이 흐르던 도랑은 거대한 협곡이 되어있었다.

 

한밤지기.jpg
논밭이 계곡이 되었다

 

한밤지기 2.jpg
돌과 모래로 덮힌 논. 참깨를 심어 두었는데 알아볼 수 없다


제원아저씨집, 도고머리 가는길.jpg
상류에 있는 ㅈ아저씨 집 가는 길이 끊어지고 계곡이 되었다

 

허허스님집.jpg
ㅈ아저씨 집 위 스님이 기거하는 토굴. 별채와 물탱크가 사라졌다. 본래는 겨울이면 물이 마르는 아주 좁은 도랑이었다.
도고머리.jpg
묵은 다랑이논이 있던 곳. 위에 소류지가 있었는데 산사태로 메이고 둑이 무너졌다.

 

고구마밭.jpg
무너지고 돌로 덮힌 밭에 살아남은 고구마 몇 줄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개벌을 한 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난 경우가 많다. 무분별한 개발사업이나 임도건설, 벌목, 숲가꾸기 사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 산사태가 많은 곳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림청의 정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산사태가 기후위기 탓이라는 산림청의 말도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다. 사흘에 걸쳐, 특히 하루에 집중적으로 700mm의 호우가 내렸는데, 산사태가 안 일어날 수는 없지 않을까? 산사태는 풍화와 침식 현상의 일부다. 수십 수백 년에 걸쳐 바위틈에 물이 흘러 들어가 얼었다 녹았다 하며 쪼개진 땅속의 바위가 이처럼 큰 비가 내릴 때 떨어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두려운 일이지만, 추웠다 더웠다 극단적인 날씨 변화가 잦은 기후변화 시대에 이런 재난은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상적 재난에 적응하는 길은 무엇일까. 안전을 위해 더 많이 축적하고 소유해야 할까? 언제 사라져도 별로 아쉽지 않도록 가볍고 간소하게 살아야 할까?

 

사라진 산골짝의 묵은 논들은 수백년전 사람들이 들어와 계곡의 돌로 축대를 쌓고, 산에서 보드라운 흙을 긁어 채우고, 본래의 물길을 돌려서 만든 인공 구조물이다. 1~2세대 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가 묵어버린 다락논들이 큰물에 휩쓸려 사라진 것은 인간의 흔적이 숲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과정이다. 피해가 간 모든 곳을 원상태로 돌리기는 어렵거니와,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산을 모두 콘크리트로 바를 수는 없는 일이다. 사방댐과 계류사업이 오히려 산사태를 일으킨 곳도 있다. 모든 곳을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기보다, 복구가 어려운 장소는 숲에게 돌려주고 자연의 작용으로 변화한 지형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경우에는 농경지와 거주지를 잃어버린 주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야 하겠다.

 

이번 비로 마을 전체가 침하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생비량면 상능마을은 중앙정부에 주민 전체가 집단 이주를 건의했다. 자연 재해로 마을 전체가 집단 이주한 사례는 경남에서는 2003년 거제시 일운면 와현마을 집단 이주가 유일하다. 당시 와현마을은 태풍 매미로 큰 피해를 입어, 73가구 130여명이 거처를 옮겼다. 기후재난으로 인해 마을 하나 옮겨가는 건 미미한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가 조만간 대이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기후변화와 자연재해로 지형이 바뀌면서 이주를 하게 되는 것은 인류학적으로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거주지와 문화가 발생하게 되는데, 현대에 와서 토지의 소유, 재산, 경제, 자본, 법의 문제와 얽히니 땅을 포기하지 못하고 기억하던 모습대로, 지적도에 그려진 모습대로 복원하게 된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이주시대에 자칫 전쟁이나 내전으로 또 다른 희생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인간 사회의 오래된 전제 조건인 소유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기후문제에 맞춤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가 끝없는 인간들의 욕심과 경쟁으로 사라지고 있다. 생존경쟁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생존하기 위해 경쟁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이 인간을 공멸로 몰고 가고 있다. AI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안된다고 아둥바둥이다. 하루종일 폰과 컴퓨터를 쳐다봐야 한다. 뭐가 그리 중하다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죽이는 것일까? 한국에서 매일 1명 이상의 여성들이 남자친구나 배우자에 의해 살해 또는 살해 위협을 받는다고? 이 정도면 경쟁은 정신병이다. 제발, 안 파헤쳐도 되는 산은 파헤치지 말자. 안 만들어도 되는 댐, 안 만들어도 되는 공항은 만들지 말자. 안 먹어도 되는 고기는 먹지 말자. 안 해도 되는 일은 하지를 말자. 그리고 좀 나누고 살자.

 

*여러 곳에서 봉사자들이 와서 산청 주민들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자원봉사센터에서는 단체 봉사를, 개인 봉사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연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재난 속에서도 도움의 손길 속에 산청 곳곳이 희망으로 피어납니다. 산청에 오셔서 나눔이라는 작은 미래의 씨앗을 심어주세요.

 

산청군자원봉사센터 055-970-7352

 

산청, 합천 수해 복구 자원봉사 연결 오픈채팅방(산청의료사협)

https://open.kakao.com/o/gGKBQNIh

담당자: 010-9355-6479 송한나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포네의 사사로운 사토리 - 숲속의 고향집은 무사할까? 기후재난 이주시대의 서막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