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빛나는 밤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2020102일 필라델피아 도심에서는 하루에만 약 1,500만 마리의 철새 무리가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빛공해 때문이었어요. 철새들은 에너지가 적게 드는 밤에 주로 달빛에 의존해 방향을 잡아 이동하는데, 높은 건물들의 빛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고 원래 가야 할 방향이 아닌 쪽으로 날다가 건물에 부딪혀 죽고 말았어요. 게다가 그날은 날이 좋지 않아 낮게 날던 새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고 해요. 끔찍하게도 이 일은 전 세계에서 철새 이동 기간에 많이 일어나는 사건이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에요. 달빛 정도의 밝기로만 생활해 온 야행성 새들은 빛공해로 낮과 밤을 헷갈려 번식과 사냥 주기를 놓치는 일도 무척 늘었다고 해요.

 

인공조명으로 밤에도 낮처럼 밝은 상태가 계속되는 현상을 빛공해라고 하지요. 국제천문연맹(IAU)은 자연 속 밤하늘보다 10% 이상 밝은 상태를 빛공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밝은 서울과 가장 어두운 강원도의 유방암 위험률을 조사한 결과 서울이 34%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요, 이렇듯 빛공해가 사람의 24시간 주기 리듬을 무너뜨리고 암 발생률을 높인다고 알려지면서 그나마 빛공해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동식물 생태계에 주는 어마어마한 피해는 모르는 이들이 많아요.

 

 

밤이 밝을수록 죽음도 늘어난다

 

빛공해는 새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 종을 죽음으로 몰고 있어요. 곤충들은 개체 수가 뚜렷하게 감소할 정도로 영향을 받고 있는데, 특히 벌과 나비만큼 많은 꽃가루를 옮기는 나방은 밤에 켜진 조명으로 꽃을 찾지 못한 채 가로등에 부딪혀 무수히 죽거나 애벌레 수가 눈에 띄게 줄었어요. 양서류인 두꺼비는 자꾸 인공 빛을 받으면서 수정 성공률이 매우 낮아졌고, 파충류인 바다거북은 광고판이나 가로등 조명을 빛으로 착각해 엉뚱한 곳으로 향하다 차에 치이거나 수영장에 빠져 죽는 사례가 무척 늘었어요. 야간 인공조명은 플랑크톤에서 산호초, 어류, 고래까지 거의 모든 해양 생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줘 의사소통과 생활 주기를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고 결국 성장률과 생존율, 번식 성공률을 매우 낮춘다고 해요.

 

그뿐인가요, 식물 또한 빛공해에 시달리고 있어요. 식물은 밤에도 빛을 받으면 낮인 줄 알고 계속 광합성을 하다 보니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 열매 맺는 활동을 못 하게 돼요. 가로수에 24시간 빛을 비추면 나뭇잎이 말라 죽지요. 또 꽃 피우는 시기를 헷갈려 잘못 꽃을 피워 수분이 어려워졌는데, 이는 곤충들까지도 힘들게 해요. 낙엽수는 비정상적인 시기에 잎의 색깔이 갈변하고, 옥수수 같은 작물은 꽃이 피지 않거나 속대가 채워지지 않는 현상이 생기지요. 제가 정리한 사례는 아주 일부밖에 안 돼요. 무수한 생물이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 빛으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어요.

 

 

시골은 괜찮다고요?

 

구례의 밤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와 비교하면 빛공해로부터 꽤 안전할 것 같지만, 이 역시 인간을 기준으로 한 생각이 아닌지 돌아봐야겠어요. 지리산국립공원이 바로 옆에 있는 우리 구례는 다른 도시들보다 빛공해에 노출된 야생동식물이 많은 지역으로 볼 수 있어요. 참고로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야생생물이 인근 리조트에서 발생하는 빛에 무척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요, 2020년 덕유산리조트 인근의 빛공해가 가장 번화한 무주읍만큼 강해서 국립공원에 사는 하늘다람쥐 등 무수한 동식물의 생존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을 경고했어요.

 

도시의 불빛뿐만 아니라 골프장이나 스키장, 캠핑장, 다리 조명처럼 비도시 지역이면서 야생생물 서식지 인근에 설치된 조명의 빛공해는 도시에서보다 야생생물에 끔찍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규제 방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예요. 구례의 밤이 얼마나 밝은지를 조사한 결과나 관련 자료를 찾아보려 했지만, 군청이나 군의회 누리집 등을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어요. 혹시 인공조명에 의한 농작물 피해 등을 정리한 자료는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도 없더라고요. 당연히 조명, 가로수, 빛공해 관련 조례도 없었고요.

 

현재 우리나라 17개 시도 전부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 조례>를 제정했지만, 전남, 전북, 세종, 경북, 강원은 조명환경관리구역을 한 곳도 지정하지 않았어요. ‘조명환경관리구역은 빛공해를 막기 위해 인공조명의 환경과 수준을 등급별로 구분한 구역인데요, 가로등, 보안등, 공원등 등의 공간 조명과 허가 대상 옥외광고물 등의 빛 양을 조사해 허용기준에 맞도록 규제하는 일이에요.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만으로 빛공해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지나친 인공조명이 자연이나 농림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게 막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 새벽에도 반짝이는 구례의 다리 조명은 끌 수 있겠지요.

 

 

생활 빛은 적당히, 지나친 빛은 끄자

 

무조건 불을 다 끄자는 말이 아니에요. 필요하지 않은 조명을 밤늦도록 켜 놓지는 말아야죠. 될 수 있으면 밤에는, 그저 보기 좋게 하려고 켜 놓은 조명을 모두 꺼서 야생생물이 원래 살던 리듬에 맞게 살도록 배려하면 좋겠어요. 특히 지리산을 곁에 둔 구례는 빛공해가 환경에 주는 영향을 줄이도록 힘써야 하는 지역이잖아요. LED 조명 기술이 발전하면서 에너지를 덜 쓸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소비는 줄지 않았고 오히려 조명 사용이 늘면서 빛공해가 문제가 더 심해진 전 세계 현상에서 보듯, 우리는 그저 효율 좋은 등이나 환경 영향 적은 등으로 바꾸는 정도로 문제를 덮으려고 해서는 안 될 거예요.

 

인간이 만든 밝은 밤이 동식물에겐 끔찍한 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밤이 밤다워야 살 수 있는 동식물에게서 밤을 빼앗지 않도록 필요한 노력을 함께하는, 밤에는 어둡고 마음은 밝은 동네가 되면 좋겠습니다.

 

 

봉성버들9-1.jpg

사진구례읍의 새벽 한 시멀리 서시천 다리 조명이 여전히 가지각색으로 빛나고건물 외관 등은 눈부셨으며어느 길엔 알록달록 전구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몇 시까지 켜져 있을까한 시까지 기다렸지만 꺼지지 않았다.

 

 

 

버들 (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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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마을]빛나는 밤은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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