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7(월)
 

남원은 남쪽이라 서울보다는 좀 따뜻했다.

얼마쯤 걷고 나니 광한루가 보였다.


춘향전 알지? 하나야

하나도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던 춘향전이 생각났다.

여기가 그곳이군요.

맞아…

여기가 춘향이와 이도령이 놀던 광한루야…

강준과 하나는 책으로만 봤던 광한루를 쳐다봤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광한루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가자… 늦었어.


여관에 도착했을 때 둘은 이미 지쳐 있었기에 쉽게 잠들었다.


강준에 일어난 시간은 새벽이었다.

하나를 깨우지 않게 조심스럽게 여관을 나왔다.

요천강을 따라 강준은 걸었다.


이 강물이 어디서 흘러 오는 것일까?

강준은 지나가는 남자에게 물었을 때 그 남자는 짧게 이야기했다.


“지리산에서 흘러나와요. “ 남자는 손으로 먼 산을 가리켰다.

큰 산이 남원의 동쪽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쪽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다.


“저 산이구나….”


아버지는 가끔 지리산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할아버지 고향에 있는 산이 지리산이라고

그 산은 아버지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이 물도 지리산에서 흘러오는구나!”

강준은 강으로 내려갔다.

흘러가는 물을 손으로 쥐었다.

4월의 강물은 아직 얼음처럼 차가웠다.

강준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하나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20220515_120858.jpg

“어디 갔다 왔어요"

“불안했어요"

“어… 앞에 강가에 가봤어"

“산책하러"

“그랬군요"

남원 시내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인월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 버스 터미널에는 등산객들과 학생들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한국말속에서 강준은 자신이 한국에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 여기가 조국이구나! 하나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땅에 있음을 확인했다.

조국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모르는 말을 사용하는 땅

여기가 조국이 맞는 것일까? 하나는 익숙하지 않은 말들 속에서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강준의 할아버지 고향 인월로 향했다.

강준과 하나를 태운 버스는 남원의 평야를 지나 가파른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원재]라는 팻말이 보였다.

높은 산길 사이로 난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버스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버스는 좌우로 흔들렸다. 하나는 강준의 손을 꼭 잡았다.


“무서워?”

“조금요"

그렇게 30분쯤 갔을까 고개 하나를 넘고 나니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이 산꼭대기에 이렇게 넓은 평야가 있다는 것이 강준은 신기했다.

버스는 인월터미널에 둘을 내려주었다.


“아저씨 산내요?”

“네 타세요" 택시 기사는 간단하게 답했다.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 저 산이 한국에서 가장 큰 산인 지리산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어머니 같은 산이라고도 하지요"

택시 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지리산에 대해 이것저것 신나게 떠들었다.

인월에서 택시로 20분 달리니 강준 할아버지의 고향이 나왔다.


강준은 동네 분들에게 할아버지에 관해 물었지만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 동네를 떠난 지 50년이 지났으니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도

모두 돌아가셨겠다고 강준은 생각했다.


“하나는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아?”

“별로요”

아버지 고향이 제주도라고 하던데요?

“제주는 멀어서 나중에 여행이라도 한 번 가면 될 것 같아요.

강준과 하나는 남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호텔에는 밤에 도착했다.

서울의 밤은 싸늘했다. 도쿄의 뱜을 닮았지만, 전혀 다른 날씨였고

남원과도 달랐다.


아침 방송을 보던 강준은 채널을 돌리다가 멈추었다.

집회 현장이 방송에 보였다.

시위대와 경찰이 몸싸움하고 있었다.


강준은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 우리 저기 가보자?”

“무서운데요.”

“싸우는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해요.”

“우리 그냥 서울 경복궁이나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멀리서 구경만 하자.”

“일본에서는 저런 현장을 볼 기회가 없잖아.”

“무슨 일이라도 생기겠어?”

“별일 없을 거야…”


강준의 거듭된 설득에 하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그만 보고 돌아와요? 네?

강준과 하나는 아침밥을 대충 먹고 지하철을 타고 대학교 앞에서 내렸다.

학교에 가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아무런 집회도 없었다.

캠퍼스 안에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조용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

집회가 끝났나 봐!

오늘 집회는 안 하나요?


강준은 지나가는 학생에게 물었다.

총학생회의실에 가보세요. 지나는 학생이 학생회실 위치를 알려줬다.

학생회실에 가보니 한 학생이 보였다.

오늘은 집회 안 하나요?

왜요?

저희는 일본에서 왔는데 방송에서 이 학교 앞에서 집회하는 것을 봤거든요.

궁금해서요.

아. 그러세요.

저는 일본어학과 조민의라고 해요.

아 저는 강준 이쪽은 하나라고 해요.

저는 1학년 신입생이라 잘 몰라요.

선배들은 다들 다른 곳에 있나 봐요.

저도 오늘 아는 선배를 만나러 왔는데 없더라고요.

네..

강준과 하나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 일도 없자, 살짝 실망스러웠다.

캠퍼스 구경이나 하고 돌아가자

학교 안에도 아무도 없는데요.

우리 이제 호텔로 돌아가요

강준과 하나가 광화문을 지날 때 집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호헌조치_6월항쟁_1.jpg

저기 시위하고 있는데,

우리 잠깐 여기서 내려서 보고 가자.

강준 씨 위험해 보여요

우리 그냥 호텔로 가요!

아니야!


멀리서 잠시만 보고 가자

이제 곧 일본에 돌아가잖아

우리 이런 시위는 영원히 방송에서만 볼지 몰라

강준이 버스에서 내리자, 하나는 마지못해 따라 내렸다.

 

강준과 하나가 내렸을 때 몇 백 명이었던 시위대는 시간이 지나자, 수가 몇만이 넘어 버렸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 호헌철폐뜻 당시의 헌법을 지키는 것(호헌)을 중단하고 헌법을 개정하라는 뜻. 전두환 정권 당시의 대통령 선거는 국민이 직접 투표하는 직접선거가 아닌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였고, 국민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군부정권이 계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반발하여 민주화세력을 비롯한 다수의 국민들은 직접선거제도를 포함한 개헌을 요구했으나 전두환 정부는 1987년 4월 13일에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호헌’을 선언했다. (4.13 호헌조치) 이 조치를 거두라는 것이 바로 ‘호헌철폐’호헌조치에 맞선 6월 항쟁의 구호였다. ]


시위대의 함성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강준과 하나가 서 있던 곳은 처음 시위 시작했을 때는 몇 백 미터 거리였지만 구경하는 사이 강준가 하나는 시위대 중앙에 서 있게 되었다.  강준도 시위대가 외치는 대로 따라 외쳤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

하나는 강준 옆에서 불안하게 쳐다봤다.

강준 씨 이제 돌아가요.

우리 시위대에 너무 깊숙이 있는 것 같아요.

빨리 가요!!

하지만 강준은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강준은 그동안 일본에서 받아왔던 차별 때문일까?

시위대와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하나야 시위대와 함께 구호도 외쳐봐!!

진짜 살아있는 기분이 들어…


호헌 철폐 독채 타도, 사실 강준은 호헌 철폐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사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가 무슨 말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차별금지, 차별철폐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많은 사람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함께 모여 구호를 외치고 하나가 되어 가는 것

이 순간이 좋았다.

강준 씨 이제 우리 빨리 돌아가요.

그 순간 경찰들이 앞쪽에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빨리 뛰어요.

강준 씨 빨리 도망쳐요.

전경과 경찰이 시위대를 포위하고 무력 진압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순식간에 집회 장소는 전쟁터처럼 보였다.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도로는 마비 상태가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강준은 하나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경찰과 전경이 시위대를 압박했다,

강준과 하나는 가게 사이의 좁은 골목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헉 헉…

 

탁 탁 턱 턱….

 

탁 탁 탁 탁….

,

,

,

윽….


여기저기 도망치는 소리와 싸우는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몇 분을 달렸을까, 시위대도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강준 씨 다행이에요.

여긴 안전한 것 같아요.


그래요.

여긴 경찰이 안 보여요.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퍽 퍽….


강준과 하나가 전경이 휘두른 곤봉을 맞고 쓰러졌다.

 

 

악….


야. 이놈들 차에 태워라…

강준과 하나는 호송차에 끌려갔다.

호송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잡혀 있었다.


와타시와 니혼진 데스.

저희는 일본 사람입니다.

저 여자는 일본 사람이에요.


이 자식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야! 봐주지 말고 끌고 가….


강준과 하나는 경찰서에 끌려갔다.

이놈들 좀 이상한데....

일본말하는 놈들이 시위대에 왜 있어?

한번 취조 좀 해봐,

일본 사람이라고 외치던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오 그러네요.

일본 사람이 한국 집회에 참여했다.

뭔가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이 팀장님

그렇지…. 이놈들 뭔가 있는 것 같으니까 더 조사해 보라고.


일본인이 한국 집회에 참여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이 팀장은 좋은 건수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조선총련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오늘 하루 종일 집회 현장에서 누적된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꽤 큰 건이 되겠는데…. 빨리 조사해서 보안사에 넘겨.


강준과 하나는 경찰 취조실로 끌려갔다.


“야…. 너희들 여기는 왜 왔어?


“ 아 서울 관광 왔어요


“관광…. 근데 집회에는 왜 가담했어….

버스를 타고 오다 보니 사람들이 많아 구경했어요.


진짜야?

네. 강준은 이제야 숨이 쉬어졌다.

이제 호텔에 가면 되죠?


이 자식 아주 웃기는 놈이군…. 야 인마….

어떤 미친놈이 시위 구경을 오냐…. 그것도 일본 놈이…. 재일 조선인이라….

이 팀장님 이것 잘 엮으면 한 건 하겠는데요.

그렇지…. 김 경위

일단 상부에 이야기해 보자.

일단 말이 안 되는 저 여자는 유치장으로 보내고 남자 놈은 상부로 보내….

강준은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서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검은 승용차에 태워졌다.



시동을 걸자마자 차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 팀장님, 이 녀석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야….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이런 녀석을 콩밥을 좀 먹어야지.

제가 봤을 때는 진짜 지나가다가 참가한 것 같은데요.

야…. 이 순경 너는 그렇게 세상을 순진하게 보면 어떡하니….

이놈들이 얼마나 악질인데,

이런 자식들은 다 잡아서 유치장에 넣거나 감옥에 처넣어야 해

요즘 세상이 너무 편해졌어

오늘 집회 나온 빨갱이 놈들 좀 봐

경기가 얼마나 좋고 일도 많고 지금 얼마나 좋냐….

그런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 씨발놈들이 다 잡아 쳐 넣어야 해

싹 잡아 가지고 정리해야 하는데,

저런 것들 옛날 같으면 다 삼청교육대에 보내서 인간개조를 해야 하는데 말이야.

우리 대통령님 너무 약해지신 것 아니야….

계엄령이라도 내려서 저것들 다 처넣어야 하는데 말이야….

안 그러냐고…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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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상실된 조국 2편" "고향이 남원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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