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7(월)
 

 

함께 책 읽는 사람들 

 

 

장소: 구례 숲거리길 책방 로파이(Lo-fi)

언제: 격주 월요일 밤 20:00~끝나는 시간 

누가: 빵, 양이, 장이, 정규, 보라, 야마, 상이, 유림, 지안, 단디,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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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응


  작년 7월, 숲거리길 개천 따라 파란 양철 대문, 로파이라는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 처음 나를 맞는 것은 벽에 걸린 바랜 종이 속 시인 허수경, 그 옆 독서 모집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나 책 모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시작한 독서는 팀 잉골드의 『조응』을 몇 차례 나눠 읽으면서 과제로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나누며 조응할 수 있었다.


  그 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 알렉시스 폴린 검스 『떠오르는 숨』을 읽고 해양 포유류를 통해 기후 위기에 생존법을 배우고 페미니즘과 퀴어에 대해,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을 읽고 여러 예술가와 그 작품을 통해 시야를 넓혀갔다. 필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같이 읽고 싶었다. 사실 릴케를 읽을 수 있음은 흔쾌히 함께 읽은 사람들 덕이다. 두이노의 비가를 발음하며 웃는 일이 많아져 릴케와 친해졌다고 하면 누군가는 의아해할 것이다. 독서 하면서 웃을 일이 많아진다. 공감의 마약 같은.


  감이 익어가던 계절, 우리는 마루에 앉아, 짜이를 앞에 두고 어느새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서울로 떠난 단디의 영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럴 즈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있어 우리는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1980년 5월은 필자의 오월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동기가 도청에서 진압군의 폭격에 쓰러져갔다, 1980년 광주는 되살리고 싶지 않은 기억의 중앙에 있다. “아마 전쟁이란 이런 걸 거야” 생각하던, 유언비어와 유비통신을 광주에서 접하면서, 진실을 일기장에 적던 날들이 생생하다, 아들의 주검 앞에서 오열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그 즈음, 그 끔찍한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밤을 또 접하기도 했다.


  어느 날, 마산의 하운팅걸즈 독서팀이 구례 로파이로 원정 와서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을 읽고 책을 통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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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펙토르님, 좋은 밤이에요


  우리는 보다 문학적인 책 읽기에 돌입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 『아구아비바』 『G.H에 다른 수난』 『달걀과 닭』 『별의 시간』 을 읽으면서 리스펙토르의 원시림을 향해 걸어갔다. 끊어지는 단락이 없이 지속되는 글의 흐름을 따라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읽고, 읽으면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읽었다. 『G,H에 따른 수난』을 읽고 바퀴벌레, 그녀의 세계, 무와 존재, 중립의 세계란 무엇인가 열띤 토론을 하다, 어쩌면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옆에 클라리시 사진을 두고, 클라리시와 같이 길을 잃어가며 숲을 헤쳐나갔다. 점차 그 깊이 속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클라리시를 읽는 즐거움. 네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사실 클라리시와 함께 살았다. 그녀의 마지막 작품 『별의 시간』에 도달했다. 책 마지막,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하지만 나도?!” 지금이 딸기 철이라는 걸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그래. 하고 맺는 그녀와 헤어지며, 우리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의식의 흐름 속 깊은 터널을 통과한 안도의 이심전심,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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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밤 뒤라스의 바다


  뒤라스 첫 책 『여름밤 열 시 반』을 읽고 이구동성으로 리스펙토르에 비해 뒤라스의 글이 쉽다고 했다. 역시 우리 멋진 사람들. 뒤라스의 글은 호흡이 짧고 행간이 길고 침묵이 자리해 숨 쉴 여지가 있어 좋았다. 숨어 있는 의식의 흐름을 우리는 간파해야 했다. 책을 읽고 각자의 질문을 나누는 방식으로 토론해나갔다. 깊어가는 밤, 뒤라스에게 섞이는 밤, 뒤라스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 인물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면서 망각이나 기억 싱실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글 사이 침묵은 독자에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혼란에 빠트리는 매력이 있다. 이는 뒤라스 소설을 잘못 읽는 재미인지도 모른다. 뒤라스의 『글』은 읽으면서 글을 쓰게 한다. 마지막 독서 『사랑』은 아름다운 한 권의 시였다. 죽음과 사랑은 하나이면서, 부재나 감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소개하면, “여러분에게 세계의 끝 같은 곳은 어디일까요” “본문에 딱 한번 나오는 사랑, 도대체 사랑은 무엇일까요?” “ 빛에 대해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책에서 빛, 햇빛, 뙤약볕, 낮 등이 어두움, 밤과 대비되어 나오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해요” “여행자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그는 무엇일까요?” “책을 읽다보니 죽음의 의미가 모호해서, 여기서 죽음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우리는 각자 끝이라 생각되는 장소나 심경을 토로했다. 누구는 아득한 제주의 바다 끝, 누구는 봉안당에서, 누구는 말라게따 해변을 걸으며, 누구는 계곡 수심으로 떨어지던 순간을, 누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속으로, 누구는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어쩌면 죽음과 사랑은 하나이며, 감옥이나, 부재, 개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한밤 마당에 둘러앉아 뒤라스 바다, 에스탈라를 걷고 있었다. 그와 그녀, 여행자처럼,



* 피 흘리던 시를 낭송하던 밤


 우리는 시집을 읽기로 했다. 시집 판매금이 난민에게 전액 기부되기로 한 『팔레스타인 시선집』이 마침 출간되고, 흔쾌히 의견이 수렴되어 시낭송회를 하였다. 광주에서 대학생 송이가 합류했다. 유림과 지안이 찾아와 더 풍성한 낭송회가 되었다. 돌아가며 시를 낭송하고, 팔레스타인이란 시를 합창하고 다시, 가자를 위한 시, 팔레스타인을 위한 시를, 낭송하며 그들과 함께했다. 2023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시인 리파트 알아리르의 시가 가슴을 울렸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너는 살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 시가 피를 흘리는, 시를 낭송하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팔레스타인에 전쟁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이 발효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찾아들기를,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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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는 책은 우리에게 변화를 


  기억에 남는 책이나 독서를 통해 나에게, 또는 책 모임의 변화를 묻자, 책방지기 방성원 님은 “저는 양이 형이랑 모니카랑 셋이서 오붓하게 모였던 『유러피언』이 생각납니다. 양이 형의 미술적 지식과 분석적 시각 덕분에 두꺼운 책을 비교적 재밌게 끝낼 수 있었고, 모니카도 책 모임 후 유럽 예술사로 무장한 채 유럽대륙으로 성공적인 진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회상한다. 유러피안을 읽던 시간은 책 모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았던 책이 조응이었다고 밝힌 양이 님은 “나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책 모임을 통해 오랜 시간 책을 읽다 보니, 생각과 말이 풍성해지고 넓어짐을 체감하고 마치, 뇌가 스트레칭 되는 느낌이었어요.”라는 말이 넉넉하다. 늦게 합류한 보라 님은 “같은 글을 읽지만, 각자의 감상을 듣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좋았어요. 결국, 책에서 내 이야기를 연결 짓게 되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수전 손택의 글이 떠오른다. “독서를 하면서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공동체, 문학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우리보다 앞서간 위대한 작가들을 통해 때론 기시감을 감지할 때의 희열, 읽지 않으면 알지 못할 그 순간을 읽었기 때문에 만끽하는 것이다. 


  책 읽기는 계속된다.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 우리의 소통은 가히 역동적이고 결합력이 있다. 누구는 주도적이고, 들어주고, 이끌어주고 조율하며 조응한다. 서로 간 성장을 확인하는 자리. 서로 질문하다 보면 책은 살아 우리에게 온다. 독서는 글을 쓰게 한다.

  책 모임에 동참할 수 있는 구례에 책방 로파이가 있어 참 좋다. 이 자리를 빌려 책방지기 방성원 님께 깊은 감사를, 함께 읽는 우리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다음 책 모임 <다요다 요코와 열차를 타고>.

 다요다 요코의 책을 계속 읽을 예정이다. 야간열차를 타고 자그레브로 떠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글쓴이 : 이촉

 

이촉 시인은 구례에 거주하며,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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