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⑤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⑥ 자급하며 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편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문홍현경

 

 

냄새

내겐 어떤 냄새가 있다. 썩은 양파 냄새? 어릴 적부터

겨드랑이 땀, 일명 곁땀 냄새가 심하게 났다. 나는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가끔 냄새가 지나치게 날 때가 있었나 보다.

나와 친밀한 한 인간동물이 내 겨드랑이 땀 냄새를 썩은 양파

냄새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가 아닐까, 내 팔이

들썩거림을 주저하기 시작한 게.

중학교 때부터 겨드랑이 땀 냄새를 줄여 준다는 약을 바르고

다녔다. 나만큼이나 겨드랑이 땀 냄새로 고생하던 우리 엄마가

추천해 준 약이다. 뿌리는 약은 효과가 없었다. 피부에 쓱쓱

바르는 약이 효과가 좋았다. 다만 그걸 바르면 겨드랑이는

떫은 감을 맛본 혀처럼 건조해졌다.

반팔 옷을 입는 여름이 돌아오면 약을 바르기 전날 저녁에

미리 겨드랑이털을 밀어 놓고 자야 했다. 털을 밀자마자 바로

약을 바르면, 으아악! 왜 영화에서 케빈이 면도하고 바로 아빠

스킨을 발랐다가 으악 하고 소리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면도한 피부에 바로 그 약을 바르면 바늘로 콕콕 쑤시듯 엄청

따갑다. 그러니 미리 털을 밀고 피부를 진정시킨 다음에 약을

발라야만 한다. 어우 귀찮아.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들처럼 죄다 겨드랑이털을 자신 있게

내보이겠다고 선언하면 좋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소망이었다. 이렇게 질문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왜 나는

겨드랑이털을 밀어야 하지?’ ‘왜 내 소중한 몸에 한심한

화학물질을 발라야만 하지?’ ‘몸에서 양파 냄새가 나면 왜 안

되지?’

 

벗자편지 속 사진


약발이 떨어진 날엔 무척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겨드랑이가 벌어질 일이 없게 팔을 딱 붙여야만 하니까.

버스나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느라 팔을 벌릴라치면 예외

없이 내 곁땀 냄새를 의식하며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버스

천장 손잡이 말고 의자 손잡이를 잡아야만 했다. 지하철

의자에 앉기를 포기하고 구석에 서서 가거나. 약도 안

발랐는데 그날따라 좀 끼는 브래지어나 몸에 붙는 티셔츠를

입었으면 그날은 그냥 팔 올리는 일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어쩐 일인지 꽉 끼는 옷을 입으면 땀이 더 많이 나왔으니까.

겨드랑이 땀 냄새를 싫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나를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겨드랑이털도 겨드랑이 땀

냄새도 부정해야 하는 ‘소녀’가 되어, ‘내 자신감과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활동할 용기’는 빼앗기고 말았다.

 

냄새와 향기 사이

아기를 갖기 전까지 바깥일을 하는 내내 데오도란트는 내

필수품이었는데. 임신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나는 곁땀 약을

끊기로 했다. 아기를 위해서라도 약을 바르고 싶지 않았다.

곁땀 냄새야 좀 나든가 말든가 내 아기가 더 소중했으니까.

물론 내가 계속 회사를 나가야 했다면 약을 단번에 끊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어쨌든 내 몸속에서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십여 년 넘게 발라 온 약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단하자 땀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비발디 <사계-봄>이

배경음으로 깔리듯.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엄마 냄새가 좋아.”

아이가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오자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내 겨드랑이로 코를 갖다 대려는 게 아닌가. 내

부끄러운 자리에 아이 얼굴이 들어오려고 했다.

“이 냄새가 뭐가 좋아? 엄마 겨드랑이에서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나는 습관적으로 양팔을 오므리며 말했다. 그러자 작고 귀여운

눈이 조금 커지면서 입이 달싹거렸다.

“아냐, 난 이 냄새가 좋아.”

뭐? 내 겨드랑이 냄새가 좋다고? 내 곁땀 냄새가? 세상에,

사는 동안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 겨드랑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나조차

싫어하는 내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니. 말도

안 된다. 옷을 쥐어 코에 갖다 대고 겨드랑이 냄새를 맡아

봤다. 별로 좋아할 수 있는 냄새가 아닌 것 같은데. 아이

후각에 문제가 있나?

A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니, 그는 좀 설득력 있는 얘길

했다.

“네 곁땀 냄새를 맡으며 16개월 동안 젖을 먹었던 애잖아.”

어, 음……. 일리가 있었다. 배고플 때마다 자기 최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에게서 늘 나던 냄새니까. 그래, 그래서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 허기를 채워 주던 냄새라서

아이가 좋아하는 걸까? 세상에. 냄새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내 겨드랑이 땀 냄새를

향기로 받아들였고, 같은 냄새여도 우리 사회는 ‘암내’로

규정해 가려야 할 악취로 받아들였으니. 생각해 보면 나는

우리 엄마에게서 곁땀 냄새가 심하게 난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내 딸이 그러하듯 나 역시도 우리 엄마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을 뿐. 그렇지만 우리 엄마 역시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약을 발라야만 했다. 엄마 냄새가 좋다는 아이 말

덕분에 깨달았다. ‘아, 냄새는 관계다.’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똑. 똑. 겨드랑이에서 땀이 똑 하고 떨어지는 순간을 느껴 본

적 있습니까? 내 질문은 마치 “도를 믿습니까” 하고 다가오는

엉뚱한 사람들을 생각나게 할 테지만 나는 무척 진지했다.

겨드랑이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걸 느꼈고 그게 설마 땀일

줄이야. 정말 과학 시간에 스포이트로 물 한 방울을 똑

떨어뜨리듯 겨드랑이가 땀 한 방울을 똑 떨어뜨렸다.

데오도란트 약을 끊고, 도시 삶도 끊어 시골로 내려온 내게

겨드랑이는 ‘나는 원래 이래’ 하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겨드랑이를 포장하듯 감싸던 옷 따위는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땀이 옷에 바로 흡수되지

않고 내 털을 따라 톡 하고 떨어졌다. 고드름이 녹으며

물방울을 떨어뜨리듯 톡 하고.

내 겨드랑이가 남들보다 땀을 많이 내보낸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어땠을까. 평생 겨드랑이가 내뿜어야 할 땀을 자연스럽지

못한 방식으로 막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좀

끔찍했다. 그렇게 틀어막은 땀구멍에서 나오지 못한 땀은

어떻게 되는 걸까. 겨드랑이에서 이렇게 땀이 똑 떨어지는

일이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면, 왜 나는 이제야 그걸

허락한 걸까.

기분이 좋았다. 겨드랑이에서 땀이 떨어질 수 있게,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내가 내 몸이 하는 말을 듣게 된 게

좋았다. 내 몸이 가진 냄새를 인정하게 된 내가 좋았다.

여전히 땀이 흥건한 날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모두에겐 자기

냄새가 있으니까.

 

야, 너도 냄새 있어

밭에서 풀을 베면 풀 향이 진하게 퍼진다. 노린재가 놀라

자기 냄새를 뿌리고 갈 때도 있다. 토마토 곁순을 따면

토마토 냄새가 난다. 들깨 옆을 지나면 깻잎 냄새가 난다.

갖가지 꽃과 이파리에서 나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강하게

풍겨 올 때도 있다. 비가 내리고 나면 흙냄새가 진하게

올라온다. 내 둘레에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자기 냄새를

풍긴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자기 냄새가 있다.

 

벗자편지 속 사진

 

내 몸이 내뿜는 냄새는 수많은 냄새 속에 섞인다. 자연스럽게.

그러다 보니 특정 냄새가 유독 거슬리게 난다고 생각지

못한다. 냄새에 굳이 집중할 필요도 없다. 한 곳을 지날 때

그곳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한 거니까. 냄새를 당연하지 못하게

받아들이는 사회가 역겨워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음식물 찌꺼기 냄새가 나면

불쾌해진다. ‘누가 예의 없게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도 제대로

안 닫고 엘리베이터를 탄 거야, 무개념이시네,’ 하면서. 치킨

배달부가 타고 간 엘리베이터는 식욕을 돋우고, 누군가

참다못한 방귀를 싸지르고 내린 엘리베이터는 숨을 참게

만든다. 공용 화장실에서는 칙 하고 인공 향수가 뿌려져

오줌과 똥 냄새를 가리려 애쓴다. 똥에서 똥 냄새가 나는

데는 다 까닭이 있지만 도시 화장실에서 똥 냄새는 혐오

대상이 되고 향수 냄새는 남발 대상이 된다. 차 안에

방향제를 둔다거나 세탁할 때 인공 향이 나는 세제를 쓰는

것도 특정 냄새를 남발하는 일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냄새에

민감해야 하지? 그럴 필요가 있나? 특정 냄새는 혐오 대상이

되고, 특정 냄새는 반대로 남발 대상이 되는 게 예전에는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왜 지금 내게는 그게 이상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걸까.

자급하는 몸을 잃어버리고 착취 구조에 기대 살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허세와 중독에 빠지기 시작했을 거라고, 나는 책에서

배운 문장들을 밭에서 일하며 내 언어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자기가 먹을 것을 자기가 만들어 먹어야 하던 시절에는 땀

냄새든 똥 냄새든 특정 냄새에 굳이 민감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은데. 볏짚 나르고 오면 볏짚 냄새가 나고, 장독에서 된장

퍼 오면 된장 냄새가 나고, 감자 심고 오면 흙냄새가 나는 게

당연했을 터. 자기 냄새뿐 아니라 온갖 자연물 냄새가 드나들

수밖에 없는 몸으로 살다가 이제는 볏짚 나를 일도, 된장 퍼

올 일도, 감자 심을 일도 없는 몸이 되자 몸에서 나는 냄새에

유독 신경을 쓰게 된 게 아닐까.

때가 되면 때에 맞는 걸 심고 기르고 거두어 먹어야 하던

몸으로 살다가 이젠 때에 맞지 않는 제철 모르는 음식들을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몇십 초 만에 데워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돈 버는 몸으로 살다 보니, 삶을 생산하느라 풍기던

냄새가 다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인공적으로 만든 냄새로 채워

살게 된 게 아닐까.

정수리 냄새, 곁땀 냄새, 발 냄새 뭔 냄새 온갖 냄새에 다

시비를 걸고 좋은 냄새와 나쁜 냄새를 구별해 내기 시작한 건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였을까. 좋지 않은 냄새를 없애야

한다고 광고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향수, 섬유유연제,

섬유탈취제 같은 각종 향기 나는 화학물질들, 이에 더해

방향제처럼 인공적인 방식으로 나를 다른 이와 구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물질들 모두는 우리가 자급하는 몸을

잃어버리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옛날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 봄이면 버들강아지를 따

먹고 호루라기를 만들어 불었다. 찔레순이 돋으면 찔레

를 꺾어 먹고 찔레꽃도 따 먹었다. 초여름 보리밭 사잇

길을 걸으면 초록빛 바닷속을 걷는 것처럼 시원하고 향

기로웠다. 보리깜부기를 따 먹고 밀이삭을 따서 비벼 먹

고, 보리밭 여기저기에 종달새가 새끼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

지금 20대 젊은이들은 옛날 우리들의 깨끗했던 강물을

아무도 모른다. 시냇가의 하얀 모래밭과 끝없이 깔렸던

자갈밭도, 보리밭, 밀밭도 모르고, 여름에 소 뜯기며 뒹

굴고 놀았던 풀밭에 오이풀과 수박풀 향기가 그토록 향

그럽던 것도 모른다. - 권정생, <<우리들의 하느님>>

 

 

어쩌면 저절로 자연과 멀어지면서 감각도 자연스럽지 못한

쪽으로 발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말 ‘좋은 냄새’를

맡아 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억지 냄새를 좋은 냄새인 줄

알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세월이 흐르면 그리워지는 냄새, 내

세포와 온 감각이 반응하는 냄새, 사랑하는 존재를 떠오르게

하는 냄새,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냄새, 냄새라고

굳이 알아채지 않아도 되는 모든 존재가 가진 냄새… 그런

냄새를 제대로 맡아 본 경험이 없어서, 그만큼 우리 감각이

자연스럽게 피어난 경험이 없어서 오늘날 현대인들은 화학적

 

냄새를 포함하여 사회가 만들어 낸 틀에 박힌 이미지들만

소비하는 게 아닌지.

해 달 별을 보며 시간을 점치고, 날씨를 알기 위해 온 감각을

동원하고, 둘레 동식물 반응을 살펴 씨앗 뿌릴 날과 거둘

날을 가늠하던, 그토록 감각적이던 몸이 ‘편리한’ 도구와

‘쌈박한’ 기술에 힘입어 이토록 무감각해졌단 말인가! 감각을

써야 할 일들이 사라지면서 인간동물이 더 자극적인 냄새, 맛,

색, 형태를 찾아 지나치게 민감해질수록 지구 생명체들은 각종

화학물질과 약품, 동물 실험으로 힘겨워진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하지 않을까. 정작 더듬이를 세워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일들에는 무감각해진 바람에 벌어진 거대한 위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개구리의 안녕을 묻는 일은 대지의 노모스nomos를 돌

보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 가물어도, 갑자기 추워도 개

구리가 없어진다. 개구리가 몰살이면 벌레가 창궐한다.

개구리는 숲과 마을의 경계에서 살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동법칙을 일러준다. 재작년 우리 밭에 벌레가 창궐한

것도 이상하게 따뜻했던 겨울과 이상하게 추웠던 봄 다

음이다. 농사 경력 수십 년 된 베테랑 농사꾼도 겪어

본 적 없는 벌레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 작년 봄에는

뽕나무가 당했다. 미국선녀벌레가 나무를 하얗게 뒤덮더

니 검게 익어야 할 오디가 하얗게 말라 버렸다. 가을에

는 잣나무가 아팠다. 잣 딸 때가 다가오는데 홍천에 번

졌다던 잣나무 재선충병이 결국 인제까지 왔다는 소식

이 들렸다. (…) 이것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일어나

고 있는 일들이다. - 채효정, 「창비주간논평」

 

우리 마을에 사는 감나무 농부들도 지난겨울 날씨가 너무

이르게 따뜻했다가 갑자기 서리가 내려 감꽃이 다 얼어

죽었다고 허탈해했다. 아흐레 동안 축구장 3만 5,000여 개

크기만큼 넓은 숲을 태운 산불은 기상 관측 이래 강수량이

가장 적은 겨울을 보낸 뒤 찾아왔고, 지지난해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80일 넘게 내린 장마 뒤엔 뿌리가 썩어

문드러진 작물과 집 잃은 사람들이 황망하게 남아 모두를

슬프게 했다. 세계에서 희귀종으로 알려진 고산 침엽수종

구상나무는 잦은 태풍과 가뭄으로 한라산에서만 4년 만에 1만

2,957그루가 새하얗게 말라 죽었다 하고, 해마다 수온이

오르는 탓에 제주도 아래 바다에는 아열대성 산호 군락이

자란다고 한다. 정말로 예민하게 살피고 온 감각을 쭈뼛쭈뼛

세워야 할 일들은 바로 여기 우리 자연에 있다. 그걸 지구가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온통 시멘트와 플라스틱 같은 인공물 속에서 햇볕 한 줄기

느낄 새도 없이 자라온 우리 세대는 자연에서 삶을 구할 일도,

자연을 따다가 맛볼 일도, 자연에서 뒹굴 일도 사라지면서

자연스럽지 못한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우리가 만들어 온 세상 때문에 작고 수수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무너져 왔다는 걸, 이 순간에도 계속 무너지고 있다는

걸 이제는 똑바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벗자편지 속 사진

 

하나씩 벗고, 하나씩 되찾아

시골에 내려와 밭을 빌렸다.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땅을

빌리려니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이웃 할아버지께서 묵은 밭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읍에 사신다는 어떤 할머니네

밭이었는데, 연락을 드리자, 농사짓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이제 더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하시며 내게 공짜로 밭을

빌려주셨다.

해도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는 양지바른 땅이었다. 밭

한쪽엔 묘 두 기가 있었다.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으니

텃밭과 묘가 가까운 게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물을 구할 수

없었고, 가까이에 커다란 송전탑이 세워져 있었다. 또 여러 밭

사이에 있다 보니 옆 밭에서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면 우리

밭으로도 쉽게 넘어올 수 있었다. 건너편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는 자꾸 플라스틱을 한데 모아 태웠는데, 바람이 우리

밭쪽으로 부는 날엔 유독가스를 마셔야만 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나 혼자 유기농이니 자연농이니 한다고 해도

연결된 체계가 무너지면 결국 다 무너지게 될 일이다.

농사짓고 싶다고 안달 난 나를 골치 아프게 한 또 하나는,

바랭이라는 풀이다. 하도 오래 묵혀 있던 탓인지 뿌리가 깊이

얽히고설켜 밭 전체를 감싸고 있었는데, 내가 기르고 싶은

작물이 뿌리를 제대로 뻗을 수 없을 만큼 바랭이 위세가

대단했다. 밭을 한번 다 갈아엎고 거름을 넣어 줘야 할 것

같았는데, 처음엔 자연농 한답시고, 밭 갈아주겠다는 어르신들

호의도 마다하며 경운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해 보겠다고

버텼다. 오랜 시간을 두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존버(속된 말로 존나 버티는 자)’가

승리할 테지만, 당장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다 먹어야 할 내

주제를 생각지 못했으니 미련하고 멍청했다고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존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이

단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린 친구가 내게 알려 준

표현이다. 이는 비속어를 담은 줄임말이어서 이 단어를 ‘오래

버티는 자’ 혹은 ‘오래 버티기’와 같은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를 담은 표현이라는 생각에

나는 이 단어가 좋아 밀고 나가기로 존버하여, 이렇게

단행본에 비속어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읽는 친구들에게

이해해 달라고 말하려 한다.

나는 존버라는 단어가 좋다. 존버는 어쩌면 무척 미련하고

멍청한 태도라고 얕잡힐 수 있겠지만, 사회가 당연하게 저질러

온 착취에 맞서 버티고, 나를 지키기 위해 버티고, 또 내 둘레

생명을 위해 과감히 버티기를 선택한 자에게 존버라는 단어는

웃음기를 잃지 않은 명랑함을 선물하는 듯하다.

또 내가 지금 버티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아도 된다면, 버티는

시간을 스스로 허락한다면, 지금 우리는 모두 존버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존버하는 시간을

발효하는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고, 우리에게는 모두 각기 가진

능력과 빛깔과 냄새대로 발효시킬 시간이 필요할 뿐, 사회가

만든 기준 따위는 존버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초록색 존버들아, 사랑해.)

 

벗자편지 속 사진

 

아무튼, 다시 땅 얘기로 돌아와서, 밭을 갈지 않으려고

미련하게 버티던 길에서, 어떻게든 땅심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련한 짓 하나를 더 해 보기로 했다. 똥과 오줌을

분리해 모아 천연 퇴비와 액비를 스스로 만들어 보기로 한

거다. 밭에서 바로 똥과 오줌을 분리해 모을 수 있는

생태뒷간을 만들었다면 참 편했을 텐데, 재주도 용기도 없어서

일단 우리 집 수세식 화장실 구석에서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자연농을 해 보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나는 여태

똥간을 오해하며 살았겠지. 평생 농사를 짓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는 오래전부터 써 온 똥간이 있었다. 그 똥간은

늘 언제나 갈 때마다 고약한 냄새를 풍겼기에 나는 똥간이

원래 다 이렇게 역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명절에 부모님 따라 시골에 내려가면 좋은 화장실을 놔두고

꼭 똥간에 가서 볼일을 보는 할아버지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수세식 화장실이 생기기

전에는 하는 수 없이 나도 몇 번 똥간에서 볼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 코를 찌르는 냄새와 윙윙거리는 파리들 때문에 똥

누기가 싫어질 만큼 무서운 곳이었으니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고도 똥간에서만 볼일 보는 할아버지가 이상했던 거다.

그랬던 내가 우리 집 화장실에 작은 똥간을 만들다니. 내가

이렇게 개벽하기까지는 글로 배운 농사 이론과, 글로 배운

페미니즘과, 글로 배운 갖가지 개똥철학들뿐 아니라, 몸으로

익힌 자연농부들 똥간 체험이 한몫했다. 바다 건너에 사는

자연농부 집에 머물며 농사일을 거들고 숙식을 해결하는

우프WWOOF라는 걸 했을 때, 처음 생태뒷간을 만났다.

고약한 냄새도 나지 않았고 무척 간단하게 만들어진

화장실이어서 나중에 나도 밭을 일구게 되면 이런 생태뒷간을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내 오랜 똥간 편견을 깨

준 경험이었다. 한국에서 자연농과 자급기술을 배우려고

다녔던 농사 공동체에서도 냄새나지 않는 생태뒷간을 쓰게

됐고, 묵은 똥이 좋은 흙으로 돌아가는 데 내가 거들 수

있어서 꽤 뿌듯한 경험을 쌓았다.

생태뒷간, 그러니까 똥간에서 나쁜 냄새가 안 나려면 먼저 똥

따로, 오줌 따로 모아야 한다. 보통 똥을 모아 두는 뒷간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까닭은 똥과 오줌이 한데 섞여 제대로

발효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러니 참기 힘든 ‘똥 냄새’를

맡지 않으려면 똥 따로 오줌 따로 모아야 한다. 오줌만 모아

뚜껑을 잘 닫아 놓고 한두 달 묵혀 물과 섞어 밭에 뿌려 주면

작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되어 준다. 따로 모은

똥에는 톱밥이나 왕겨 같은 탄소질 재료를 뿌려 두면 잘

발효되어 ‘향긋한 숲 흙냄새’가 난다고 한다. 이는 독일에

사는 김미수 농부가 <<살자편지>>에서 묘사한 표현인데, 그가

만든 집 안 생태화장실은 정말 숲 흙냄새가 날 것처럼 정갈해

보인다. 내가 만든 똥 퇴비에서도 좋은 흙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 살색을 살색으로 부르면 안 되듯, 똥 냄새를 똥

냄새라고 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야겠다. 같은

책에서 김미수 농부는 먹은 것이 똥이 되고 흙으로 돌아가

다시 먹을 것이 되어 나를 살리는, 순환하는 삶을 생태부엌과

생태화장실에서 여실히 보여 주는데 그가 냉장고 없이 자연을

닮아 살아가는 방식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상상해야 하는

다른 삶이 어떤 형태일지 실마리를 준다.

물론 나는 농사를 책으로 배운 탓에 책에 나온 이론을

화장실에서 실천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이 번거로운

행위가 곧 내게 신세계를 맛보게 해 주었다.

모든 똥과 오줌은 내가 먹은 것들을 내 몸속 미생물이 잘

쓰고 남은 찌꺼기라는 사실을 온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똥 냄새도 오줌 냄새도 달라진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고구마를 많이 먹은 날엔 고구마

냄새가 난다. 커피를 마신 다음엔 아스라이 커피 냄새가 난다.

어쩌다 고기라도 먹은 날엔 똥 냄새도 지독하고 오줌 냄새도

고약하다. 그 미묘한 차이가 신기하면서도 당연하다는 게

재미있다. 내가 먹은 것들이 나를 만들고 이렇게 냄새를

만든다는 걸 새삼 느끼며 혼자 기뻐했다. 게다가 내 몸속에서

사는 미생물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라는 엄청난 미생물

덩어리를 마주하게 됐다.

똥과 오줌 모두 내 몸에서 나온 건데 왜 이렇게 더럽다고

느끼며, 거기서 나는 냄새는 악취라고 질색하며 살았을까.

몸이 보내는 신호, 몸에서 내뿜는 냄새, 몸이 만든 색깔도

마주하지 못하게 똥과 오줌을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게 만든

역사가 미웠다.

 

벗자편지 속 사진

 

잘 발효된 똥 퇴비와 오줌 액비를 밭에 돌려주었다. 작물과

흙 그리고 거기 사는 미생물을 위해서라도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원래 밭으로 돌아가 다시

흙이 돼야 했을 내 똥과 오줌이 여태껏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니. 또 그걸 처리하느라 얼마나 많은

물과 에너지를 써 왔는지. 좋은 흙이 모자라 고심해 보고

나서야 똥과 오줌이 얼마나 소중한지 진짜 몸으로 부딪쳐

깨달았다. 거름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절대 남의 집에서

볼일을 보지 않고 참았다가 자기 집 뒷간에 와서 볼일을

보았다 한다. 이제야 우리 할아버지가 왜 굳이 저 무시무시한

똥간에서만 볼일을 보셨는지 알겠다. 좋은 흙이 모자랄 때마다

변기에 내린 똥이 얼마나 아깝던지. 게다가 스스로 똥 퇴비를

만들고 나니 이제는 내가 이렇게 자연에 보탬이 될 수 있구나

하는 보람을 온몸으로 느끼기까지 했다. 내가 자연을 먹었으니

자연도 나를 먹을 수 있게 잘 돌아가야지. 태어나는 것만으로

다른 생명에게 빚을 지는 우리가 그 빚을 갚을 길은 바로

이거다, 기꺼이 좋은 먹이가 되는 삶.

 

벗자편지 속 사진

 

알다시피 지금은 똥과 오줌이 쓰레기로 취급받는다. 충분한

시간만 있다면 똥은 얼마든지 향긋할 수 있는데. (똥과

오줌에게 ‘존버’할 시간을 허하라!) 그럴 시간도 여유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현대인들은 좋은 흙을 만들던 지혜를

잊어 가고 있다. 몸이 기억해야 하는 자급을 위한 지혜들이

변기 물 내려가듯 사라지고 있다. 내 몸이 만드는 냄새를

가리고 억지 냄새를 갖다 뿌리는 동안 향기만 나는 쓸모없는

몸뚱이는 손을 움직여 먹거리를 기르던 지혜를, 똥과 오줌으로

흙을 살지게 하는 지혜를, 소비보다는 생산에 능했던 지혜를

다 잊어 가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지혜가 없어서 시골에

내려와서도 자급하는 몸으로 살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여기 시골에서 자급하려는 친구들을 만나 함께 지혜를

익히며 조금씩 서툰 솜씨로 자급하는 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 나를 내 냄새로, 내 모습으로, 내 색깔로 살지

못하게 하던 것들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화장하지

않고, 데오도란트 바르지 않고, 플라스틱 소재 생리대 쓰지

않고, 브래지어 차지 않고, 발 아픈 구두 신지 않고, 샴푸

쓰지 않고……. 이것만으로도 몸은 제 모습을 찾아 제 숨을

쉬는 듯했다.

도시에서는 화장하지 않고 밖에 나가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시골에 내려와서는 자기 얼굴빛으로 사는 친구들을

심심찮게 만났다. 그 덕인지 오히려 화장 진한 얼굴을 만나는

게 어색할 때도 있다. 화장하지 않은 채 도시 친구들을

만난다면 그 또한 얼마나 어색할까. 화장한 얼굴을 기본값으로

여기던 딱딱한 생각이 부들부들 말랑말랑 옅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내 얼굴빛을 찾아

가면 된다. 페미니스트 안에서도 ‘화장’을 두고 생각이 다

다르지만, 어떤 길이 다른 생명에게 덜 해로울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선크림이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기사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한 생명들이 있으니…….

제 얼굴빛으로 고개를 내미는 친구들이 있어서, 날마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할 수 있어서, 내 시각이 점점

자연 빛깔을 기본값으로 되찾아 가고 있나 보다. 후각 역시

자연 향을 기본값으로 여기게 됐는지, 인공 향을 맡게 되면

코가 아프고 목구멍에 휘발유를 바른 것처럼 불편해진다.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까지 억지로 맞춰 놓은 ‘좋은 몸, 좋은 향,

좋은 색, 좋은 형태’라는 기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멀었지만.

나 혼자 자급 생활자로 돌아가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잘못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 자연

속에서 낭만을 즐기는 생태주의자로 사는 것만으로는 절대

가부장제와 기후위기를 풀 수 없다고, 책으로 나를 가르쳐 준

스승님들 문장을 몸으로 실천해 보려고 용쓰고 있다.

자연스럽게 살다 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데서부터 저항은

시작한다고 믿으니까. 누군가 누리는 권리를 나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해치며 권리를 얻어야 하는 사회

자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코르셋을 벗어던져야 할 테니까.

애초에 우리에게 잘못된 기본값을 ‘정상’이라고 입력한 사회가

고장 났는데 나 혼자 말갛게 얼굴 씻고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들풀처럼 모이고 또 모여야 한다, 우리는.

 

벗자편지 속 사진

 

강은 흐르게 두고, 우리는 멋대로 춤추네

“우리 학교 채식 급식 진짜 맛있어요.”

우리 지역 한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회의를 거쳐 한 달에

한두 번 채식 급식을 하기로 했는데, 그 학교 6학년 친구가

자랑스럽게 내게 한 말이었다. 참 다행이었다. 채식을

거부하지 않고 온 생명을 위해 기꺼이 움직이는 어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나라 학교 급식은 여전히 육식 위주로

한 식단이 기본값이다 보니, 지구를 위해 채식하고 싶은

친구들은 어쩔 수 없이 김치와 밥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구조적 착취는 대체 뭐지?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하며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수많은

학자가 경고하는 마당에, 채식 선택권조차 없는 아이들은 ‘내

미래를 왜 어른들이 다 써 버리냐’고 아무리 항의해도 정부와

기업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어이없는 그린워싱green washing과 줄지 않는

쓰레기,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후 재앙 소식들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 힘은 어디에 있나. 연결! 손에

손잡고 정부를 향해, 기업을 향해, 둘레를 향해 외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그 연결감, 그 작은 희망, 거기에

힘이 있지 않을까. 나 혼자만 자연스럽게 산다고 해서 온

지구에서 벌어지는 착취를 막을 수 없다는 그 사실, 그

연결감을 느끼며 얼굴빛을 한 사람들이 함께하니까.

기후위기를 무섭게 받아들인 다음부터 나는 초록 움직임이

멈추지 않게 손을 이어주는 사람으로 살려고 애썼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는 기후행동 불씨가 꺼지지 않게

풀무질하는 사람으로 살려고.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한 발

한 발 자급하는 삶에 가까워지고 싶고 또 그런 이들이 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걸었다. 둘레 사람들에게 기후위기 비상

상황을 알리고 또 그 대안으로 채식 급식을 요구한다거나,

아나바다 공유 장터를 함께 열기도 했고 얼굴빛으로 만나는

친구들과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요구하는 일들을 벌이기도

했다. 더 많은 친구가 자급하는 몸을 되찾는 데 함께하길

바라니까. 더 많은 이들이 자기 빛을 찾을 수 있기를, 자기

냄새를 숨기지 않기를, 자기 둘레를 지키는 데 함께하기를,

스스로 발효할 시간을 주기를 바라며.

정말 자급하며 사는 농부님들 앞에 두고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싶을 만큼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이 사회가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친구들과 연결되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됐다.

 

벗자편지 속 사진

 

지금 여기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은 마치 모두 강을 앞에

두고 선 사람들 같다.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강 건너로

가기 위해 좁은 배에 오르려는 무수한 사람들. 배에 오른

자만이 성공과 부와 명예를 누릴 거라고 믿는 사람들. 강

건너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는데도 그저 강을 건너야 한다고

맹신하는 사람들. 배를 타려고 안간힘쓰다가 누군가 물에 빠져

죽어도 내 탓이 아니라고만 하는 사람들. 나에게 그리고

벗님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왜 무얼 위해 강을 건너야

하느냐고. 배를 넓히라거나, 배에 오를 기준을 공정하게

만들라거나, 배에 약자가 쉽게 오를 수 있게 고쳐 달라고 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왜 강을 건너야 하느냐고 물어야 한다.

사실 아무도 강을 건널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배에 오르려던 안간힘을 더는 쓰지 않기로 했고, 강을

건너야 한다는 강요된 목적을 달성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남아 땅과 땅 위와 땅 아래 사는

무수한 생명들과 연결되기를 선택했다. 땅에 남아 춤추는, 제

얼굴빛으로 땅을 돌보는 이들에게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지혜를 배우기로 했다. 외부에서 결정하고 강제하는 해법을

기다리기보다 변화를 갈망하여 스스로 전파를 보내고 파동을

만드는 생명체로 살고 싶으니까.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초록

벗님들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싶다. 그대 손을 잡고 싶다.

 


 

 

 

◌ 문홍현경 ◌

책을 좋아하여 편집자로 살다가 글로만 배운 철학을 몸으로

실천하고 싶어 탈도시를 감행했다. 지금은 기후위기 활동가이자

엉망진창 소농으로, 여전히 책 만드는 사람으로, 또 조용한 미생물

덩어리로 산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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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자편지] 함께읽기 5_문홍현경: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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