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1-17(월)
 

 

뒷간에 앉아 보낸 세월

 

박 두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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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Marko Lengyel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있으면 강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강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두텁나루의 아침은 또 다른 세상이다. 새들은 날아오르거나 자맥질하거나 바위에 외다리로 서 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경이로운 풍경 속 점 하나로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세상은 그 세상대로 이 세상은 이 세상대로 쪼그려 앉아 다리가 저린 세상,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해가 가고 한 생이 간다. 그렇게 지리산 어느 구석 바위틈에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구절초 하나 홀로 피었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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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노트>

 

 

거처가 강가에 있다 보니 매일 흐르는 강을 보며 산다. 흐르는 세월이다. 촌음도 멈추지 않고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매일 느끼며 사는 것인데 이는 의 무상함으로 온다. 붓다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하나의 풍경으로 보는 것이다. 모두가 스스로에 주어진 한 生을 보내는 촌음의 시간인데 누구의 눈길이 부럽거나 두려울 게 무어 있을까. 지리산의 홀로 핀 구절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다 가지만, 세상의 비와 바람을 다 맞고 꽃을 피워 스스로 봄이 되고 벌과 나비의 양식이 되고 씨를 맺어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건만 스스로에게 또는 세상에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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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찾아서] 뒷간에 앉아 보낸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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