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웅박 씻나락]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김석봉
"저 부패하고 무능한 지역유지들의 자리를 빼앗는 혁명의 길에 나서야 한다"
[뒤웅박 씻나락]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_김석봉
(ⓒ한국저작권위원회)
지난주 동네는 소란했다.
119 응급차가 드나들면서 네 명의 이웃이 동네를 떠났다.
배불뚝이 정 씨는 밭에 나가 끝물고추 살피다 전동차가 밭두렁을 굴러 피를 철철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갔고, 소주를 양푼에 따라 마시던 대밭머리 박 씨는 기어이 술병에 쓰러져버렸다.
대추나무집 상촌양반이야 골골 거린지 오래라 병원 문턱이 다 닳았다지만 골목 안 봉칠이 아저씨의 병원 길은 이웃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팔십 줄에 앉은 봉칠이 아저씨는 논농사가 많았다. 동네서 가장 멀리 떨어지고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다랑논 열 마지기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모를 심었다.
봉칠이 아저씨의 병환은 거의 절망적이라는 말이 들렸다. 이제 살아서 돌아오기는 글렀다며 동네 이웃들은 저마다 혀를 찼다.
아침이면 늙은 아내를 싣고 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봉칠이 아저씨의 경운기를 이제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가을이면 누렇게 여물어가던 논배미도 묵어 산짐승들 놀이터로 변해버리겠지.
봉칠이 아저씨만 그런가. 내가 이 산골에 들어오고 지금껏 세상을 떠난 이웃은 부지기수다. 뒷집도 옆집도 앞집도 모두 비었다.
이제 동네는 폐허의 길에 접어들었다.
스스로 텃밭조차 일굴 수 없을 노인네만 남았다.
묵어 풀숲이 되어버린 논밭은 개울 건너까지 바짝 다가왔다. 마당에서 건너다보면 고라니 뛰노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인다. 엊그제 밤에는 마당 앞 감나무까지 수리부엉이가 찾아와 울었다.
한때 귀농귀촌 열풍이 불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뒤 언덕바지엔 포클레인이 온종일 뒤척였고 해마다 몇 채씩 집이 들어서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이 산골도 생기가 돌고 살 만 하려나. 모두들 기대에 차 있었다.
인구 늘리기에 혈안이 되어있던 군청도 앞장서서 귀농귀촌인 유입에 행정력을 쏟았다. 도로와 전기 수도시설을 지원하기까지 하면서 도시의 부동산개발업자들이 동네를 드나들었고, 곳곳에 새로운 주택지가 만들어졌다.
그 유행의 시절도 어느 시기부터 저물기 시작했다.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한 귀농귀촌자들은 하나둘 떠났고 동네 뒤 언덕바지에 지은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마을 주변 논밭들도 온통 천덕꾸러기가 되어 복덕방 매물 장부에 지번을 올렸다.
“김 사장. 여기 사인 좀 해줘요.”
곶감 깎을 요량으로 감대와 바구니를 챙기고 있는데 이장이 불쑥 찾아와 두어 장 서류철을 내밀었다.
“무슨 사인을?”
“다음 주에 군수가 방문한대요. 그래서 발전위원회에서 무슨 사업을 신청할 것인가 주민 의견을 묻는 거요.”
서류철을 받아 훑어보았다. 주민숙원사업 조사서였다. 몇 개의 사업명이 적혀있었고 선택해서 서명하는 형식의 문서였다. 발전위원회의 의중이 담겼는지 특정된 하나의 사업에 서명이 몰려있었다. ‘칠선교 야간조명설치’라는 사업이었다.
뚱딴지도 이런 뚱딴지같은 사업이 있나 싶었다. 밤에 자동차를 타고 그 길을 가면 한 대의 자동차도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턱이 있나.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을 칠선교에 밤새 현란한 불빛을 밝히는 일이 어찌 숙원사업이 될 수 있을까.
소위 지역유지라고 하는 자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며 행정에 빌붙어 벌여 온 엉터리 같은 일은 한둘이 아니다. 행정에서 넌지시 말을 흘리면 그 지역유지들이 나서서 공론화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형식으로 지역숙원사업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장은 행정의 나팔수일 뿐 마을공동체를 가꾸고 살피는 일엔 관심조차 없다. 면사무소 이장회의 다녀오면 마을방송으로 전달사항 읽어주는 일이 유일하다.
그것만 하면 괜찮기라도 하지. 누구라도 이장에 선출되면 임기 내내 자기 잇속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자기 논밭으로 가는 농로 보수 작업이나 자기 집 주변 가로등이라도 하나 더 밝히려고 서둔다.
동네가 폐허로 변해가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지역이 소멸해 가는 이유가 바로 이런 현상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폐허의 그림자는 자기 발끝까지 다가오고 마침내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가 한 움큼씩 떨어져 나간다.
폐허로 변해가는 동네, 한밤중 인적 끊긴 적막 속에서 다리에 반짝반짝 불을 밝힌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차라리 모든 불을 꺼버리는 것은 어떨까. 그 짙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를 날게 하고, 별을 더욱 빛나게 하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들리게 하는 것은 어떨까.
농사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공동체의 공공성을 되살리는 일을 숙원사업으로 정할 수는 없을까. 그런 일을 해 나갈 사람들은 없을까.
겉으로 나서서는 ‘시골이 큰일입네,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되네’ 하면서도 정작 무슨 행동도 하지 않았지. 하는 척하다가 금세 물러나 버리는 시늉쟁이였지. 하긴 나도 마을 일에 나섰다가 한순간 손 씻고 돌아앉아 버린 한심한 귀농자였지.
그 사이 지역은 더욱 한심한 모습으로 변해갔고, 동네는 더욱 어두워졌지.
연말이면 동네마다 대동회가 열린다. 대동회는 이장을 선출하는 자리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는 공동체에 관심이 있다면 이장 선거에 나서 보자.
내년이면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유지들의 잔치가 아니다.
당신이 지역소멸을 걱정하고 어처구니없는 지역숙원사업이 지역을 망친다고 생각한다면 지방선거에 나서 보자.
사람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만이 희망이라면 대동회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지방선거를 남의 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저 부패하고 무능한 지역유지들의 자리를 빼앗는 혁명의 길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지역이 살고 공동체가 살고 너와 내가 산다.

(ⓒ김인호)
글쓴이 김석봉
1957년 경남 하동 옥종 농가에서 태어났다.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 교도관으로 유월항쟁을 맞이하였고, 1987년 진주교도소에서 문익환 목사를 만나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공동의장을 거쳐 200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녹색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12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경남 함양군 지리산 기슭으로 귀농하여 적지 않은 농사를 일구고 있다. 아내와 아들내외와 손녀까지 3대 다섯 식구가 모여 산다.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쓴다.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 <인문학과 생태학> 책을 썼다.
뒤웅박 씻나락 칼럼
'뒤웅박 씻나락'은 이듬해 종자로 쓸 귀한 볍씨를 가리키는데요,
이 칼럼의 글들이 뒤웅박 씻나락으로서 앞으로 생명·평화·나눔·돌봄·연대의 사회를 위한 씨앗이자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며
만든 칼럼입니다.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인>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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