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구담마을 여름

- 구담여름, 2015, 180×180, 장지에 수묵채색
구담 (상)
구담은 임실 지역을 스미는 섬진강 중에서 가장 하류에 있는 마을이다. 산 중턱 비탈진 곳에 오목하게 올려놓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터를 깎고 다듬어서 집들을 세워 마을 자체가 경사졌다. 저 아래 강변에 이르기까지 정갈하게 축대를 쌓아 이룬 논다랑이와 밭들을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를 짐작케 한다. 한참을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가면 순창인데 11시 방향으로 하얀 바위를 내밀며 기세당당하게 우뚝 솟은 산이 버티고 있다. 이름으로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용골산이다. 그 산자락 싸리재에 대여섯 집이 강물을 바라보며 모여 있다.
구담(九潭)이란 마을의 본래 이름은 안담울이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있다. 앞강에 자라가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담(龜潭)이라 하기도 했고, 또한 강줄기에 아홉 개의 소(沼)가 있다고 해서 구담(九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1680년경 숙종 때 해주 오씨(吳氏)가 정착하여 마을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내가 이곳을 처음 찾은 때는 1992년으로 기억된다. 정월 보름 다음 날이었다. 어수선한 심경으로 무작정 섬진강변 길에 발을 내디뎠다. 아침 일찍부터 강물에 눈을 맞추며 얼마를 걸었는지 구담마을에 이르니 점심때가 지났다. 산과 산 사이 강변길에 불어닥치는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하고 시장하기조차 하니 더욱 오들오들했다. 어느 집인가 불쑥 들어갔다. 낯가림이 있는 나로서는 의외의 행동이었다. 그 집 사람들은 이미 끼니를 마친 상태였다. 그러나 노부부는 장작불을 지펴 데워진 구들장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며 귀한 손님인 양 나를 극진히 대하였다. 그리고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몇 순배 나누면서 주인장은 조용조용한 음성으로 동네 소개를 자상하게 해 주었다. 좀 더 머물고 싶은 정겹고 훈훈한 자리였다.
그날, 강물이 검어질 때까지 걸었다.
그 후, 구담에 다시 갔을 때 동네 사람들은 그 집을 ‘수남이네’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아들 이름이다. 섬진강을 가슴에 적시고 얼굴을 비추며 붓을 담그게 한 마을이다.
그러니까 나의 발길을 붙잡고 시선을 잡아준 그곳은 구담이다.
구담(하)
전주에서 구담까지 자주 왕래하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진면에서 덜덜대는 비포장도로를 다니는 군내버스가 하루 서너 번이나 다니는지, 천담에서 내려 3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그래도 갈 곳이 있으니 망설임 없이 화구며 간식거리를 잡다하게 챙겨 간다. 정읍댁이 있어서다. 주변의 친구가 소개해 준 집이다. 정읍댁은 널찍한 안방을 내어주면서 작업실로 쓰라고 권했다. 무슨 인연인지 그의 이름이 내 아내와 같다. ‘양금’이!
정읍댁은 내가 밖에라도 나가 있을 때 끼니때가 되면 “화가 양반~” 하고 꼭 나를 부른다. 따끈한 밥상에 반주도 빼놓지 않으니 넉넉하지 않은가. 그 손맛 중에는 특히 다슬기 요리가 일품이다. 정읍댁은 작은 소쿠리를 옆에 끼고 강에 내려가 순식간에 다슬기를 잡아 온다. 잡아 온 다슬기는 확독에 닥닥 갈아서 껍질을 골라내고 애호박에 부추 잘게 썰어 넣고 끓인 진하고 푸른 국물은 그야말로 별미다. 그 맛은 다슬기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맑고 깨끗한 강물에서 건져 올린 다슬기는 둥글하고 노란색을 띤 모양으로 작지만 쫄깃하게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앞 끝자락에는 당산마루가 있다.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살 때는 마을공동체적 의례인 당산굿을 지냈다고 한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오던 해에도 정월 보름날 달빛 아래 노부부가 당산나무에 금줄을 매놓고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때쯤이면 마을은 주변의 닥나무를 베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베어 낸 닥나무는 강가에 돌을 쌓아 만든 커다란 솥에서 며칠 동안 찌고 강물에 다시 며칠간 담가 놓는다. 불어난 닥은 아낙들의 손으로 껍질이 벗겨지고 한지의 재료로서 공장으로 간다.
고요한 시간이 되면 주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로 둘러싸여 원형을 이룬 마당에 멍석이라도 깔아 눕고 싶다. 하기야 가을이면 낙엽으로 포근한 멍석이 되어 버리는 당산! 자연이 인간에게 안겨주는 축복이다. 사방 어느 곳을 바라봐도 그냥 흘려보낼 곳 없어 어딘가에 담아둬야 할 것 같은 천혜의 창조물이다. 발아래 저쪽 9시 방향에서 다가오는 강물은 너럭바위에 쉬고 있던 재두루미의 목을 적셔주고, 늪에 어우러지다 앞산을 휘돌아 장구목 쪽으로 흘러간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곡선의 물줄기는 느리고 자유롭게 흐르고 있다. 두루두루 주변을 챙긴다. 그래서 섬진강이고, 또한 그것들은 내 그림의 밑천이 되어 왔다.
아침 산책을 나설 때면 설렘과 망설임이 다가온다. 가야 할 곳이 여러 갈래이니 그러기도 하다. 우측에 비탈진 밭고랑을 지나면 계단식 논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른 봄 시린 손을 불어가며 걷다 보면 논두렁 사이로 가녀리게 조용히 아주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산 능선에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아 흐르는 물이다. 갓 돌 지난 사내아이의 오줌 누는 소리 같다. 새 생명, 희망의 소리다.
이런 풍경의 구담을 영화인들도 놓치지 않았다. 1998년 이곳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시절’의 영화 촬영 표지석이 강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곳에 세워져 있다. 아프고 쓰린,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영화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달래게 한다.
-그림, 글 _ 송만규(화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