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웅박 씻나락]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햇살
산청 산사태 복구 현장 봉사에 함께한 '햇살'의 이야기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시작합니다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지리산 자락에 사는 여러 살림꾼들이 돌아가며 글을 씁니다.
첫 시작인 9월에는 산청의 '햇살'이 글을 보내 주었습니다.
김석봉, 강수돌, 홍영기, 푸른, 박남준, 성염, 이주헌 님의 글이 기다리고 있으며,
달이 갈수록 필진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지리산인>의 뒤웅박 씻나락 칼럼을 기쁘게 받아 주세요.
산청에서, 재난을 돌아보며
산청 산사태 복구 현장 봉사에 함께한 '햇살'의 이야기
올해 여름은 뜨겁고 힘들고 강렬했다.
가뭄으로 애타던 강릉 비 소식이 반가운 아침이다.
전주는 밤새 170밀리, 군산은 시간당 152밀리 폭우가 내렸다고, 휴양지로 유명한 발리에서 폭우로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영상들이 계속 들어온다. 뉴스를 보면서 두려움과 공포, 재난의 경험이 몸으로 느껴진다.
길도 사라지고 생강밭도 사라지고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고 있는 학교 축제 전야제 날이었다. 호우주의보가 내렸고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에 학교로 올라오는 도로가 산사태로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기, 수도가 먼저 끊겼고, 통신까지 끊겼다. 맞은편 산 중턱 집에 실종자가 있다고, 소방차들이 오고 밤까지 수색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밖에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도 없고, 무덥고 어두운 기숙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다행히 비가 그쳤고, 산사태로 곳곳에 막혀버린 도로를 돌고 돌아 도착해 준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전화가 연결되니 산 아래 생강밭 두 개가 산사태로 흔적 없이 묻혀버렸다는 소식이 제일 먼저 왔다. 올해 딸이 처음으로 자기 밭을 정해서, 싹틔우기부터 비 오기 전 관리기 빌려와 북주기까지 정성 들인 밭이었다. 흘러 내려온 토사로 마을 길이 막혀 집에는 올라갈 수도 없었다. 다리가 끊어지고, 산사태로 국도까지 통제된 모습들은 마치 전쟁터 같고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사망자와 실종자 소식들과 눈 앞에 펼쳐진 재난 앞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일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 며칠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준 사람들
마을 청년들이 침수된 하우스와 작업장으로 달려가 젖은 물건들을 치우고 복구에 손을 보태기 시작했다. 하동에서 나마스떼 민박을 하는 수진 부부가 저녁밥을 해서 달려왔다. 반찬을 만들어준 분들도 있고 이웃과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까페이고 공유공간인 ‘남다른이유’에서 얼굴보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안부를 확인하고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산청의료사협’에서 제안해 ‘그늘과 언덕’이 함께 ‘산청합천 수해복구봉사 연결방’이 만들어졌다. 일손이 필요한 농가와 일손을 보태겠다는 개인이나 소규모 봉사자들 신청을 받아 연결하고 함께 봉사를 했다. 오픈채팅방이 만들어진 7월 25일, 구례에서 윤주옥 선생님과 정환, 상글 청년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주었다.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이 될 모두의 손길
물이 빠졌지만 아직도 질퍽거리는 딸기하우스 비닐들을 찢어내고, 물에 젖은 포장박스와 농자재들을 꺼내면서 온갖 쓸려 내려온 쓰레기들을 보면서 암담했다. 임시대피소로 제공된 모텔에서 생활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더운데 그만하라고 너무 고맙다고, 그래도 힘이 난다고 웃어주던 첫 번째 하우스 농장 부부의 말에 우리가 힘이 났다. 폭염에 땀과 흙탕물로 온몸이 젖었지만 힘내서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농가는 올해 농사는 포기한다고 했었는데 여러 봉사자들 도움으로 하우스를 철거하고 새로 설치해 올해 농사를 하게 됐다는 소식들을 채팅방에 올려주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역시 지리산 이웃들인 남원, 함양, 하동에서, 전국에서 정말 많은 분이 일손을 보태러 와 주었다. 서울, 인천, 수원, 용인, 공주, 대전, 세종, 부산, 창원, 마산, 김해, 진주, 고성 전국 각지에서 다녀가셨다. 하우스 작업은 낮에는 너무 뜨거워 오전은 새벽 6시부터 10시까지, 오후는 3시부터 6시까지 활동했다. 멀리서 새벽 운전해 달려와 참여하는 분들은 그 정성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질퍽거리는 바닥에 휘어지고 떨어진 하우스 배드 상토를 담아 옮기기, 하우스 바닥에 쌓인 상토를 쪼그리고 앉아 쓸어 포대에 담아내기, 창고에 쌓인 젖은 짐들을 옭기고 바닥 물청소기. 어느 한 곳도 일이 만만한 곳은 없었지만, 반가워하는 농장주님들과 함께 하는 힘으로 기쁘게 할 수 있었다. 재미나게 봉사해 보자고 “잼봉잼봉 화이팀”을 외치고 시작하기도 했다.
“새참 왔어요. 새참 먹으로 오세요~~”
‘그늘과 언덕’에서는 까치밥 선결제로 봉사자들을 위한 음료와 간식을 회원들이 배달해 주었다. 해뜨기 전부터 땀 흘려 일하다가 얼음 가득한 맛있는 음료는 에너지를 올려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마법 같은 ‘함께’의 힘
물기가 있을 때는 질퍽거려 힘들고, 바짝 말랐을 때는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 금방 숨이 막혀 힘들었다. 하우스는 길고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함께하다 보면 끝이 난다. 밭일할 때마다 ‘눈은 게을러도 손은 부지런타’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늘 생각났다. 부부 두 명이 한 동 바닥 토사 치우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는데 여럿이 가서 하다 보면 한 동, 두 동 깨끗이 치워지는 건 정말 마법 같았다. 봉사 후에는 식당이나 의료사협에서 준비해 준 밥을 함께 먹으며 어디서 왔는지 인사도 나누고 소감도 나누었다. 서로를 보면서 감동을 받는 뜨거운 시간들이었다.
’김제동과 어깨동무‘ 회원들이 많이 참여했다. 뉴스를 보고 언제 갈 수 있을지 계속 채팅방에서 보면서 마음을 썼거나, 군청에 전화해 보고 개인 봉사 방법을 계속 찾았다는 분들도 많았다. 봉사 DNA는 따로 있는지 봉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 또 하게 되는 것 같았다. 휴가왔다가 봉사도 하고 가려고 온 강동구 구의원 부부, 돌아가서는 아들 중학교 아버지회에서 홍보해서 여러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또 오기도 했다. 부산에 사는 소방관, 특수교사 가족은 세 번이나 다녀가면서 정말 봉사에 진심인 분들이었다. 대구 계성중학교 봉사동아리, 간디고도 동아리 청소년들도 많이 참여해 주었다. 우리 지역 분들도 작업반장을 도맡아 주던 분, 몸이 안 좋은데도 아들들을 데리고 몇 번이나 참여한 분, 새벽에 봉사하고 출근하는 분,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함께했다. 우리 집을 숙소로 사용해 봉사 후 저녁에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들도 참 좋았다.
귀에 피 나도록 많은 전화와 문의를 받아낸 한나와 9월에 이어준 은영에게, 집을 숙소로 내놓기도 하고, 음료 배달 천사를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자원해서 해 준 모두가 대견하고 정말로 감사하다. 군에서 정한 ’산청 방문의 해‘였는데, 정말 많은 분이 관광이 아닌 봉사를 위해 방문해 산청을 진하게 체험하고 갔다. 현재 오픈채팅방에도 312명이 아직도 나가지 않고 산청을 걱정해주고 있다.
재난이 지나가고 남은 생각
다섯 마리를 새끼들을 다 데리고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 가족, 농막 지붕 위에 대피했던 개들, 진주까지 떠내려갔다가 구조돼 돌아온 소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야생동물들, 비인간 동물들도 함께 겪은 재난을 목격하고 생명에 대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산청사람들,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 재난 속에서 뜨겁게 만나고 회복을 위해 살아있는 공동체를 경험한 것 같다. 이런 봉사를 받을 줄은 몰랐다고, 앞으로 봉사하고 살고 싶다는 농민들, 어쩌면 도와준 일손보다 달려와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희망을 얻었다는 말이 더 소중한 것 같다.
재난 이후 앞으로 아직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분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일상이 될지도 모를 재난을 어떻게 대비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가을이 오고, 풀밭이 된 들깨 밭 풀을 매고, 무씨도 넣고 배추 모종도 심고 있다. 아침에 아이들과 달리기도 하고, 취미 강좌도 다시 참여하고 있다.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면서, 아직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분들과 손잡고 나누면서 살아갈 것이다.
산청 햇살
_낮에는 농사짓고 마을에서 사람들과 놀고 배우고, 저녁에는 별처럼 매일 반짝이며 자라는 아이들과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