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동 소식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보통은 입동이 되면 단풍이 절정이든가 절정을 막 지날 때입니다. 무 배추는 서리 맞아 맛이 깊어지는데 무는 별안간 영하로 떨어지면 얼어버려 못 먹기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 합니다. 추위 전날 캐서 무청은 엮어 시레기 널고 무는 땅속에 묻습니다. 저는 그냥 신문지로 싸서 종이상자에 넣어둡니다. 곧 김장 담그니 헐하게 싸도 되지만 김장 담고 남은 무들은 낱개씩 꼼꼼하게 싸서 종이박스에 넣고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방구석에 보관합니다. 고구마는 따뜻한 곳에 두지만 무는 그렇다고 따뜻하면 안돼요. 냉장고는 습기 찰 우려 있어 조심하는 게 좋구요.
배추는 끈이나 볏짚으로 묶어주는데 이는 결구 잘 되라고 하는 게 아닌 보온 때문이에요. 그래서 날 따뜻한데 묶어주었다간 벌레만 꼬일 수 있어요. 한로와 9.9절 사이에 심은 밀, 보리, 호밀 등은 입동 전에 새싹이 나는 게 좋습니다. 옛말에 입동에 보리 뿌리가 세 갈래로 갈라지면 풍년들 조짐이라고 했지요. 겉으로 볼 때 잎은 두 갈래로 갈라져 최소 세 치 정도면 좋습니다. 적당히 잘 자란 겁니다. 덜 자라도 웃 자라도 동해 입기 쉽거든요.
입동 지나 배추 김장 담그기 전에 총각 김치를 담급니다. 김장에 채 썰어 속을 만들 무로는 동치미 담지만 그것으로도 남는 무로는 내년 봄에 먹을 무짠지를 담습니다. 소금 물로만 담는 무 짠지를 어른들은 뭐가 맛있다고 좋아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이 드니 그 깊은 맛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소금에 쩔은 무를 나박나박 썰어 맹물에 담가 채 썰듯 파 띄우면 그 국물 맛과 무 맛이 기똥 찹니다.
입동은 보통 음력 10월 전후로 드는데 올 입동은 윤6월에 영향 받아 음력 9월 18일에 들었습니다. 매우 빠른 거죠. 말하자면 겨울이 빨리 오는 건데 그러다보니 그 겨울이 따뜻한 겁니다. 아마 올 겨울도 온난화니, 이상 기온이니 하며 호들갑이 난리일 것 같습니다. 저는 따뜻한 것보다 가물까봐 더 걱정입니다. 입동 일진이 경진庚辰인데 하필 이 경자가 가문 기운이거든요. 입동은 겨울의 첫단추이고요. 앞의 상강에서 말했듯이 나뭇잎이 단풍 들 새도 없이 겨울을 맞으면 떨켜 만들지 못해 낙엽을 떨어뜨리지 못한 채 겨울을 맞아 산불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산들의 숲은 무원칙하게 너무 우거져 대형 산불이 잦잖아요.
입동은 말 그대로 겨울의 시작이니 겨울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다음에 오는 소설 전에는 끝내는 게 좋습니다. 소설에 꼭 추위가 오기에 미리미리 해 두어야죠. 겨울 준비의 핵심은 먹을 것과 땔감입니다. 옛날엔 김장 담그고 연탄 들여놓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든든해 하셨어요.
그런데 농부는 더 있어요. 겨울에 대비한 토양 관리가 그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겨울과 여름에 토양이 제일 피해를 봅니다. 여름의 폭염과 장마로 망가지고 그 다음으로 겨울의 추위와 가뭄과 바람으로 망가집니다. 지금은 겨울이 덜 춥지만 가뭄과 바람은 여전합니다. 땅을 말리는 가뭄의 피해는 알 수 있지만 바람이 땅을 망가뜨린다는 것은 잘 모르죠. 그러나 제주도 가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스산한 겨울 바람이 몸 속을 파고드는 걸 보고 결코 제주도가 따뜻한 곳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지요. 그 바람이 흙을 날려 버립니다. 토양 유실이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제주도에 많은 돌들이 고마운 겁니다. 흙을 바람으로부터 잡아주니요.
입동 전후로 농부는 참으로 바쁩니다. 여름 작물 수확해야지, 월동작물 파종해야지, 씨도 받아야지, 김장 해야지 등 진짜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땅 돌보는 데 소홀한 경우가 많아졌어요. 시골 가보면 겨울에 그냥 방치되다 시피 한 경작지를 쉽게 볼 수 있거든요. 아마도 고령화 때문이기도 할 거구요, 기계와 자재가 발달해 덜 신경쓰는 것도 한 몫 할 겁니다.
그런데 겨울을 잘 대비하면 봄이 참으로 축복입니다. 그 부활의 기운이 감동이거든요. 그럼 소설에 뵙지요.
입동 전후 농사 일정:제 개인 일정임을 감안해주기 바랍니다.
볏가리 사진 설명
옛날엔 벼를 바로 탈곡하지 않고 볏가리 쌓아 그때그때 먹을만큼만 탈곡 도정해 먹었습니다. 알곡 달린 이삭을 안쪽으로 해서 원기둥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처럼 이엉을 엮어 얹으면 비도 스며들지 않고 쥐도 들어가지 못했다니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죠? 미리 도정하지 않아 늘 신선한 걸 먹었으니 건강에도 좋았을겁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