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자편지] 함께 읽기를 시작하며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기 위해, 함께 읽어요
![페이지 포함 파일 - [최종최종]120188_1116-2.pdf.jpg](http://jirisan-in.net/data/tmp/2508/20250823105354_xabtidbd.jpg)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❶ 들어가며 : 무가 할 말 있대
❷ 몸을 잃어 허공에서 떠도는 젊은 벗들에게 "일상을 고귀하게, 몸을 풍요롭게"
❸ 말이 글이 되게 해 주는 이들에게 "삶이 신비가 되려면"
❹ 똥폼이 월간 정산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❺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❻ 자급하며 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❼ 작은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❽ 지구에 해롭지 않으면서도 하고픈 걸 하며 살고 싶은 청년에게 "주저하는 마음이 들고, 두려워도 괜찮아요. 같이 해 볼래요?"
❾ 바라는 삶을 살고 싶은 해바라기 벗들에게 "담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이미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❿ 나가며 : 작은 농부들이 띄운 두 번째 편지
그럼,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들어가며 : 무가 할 말 있대"를 시작하겠습니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들어가며 : 무가 할 말 있대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지긋지긋해? 같이 늙어 갈 사람을 돌보는 일이 하찮은 일이야? 일상에서가 아니라면, 대체 우리는 무엇에서 더 높은 가치를 찾아야 하는 걸까? 대체 무엇을 위해?
내가 발 딛고 선 땅을 누군가 해친다면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발 딛고 선 땅을 해치는 자가 바로 나라면, 얼마나 마음이 씁쓸한가? 나를 둘러싼 가장 가까운 것들을 지키는 일은 왜 하찮아 보일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를 만드느라 내 둘레를 해치는 일이 대체 왜 더 멋져 보이는 걸까?
여성과 남성으로 성을 둘로 나눠서 노동자들을 부려먹기 좋게 만들어 온 게 누구일까? 억울하면 사회에 나가 출세하라고, 능력을 길러서 사회적 성공을 거두라고 말하는 건 누구일까? 승진을 위해 성공을 위해 내 몸과 내 가족을 돌보는 일을 포기하는 사람이 멋진 사람이라고 부추기는 건 대체 누구일까?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9시 출근 6시 퇴근 혹은 야근을 감수하는 걸까? 나? 가족? 사회? 정말?
우리, 행복하니?
우리, 그 행복해야 하는 ‘우리’ 안에는 누가 속하지? 능력껏잡은 직장에서 승진하면, 방금 산 편의점 도시락이 맛있으면, 정기 세일 때 산 스웨터가 맘에 들면, 신형 핸드폰으로 갈아타면, 겨울에 따뜻한 방에서 배달 온 떡볶이를 먹으면, 누구누구까지 행복할까.
우리, 잘 살고 있나?
‘잘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잘 살기 위해 정말 우리가 벗어야 하는 짐은 무엇일까? 돌봄이라는 짐? 양육과 살림이라는 짐? 정말 우리가 벗어나고 싶은 사회는 어떤 사회지? 남성이 여성보다 승진하기에 출세하기에 유리한 사회? 여성을상품처럼 바라보고 외모를 평가하는 사회? 여성에게만 가사노동을 강요하는 사회?
그래,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어떤 여성이 이런 짐, 이런 사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 볼게.
그는 행복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가 짊어지던 짐을 다른 여성 혹은 다른 약자가 대신 지고 있다면? 또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진 사회에서 무언가 다른 것들이 하위 영역을 대체하고 있다면? 그러니까 누군가는 돌봄이라는 짐, 양육과 살림이라는 짐을 벗어나고 여성 상품화와 가부장제 사회에서 벗어났을지 몰라도 그 사회 자체가 변한 게 아니라 단지 누군가가 짐을 대신 지고 있는 거라면?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내가 어떤 짐을 벗어난 대가로 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한다면?
우리가 정말로 벗어던져야 하는 허울이 무엇인지 다시 묻기로 해. 나와 내 가족 혹은 내 둘레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어째서 하찮은 일이 되어 버린 걸까? 내 몸을 위해 내 마음을 위해 내가 먹을 작물을 기르고 거두는 일은 왜 내 일상에서 멀어진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를 위해 노동이라는 걸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아서 소비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삶을 일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걸까? 대체 무엇을 위해 내 얼굴과 내 몸을 평가하며 못난 점을 가리느라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된 걸까?
우리는 벗어나야 해. 자급하며 살아갈 기회를 빼앗고, 자급하며 살아갈 몸을 돌보지 못하게 하는 허울들로부터. 내 생산도구를 나에게서 분리해 내려는 시도들에서 벗어나야 해. 무언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한 덕분에 얻게 된 편리함과 우월감을 똑바로 바라봐야 해. 우리가 찾아야 할 일상이 무엇인지 물어야 해. 코로나와 기후위기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벗어야 하는지,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인간동물들에게 묻고 있잖아. 차별과 혐오와 착취를 끊는 진짜 여행 가방을 싸라고.
가부장제에 맞서기 위해 여성들이 더 출세해야 한다고 말한다거나 가부장제를 벗어나려면 남성보다 더 우위에서 군림해야 한다고 말하는 식의 언어는 기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거나 기후위기를 벗어나려면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식의 언어와 같아. 애초에 어떤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가부장제와 기후위기와 차별과 착취를 더 단단하게 하는 체제에 편입시키는 언어 말이야.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그런 언어에, 각종 워싱에 눈감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게 더 정상 범주에 속해 보이니까. 다른 대안이 불편해 보이니까.
하지만 알고 있잖아. 저항은 갑의 위치를 점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생산도구를 되찾고 그 생산을 스스로 이어가는 일이라는 걸. 자급하는 몸을, 우리 생산수단을, 우리 공유지를 되찾는 게 진짜 저항이라는 걸. 나 자신과 내 둘레 생명을 해치는 일상은 결코 저항이 될 수 없다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잖아.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현실을 보라고, 꿈만 꾸고 살 거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빌려 알려 주려고 해. 우리가 무엇을 벗어나고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조금 서툴더라도 하루하루 삶으로 온몸으로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여기 모은 편지들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 벗어야 하는 게 무엇인지 말하는 농부들이 있어. 그들 역시 완벽하지 않아. 그 길이 꼭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을 거야. 다만 지금 이 엄청난 기후 재난과 부정의 그리고 불평등과 혐오에서 벗어나는 길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어. 이 편지를 받아 줘. 그리고 응답해 줘. 우리 생산수단을 되찾는 길로!
우리가 협력의 역량을, 탈인간화에 대한 저항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보살핌과 창의성, 돌봄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법을
배울 역량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존재를 생산해
내는 일상적인 활동들을 통해서이다. -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
우리는 풍요롭게 사는 방법,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
하면서 상실했던 자존심과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다시 배
워야만 한다. (…) 우리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희생자가 되고 있는 상황은 자급을 지향하는 태도로 인해 멈
춰질 것이다. - 마리아 미즈, 베로니카 벤홀트-톰젠,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
변화는 뜻밖의 행위를 통해 나타납니다. 수없이 다양한 환경
에 처한 사람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의견을 내고, 대응하기 위해 모일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또한 예측하지 못했으나 즉흥적 행동들이 하나의 집합을 이룰
때, 다시 말해 각자 개인의 편의에서 한 걸음 물러나 지구와
생명체를 대표하는 일에 시간을 들이고 위험을 무릅쓸 때 변
화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조애나 메이시, 몰리 영 브라운, <<생명으로 돌아가기>>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