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안철환의 절기일기] 

너무 따뜻한 올해 대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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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구되지 않는 토종배추와 김장재료들, 평소에 비해 1/3밖에 되지 않는 양이다. 총각김치, 깍두기를 좀 많이 담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워 보인다.

 

 

아마 24절기 중 제일 할 얘기 없는 게 대설일 겁니다. 소설 이후 해야 할 겨울 준비의 연장 정도에요. 아무리 늦어도 동지 전까진 겨울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소설에 첫 추위가 찾아온다면 대설엔 약간 포근한 편이에요. 지난 소설 전후로 영하의 날씨가 그리 매섭지 않은 정도로 왔다가 지난 주 수목금요일에 첫눈과 함께 영하 9도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추위가 왔죠. 그리고 포근한 대설답게 바로 날이 풀려 늦은 김장하는 사람들이 덜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도 올 겨울은 너무 따뜻해요. 애동지가 드는 겨울은 따뜻한 편이라지만 좀 심합니다. 날씨가 제 날씨답지 않으면 자연 생태에 뭔 일이 납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추위가 가져다주는 생태청소 기능이 반감되지요. 추위로 죽어야 할 병해충,균들이 월동을 많이 해 극성을 부릴 수 있구요. 겨울잠을 자거나 활동을 확 줄여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는데 춥지 않으면 활동을 지속하게 되고 그러면 에너지가 고갈될 수도 있을겁니다.

 

음식의 참맛은 텃밭에서 시작

 

암튼 저희도 김장을 소설 일주일 지나 했습니다. 물론 소설 일주일 전엔 총각김치와 깍두기도 담갔지요. 오늘은 그 중에 김장배추 얘기 좀 드릴까 합니다. 우선 배추농사부터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얘기가 길어져 간단히 짚고 넘어가지요. 농사 얘길 안 할 수 없는 게 음식의 맛은 주방에서가 아니라 텃밭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음식의 참맛은 흙맛에서 오기 때문이에요. 

 

배추의 진짜 맛은 속잎이 아닌 겉잎에 있는 걸 요즘 사람들은 잘 몰라요. 배추의 조상은 순무입니다. 그래서 진짜 배추의 맛은 순무처럼 쌉싸르하면서 개운한 뒷맛이 나는데 그게 겉잎에 많거든요. 요즘 결구배추라 해서 양배추 같은 속잎 위주로 키우고 먹는데 미안하게도 이건 얄팍한 맛이에요. 달고 고소하지만 깊은 배추의 맛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달고 고소한 결구배추는 매우 키우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벌레와 병균이 무지 많아요. 약을 많이 쳐야죠.

 

겉잎 위주의 배추는 강해요. 특유의 배추향과 질긴 섬유질이 병해충균을 막아주거든요. 말하자면 살아있는 흙맛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흙에는 병해충균을 막는 유익한 미생물이 무지 많습니다.

이렇게 원재료가 살아있으면 양념이 많이 필요없어요. 배추 자체의 맛을 느끼려면 양념을 적게 넣어야 됩니다. 음식의 맛은 주방의 양념이 아닌 텃밭의 흙과 퇴비가 만든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김장과 메주 쑤기

 

요즘 김장 담글 때 보면 얼마나 속을 많이 넣는지 기어코 만두를 만들고 말거야 하는 듯한 기세에요. 속에 들어가는 재료도 화려하고 많지요. 저희는 속에 들어가는 양념이 너무 단촐합니다. 풀도 쑤지 않아요. 풀을 쑤어 넣은 김치는 국물이 시원치 않습니다. 오래가면 묵은내 나지요. 무채에다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그리고 약간의 젓갈 넣는 게 다에요. 아, 풀 쑤는 대신에 다시마 북어대가리 넣고 끓인 육수를 빠뜨렸는데 그러고 보니, 저희의 비장의 무기인 고추씨 넣는 것도 빠뜨렸습니다. 소금과 젓갈만 빼곤 다 저희 텃밭에서 나온 것들이지요. 조미료도 설탕도 그 외 첨가재료 일체 없습니다.

 

저희는 절인배추에 속을 넣는 게 아니고 좀 과장해서 말하면 스윽 구경만 시켜줄 정도로 묻혀줍니다. 익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만 익기 시작하면 그 개운하고 감칠맛이 끝내줍니다. 쌉싸르레 하면서 매운 고추가루 땜에 칼칼하고 개운한 그 뒷맛이란.... 이 말 하면서 뒷방에서 익고 있는 김치를 떠올리니 군침이 돕니다. ㅎ

 

김장 담그는 일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메주 쑤는 겁니다. 부끄럽게도 농사 경력 30년 육박할 때까지 메주를 한 번도 쑤어 보지 못했어요. ㅠㅠ 핑계를 대자면 그 쉽다던 메주콩 농사를 제대로 성공해 본 게 한 번 정도에요. 아무리 못해도 스므번은 심었을텐데 말이죠. 처음엔 고집스럽게 직파(直播)만 하다 심은 콩 쪼아먹는 새들 좋은 일만 했고요, 어느 정도 직파법에 성공할 즈음 노린재가 극성을 부려 또 실패....... 그 다음엔 날씨가 받쳐주지 않아 계속 실패하곤 했어요. 콩꽃 필 때 비가 많이 온다든가, 너무 뜨겁다든가 등 해서 수정이 되질 않아 콩 코투리가 쭉정이 투성이었죠. 정작 성공했다 싶을 때는 너무 조심하느라 조금 심는 바람에 된장 담글만큼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올해도 콩 농사가 잘된 편이었는데요, 제가 위탁 관리해주는 남의 농장이라 수확물은 제 것이 아니었고, 제 땅엔 아예 심질 않았으니 메주와 된장은 머나먼 얘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먹고 있는 된장은 저희가 담근 것은 분명합니다. 메주 사다가 장 담근 것이긴 하지만요. ㅠㅠ

 

 

고구마를 먹으면 착해진다?

내가 고구마를 좋아하는 까닭

 

겨울의 별식 아닌 별식은 고구마입니다. 고구마는 겨울식량으로 참 좋습니다. 요즘 고구마는 너무 달아 군것질밖에 되질 않아요. 얼마나 달면 이름이 꿀고구마에요 참~, 그러면 꿀을 먹지 왜 고구마를 먹을까요. 저는 백고구마, 물고구마라는 토종 고구마 2종을 심는데요, 참 달지 않아요. 그래서 이게 밥이 됩니다. 물리지 않으니요. 그렇지만 그 구수한 맛은 맛을 아는 사람들에겐 그게 별미입니다.

 

농한기인 겨울에도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게 어색해요. 세끼 밥을 먹다보면 하루가 다 밥 먹는 일 같지요. 곰곰 생각해보면 두끼 먹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버릇이 되서 그게 힘들더라구요. 그럴 때 점심을 고구마로 해결하는 겁니다. 김치만 있으면 돼요. 동치미까지 있으면 환상이죠. 제 생각엔 점심은 분명 새참이었을 겁니다. 마음의 한 점을 찍는다는 점심이나 사이에 먹는 참이나 비슷하죠? 힘든 일 할 땐 점심을 꼭 먹더라도 많이 먹으면 식곤증이 와 많이 먹지 말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제가 고구마 심는 이유는 고구마보다는 고구마 줄거리에 있습니다. 그 구수함의 진가는 열매보다 줄거리에 있지요. 토종 고구마일수록 더 끝내줍니다. 저희는 고구마 줄거리 다듬을 때 껍질을 벗기지 않습니다. 껍질 째 삶아 간장이나 된장에 졸여 먹지요. 껍질 째 먹어야 아삭함이 끝내줍니다. 일도 적지요. 되도록 가공을 적게 해야 좋거든요. 제가 농반진반으로 한 말인데요, 음식을 하는데 복잡하고 힘든 거는 분명 여성들을 부엌떼기로 붙잡아두려는 속셈이었을 거라고 말이죠. 음식은 쉬워야 합니다. 가공도 적고 양념도 적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남녀노소가 다 음식 할 수 있어요. 생명이면 누구나 스스로 밥을 해 먹을 수 있어야지 한 사람에게 의존한다는 게 얼마나 자연스럽지 않고 위험하겠어요.

 

그 다음에 제가 고구마 좋아하는 건 이게 농사가 아주 쉽다는 거에요. 같은 땅에 연작을 해도 아주 잘되고 거름도 아주 조금만 줘요. 저는 오줌 한 번 주는 게 다지요. 땅을 망가뜨리기는 커녕 땅을 지켜줍니다. 저는 사막화 방지해주는 미래 식량이라 극찬합니다.

또 건강에도 아주 좋아요. 고구마는 썩을 때 조용한 반면 감자는 썩을 때 시끄럽다 했어요. 보니까 감자는 단백질이 많아 썩는 내가 진동을 하는 반면 고구마는 거의 섬유질에 미네랄이라 썩는 내가 없어 썩는 질 모르거든요. 그래 제가 이런 말도 만들었지요. 고기 많이 먹으면 성질이 사나워지지만 고구마 많이 먹으면 착해진다고요. 왜 그럴까요? 고구마로 밥을 먹으면 힘이 없어 그렇다고 뻥을 치면 사람들이 재밌어 합니다. 근데 전쟁을 많이 한 서양인들은 전투에 나갈 병사들에게 전날 고기를 많이 먹였다고 합니다. 착하면 사람 죽이기 힘들테니요.

 

 

겨울을 겨울답게 나는 지혜

 

아무튼 별 할 얘기 없다 해놓고 말이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겨울은 겨울답게 마치 겨울잠 자듯 덜 먹고, 덜 일하고, 지난 날을 반성하고 올 날을 찬찬히 계획하는 그런 시기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도시에 사느라 일년내내 바쁘게 사니 이런 얘기가 한가해 보여 미안키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15년 전인가 겨울에 시골 구석구석을 돌며 토종씨앗 수집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토종박사님 따라 함께 간 후배 한 친구는 저와 나이 차이가 10년 이상 나는 것에 비해 전통에 대해 아는 것도 많고 공부도 많이 했지요. 농사지으며 저 이상으로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과 코드 맞추는 맛을 일찍부터 알았던지, 토종씨앗 때문에 돌아다닌 여독을 표현하길, “겨울잠을 자지 않았더니 몸이 무거워요.” 하는 거지 뭡니까. 참 웃기기도 하여 “겨울잠을 어떻게 자는데?” 하니 “되도록 외출도 하지 않고, 전화도 덜 하고, 일도 줄이고,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는 거죠 뭐.” 나 참~ 재밌죠?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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