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❹ 똥폼이 월간정상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⑤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똥폼이 월간정상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똥폼
비가 그쳤어. 구름이 동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물기를 잔뜩
머금은 무겁고 어두운 구름. 먹구름이 파란 하늘에 잠시
자리를 내어 주면 나는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하늘을 봐.
한 줄기 햇살 사이로 들려오는, 여치인지 귀뚜라미인지
메뚜기인지 스무 해를 살고도 여전히 분간 못 하는, 곤충들의
울음소리. 이제 가을인가 봐.
어제 텃밭을 정리했어. 대파는 두 줄 남기고 다 뽑고,
지난해에 먹다 지쳐 제풀에 올라온 토마토는 그냥 두었어. 팥
이파리는 무성한데 열매도 실할지. 주말엔 호박넝쿨을 거둬
내야겠어. 무씨를 뿌려야 하니까. 정리된 밭은 말끔하겠지만
그만큼 또 쓸쓸하겠지. 실은 날이 갈수록 붉어지는 토마토와
보랏빛 선명한 가지를 볼 때마다 뒤로 물러날 여름을
실감했지. 순간을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오지 않은 시간을
끌어당기는 버릇을 난 아직 어쩌지 못했어.
이맘때가, 그러니까 월말 공연을 끝내고 다음 달 공연을
시작하기 2주 전까지가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니? 좀 쉬고 있는 거야? 네가 처음 달마다 공연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속으론 많이 걱정했어. 다시 머리가
아프면 어쩌나, 몸에 기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관객과 한
약속이니 지키려고 또 얼마나 애를 쓰려나.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생각이 많았어. 다만 한 가지, 공연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하겠다는 선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더라.
도망, 가고 싶니?
산내에 내려온 지 이제 꼭 스무 해가 되었어. 절반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다”던 최승자의 시를
읊조리며 살았고, 나머지 절반은 단전에 잔뜩 힘을 넣고 ‘버텨
보겠어’를 주문처럼 외우고 살았지. 가끔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이 마을의 성평등 감각과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는
성인지 감수성에 거품을 물기도 했어.
시골은 단언컨대 남성에 최적화된 거주지다. 기본값 ‘남
성’이 그 어느 곳보다 활성화되는 장소다. 이 때문에 마
을회관은 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누워서
빈둥거리며 TV를 보는 거실 혹은 방 중심의 남성 공간
과 그 남성을 위해 밥을 짓고 상을 차리는 여성들이 분
주하게 움직이는 주방 공간. 귀농 후 첫해는 누구보다
열심히 성별분업의 현장을 수용하며 살았다. 고무장갑,
호미, 목장갑, 앞치마 4종 세트를 상시 휴대하며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
이다. - 정상순, <정상순의 브런치> 2021. 1.
기억나니? 그때마다 우리도 저들처럼 힘을 갖고 싶다고,
동등해지자고 두 손을 불끈 쥐기도 했지. 마을 노동이 성별에
따라 나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니 가사노동이
부불노동unpaid labor인 까닭을 생각해야 했어. 동시에
가사노동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건지,
충분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 왜냐면 결국은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누군가 대신해야 하니까. 게다가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기 가족 아닌 다른 이의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주
노동자일 테니까. 우리는 백만 이주 노동자와 함께 살고 있고
이미 그들 없이는 농사도, 돌봄 노동도, 공장 노동도, 택배
노동도 지금처럼 지속될 수 없을 테니까. 그래, 마침내 다시
생각해야 했어. 스무 해 전 너와 나는 왜 이곳으로 왔는지.
우리가 꿈꿨던 것은 생태적이고 자립적이며 조화로운
삶이었어.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망치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삶을 원했지. 그러나 생태적이며 자립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밑 빠진 항아리를 채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우리가 생각하는 자립이 누군가가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다시 멈춰 서야 하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지난해에 한 환경운동가가 내게 물었어. 나는 우선 그 사람
질문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이야기를
이어갔지.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하던 중이었는데 교육 시간
내내 이분이 보인 태도는 호의적이지 않았거든.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한 것으로 만드는 데
만족하는 주의 혹은 주장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배제하는 것으로 개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이제 제가 질문하신 분께 다시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을 네가 이어받았다고 생각해.

질문, 하고 싶니?
「월간정상순」 4월호에서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우린 서로를 돌보는 것’이라 선언한 순간이
그랬어. 아픈 사람을 무능력한 존재로 보는 사회, 아프지 않은
몸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 생산하지 않는 존재를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 절하하는 사회에서, 능력이 무엇인지,
정상적인 몸이 무엇인지, 생산성이 무엇인지 질문했으니까.
아팠지만 내 인생이 총체적으로 망가진 건 아니었어. 그
러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나를 망가진 무엇으로 대했
지. 그러지 않고서야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느니, 생리
통이 줄어들게 임신을 하라느니 저런 말들을 저토록 쉽
게 내뱉을 수는 없었을 거야. 너도 반찬 맡기고 빨래
맡기고 그렇게 의존하며 살면서 왜 나만 그렇게 독립적
이길 요구하니? 대체 의존적이라는 게 뭐니, 독립적이라
는 게 뭐야? - 「월간정상순」 4월호
5월호는 필수노동인 가사노동을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위치시키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질문했지. 임신, 출산,
양육의 시기를 거쳐 노동시장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여성들에게 경단녀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에게 왜
경단녀냐고, 경단녀 아니고 경력 보유 여성, 경보녀라고
소리쳤어. 무엇보다 ‘남자들을 따라잡는 그 길’ 아닌 다른
길을 찾으려는 여성들을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졸라 열심히 일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란 말은
마요/ 그런 말은 당신 말고 내 몫이니/ 누구 덕에 먹고
사나 생각해 봐/ 돈 벌어와 으스대면 가장이니/ 가장이
란 살림하는 사람인 걸/ 이제부터 가장은 너 아닌 나/
가사노동자라네 (…) 백만이주노동자를 밟고 섰네/ 돌봄
가사 농사 택배 공장 노동/ 남자들을 따라잡는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나/ 다른 길 만드세 - 「월간정상
순」 5월호
6월호는 고기 이전에 생명이라는 존재들의 호소 즉, ‘단 한
번만 멈춰 서자’는, ‘단 한 번만 돌아보자’는, ‘먹히기 위해서
사는 삶은 없다’는 비인간동물들의 피를 토하는 호소였어. 단
한 방울의 피도 손에 묻히지 않고 남의 살점을 입에 넣을 수
있는 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지.
우리는 붉은 피를 손에 묻힌 도살장의, 상업적 어선의
저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얼굴 가진 동물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소가 돼지가 닭이
그러하듯 우리는 동물입니다. 당신도 그러합니다. -
「월간정상순」 6월호

7월호는 마을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 마을
주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어.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숨어 있어야
해?’라는 대사를 곱씹었다는 관객도 있었지.
현식이 엄마 얘기 들어 주지 마. 그 얘기 듣고 여기 와
서 옮기지도 말고. 니가 뭔가 중간에서 해 보고 싶을
수 있는데, 지금처럼 현식이 엄마 말 나한테 전하는 거,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그냥 살던 대로 사
는 거야. 그러다 너 제풀에 지쳐서 나도 할 만큼 했는
데 중간에 끼어서 내가 제일 힘들다느니, 내가 피해자라
느니 그런 말 하게 된다.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어. 내
딸이, 그리고 내 딸 친구들이 지금 어떤 지옥에 있을지
상상이 안 되면 그냥 가만히 있어. 그래도 꼭 무슨 말
이 하고 싶거든. 현식이 엄마한테 가서 말해. 현식이 공
부시키라고. 똑같은 짓 다시 안 하게 공부시키고, 제대
로 된 처벌 받으라고. - 「월간정상순」 7월호
8월호는 ‘가난한 자 뒤에 서서 세상을 망치고 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이었지. 왜 세상은 점점 살
만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곳이 되어 가는지, 우리가 함께 살
만해지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어.
누가 세상을 망치나. 가난한 자 뒤에 서서. - 「월간정
상순」 8월호
곧 선보일 9월호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난민을 다룰
거라고 들었어. 그래, 9월호에서만큼은 몇 해 전, 예멘
난민에게 보였던 미숙함과는 다른 환대의 언어와 행동이
넘실거린다면 좋겠어.
돌아, 보고 싶니?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에코페미니즘에 분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시골에 내려와 살아 보니 농사가 요구하는
집약적 노동을 대부분 여성이 감당하고 있더라. 그런데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철없이 과거를 복원하거나 과거로
회귀하자며 변죽만 울리는 것 같아 답답했지. ‘돌봄 노동이
중요하다는 건, 그래 알겠다고. 근데 나더러 평생
재생산노동에 뼈를 갈아 넣으라는 거야? 페미니즘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이나 성별화된 노동에서 겨우 벗어났어. 근데
뭐야, 이건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좋으면 당신들이나 해. 평생 애도 안 키우고 살림도 안 해 본
거 같은 사람들이 말만 번지르르하네.’ 내 마음속 저항은
어마어마했어.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 생태주의자 흉내를 내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어. 하루를 비닐봉지 씻어 말리는 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 하지만 지역으로
내려와 도시와는 다른 삶을 살고자 했을 때, 생태적으로
자립적으로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나에겐 페미니즘적 사유가
없었어. 도시나 지역이나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패배감이 더 컸던 시간도 있었지.
그런데 마침내 페미니즘적 사유를 하게 됐을 때, 귀농을
결심했을 때와는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나를 발견했어. 난 여전히 권리 투쟁
중이었거든.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욕망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남녀
불평등은 더 심해지는지, 여성 혐오와 여성을 향한 폭력이
멈추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살피지 못했어. 결국 너와 내가
왜 이곳으로 내려왔는지 그 까닭을 금세 잊고 말았어. 그리고
오랫동안 굳이 그 까닭을 다시 묻지 않았어.

한 달 전쯤 같은 마을에 사는 인터뷰 집단이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어. 간단한 소개를 듣고 싶다기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을 구성원 중 한 명입니다.”라고 대답했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부캐가 많잖아. 닉네임도 여러 개고.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부캐도, 어떤 닉네임도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을 주민’이라는 말을 능가할 답을 찾지
못했달까. 며칠 전엔 지역 에코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초대됐는데 또 “어떻게 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
내 대답은 같았어.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그들이 꺼낸 질문은 줄곧 너와 내가 우리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었어. 지난해, 몸이 몹시 아프던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생각했어. 원래 생각이 많은데, 아파 누운 시간이
많아지니까 정말 생각이 많아지더라. 내친김에 묻고 또
물었어. 나는 왜 도시 삶을 접고 이곳으로 내려왔는지, 그리고
지금 왜 이곳에서 삶을 이어 가고 있는지.
응답, 하고 싶어
땅을 살리고 씨앗을 살리는 일이 여성으로서 네 몸을
소외시키지 않는 일이며 재생의 에너지와 재생산 권리
(능력)를 되찾는 일에 다름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임신 출산 육아 노동을 고된 노동으로만 여기
지 않고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노동임을, 다른 노동의 가
치에 견주어 하위에 속하는 노동이 아님을 좀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리하여 임출육의 기간
이후에 찾아올 상대적 자유를 배우자 따라잡기에 허비
하지 않고 캐롤 엠쉬윌러Carol Emshwiller의 놀라운 소
설 「애들」의 여성들처럼 남성들에게 “우리처럼 살라”
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 <정상순의 브런치>
2020. 11.
아마도 지금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이 사회에 깔린 구조적
모순을 기억하는 사람들일 거야. 모순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일 거야. 페미니스트로서 인식한
가부장제의 모순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음을
똑똑히 알고 그 시스템에서 모두가 벗어난, 해방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내가 해방이라는 말을 쓸 줄 이야)일 거야.
그래서 나는 보다 작은 원으로 둘러앉고, 보다 작은 모임을
꾸리며, 보다 작은 극장에서, 보다 적은 수의 관객과 마주하는
너를 응원해. 더 작게 모이고, 더 가까운 곳을 바라보고, 더
적은 양에 만족하는 일로 너는 이 지긋지긋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벗겨 내고 있잖아.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바꾸지 못한 나는, 너에게서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

여전히 힘이 필요한 순간들을 느껴.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
동등해지기 위해 힘을 쓰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어. 세상
어떤 존재도 누군가를 위한 쓸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감각,
권리에 대한 주의나 주장만으론 바꿀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사유, 함께 사는 해방된 삶에 대한 원대하고 창대한 상상.
만약 힘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이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키우기 위해서일 거야. 내가 잘 살기 위한 권리가 아닌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해방의 투쟁, 이것이 스무 해를
이곳에서 살아 내며 너와 내가 함께 가게 된 길임을 믿어.
해가 졌어. 구름이 별을 가릴지도 모르지. 한낮에도 하늘은
무겁고 흐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면
다시 아침이 온다는 걸 알아. 낮에는 뵈지 않는 달과 별이 늘
거기 있다는 것도 알아.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오늘은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나를 좀 봐주려고 해.
이번만큼은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돌보려고 해. 그러지
않으면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테니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는 함께 평화로울 수 없을 테니까. 함께 평화롭기 위해
나는 네 손을 잡을 테니까. 이윽고 우린 다른 이와 손을 잡고
있을 테니까.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우린 먹구름 속에서도
별과 달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결코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 똥폼 ◌
산내 사는 ‘마을 사람’. 공연 플랫폼 ‘월간 정상순’에서 한 달에 한
번 뛰놀고, 농한기 마을극단 ‘떼아뜨르 마고’, 페미니즘
공연예술단 ‘아무튼, 유랑단’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만끽
중이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착취를 꼬집는 「월간정상순」 8월호는 똥폼이 보내는 이번 편지와 주제가 맞닿아 독자들을 <<벗자편지>>에 전문을 실었으나, <지리산인> 지면에는 담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