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감천마을 숨은 멋쟁이

구례 <용방면 농악단> 김기춘 고문님을 찾아

 

 


KakaoTalk_20251218_132905816_02.jpg

 

 

농악은 전통 민속 음악으로, 농사 관련 의식에서 유래하여 마을 공동체의 결속과 풍년을 기원하는 중요 문화유산이다. 구례 농악은 섬진강을 중심으로 왼편인 임실, 순창, 남원 등과 함께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매년 곡우가 되면 구례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리산 남악제를 지낸 후 각 면 단위별 농악단 공연으로 화합과 축제의 장을 펼친다.

 

용방면 농악단은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다섯 가지 악기로 이루어진 농악단이다. 주로 용방면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과 귀향, 귀촌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2시간 동안 강습이 진행된다. 1시간은 신규 회원을 중심으로 기초 강습을 하고 나머지 1시간은 기존 회원과 신규 회원이 하나 되어 선반으로 강습이 진행된다.

 

현재 농악단 교육은 김종광 선생님이 담당하고 있다. 김기춘 고문님은 김종광 선생님의 부친으로 용방면 농악단을 만들고 이끈 인물로서 고문의 소임을 맡고 있다. 감천마을에서 태어나 40여 년 전부터 농악을 시작한 그에게 용방면 농악단의 역사를 들어보기로 한다.

 

 

KakaoTalk_20251218_132905816.png

 

“공무원 생활하면서, 농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시절 농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구례 좌도농악회를 결성하였어요.”

“그 당시 마을마다 농악이 있었으나 골목 농악이고, 잠자는 농악이었지요.”

“그래서 공무원 퇴직 후에는 감천마을을 시작으로 용방면 농악단을 만들었어요.”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뭣이든 내 것으로

 

농악 관련 말씀에 이어 판소리와 붓글씨 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한때는 판소리에 빠져, 흥보가를 완창하고 박양덕 명창에게 배워 수궁가를 완창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붓글씨에 미쳐 정신을 잃을 정도로 썼지요. 남이 뭐라 하든 말든 뭣이든 내 것으로 해야 해요.”

 

감천마을에 흐르던 소리 몸에 돌던 동편제, 수궁가를 청해 듣고 싶다.

 

“가락보를 보면 때려봐야 알아요. 갠지갠지 입으로 외지 않으면 못 외워요, 산토끼 토끼 노래처럼 외우세요. 악기는 채 잡는 것을 익히세요. 채는 지금 안 잡으면 나중에 못 해요. 궁딱딱 궁딱딱 재미있어요. 가락보를 읽어 머릿속에 넣어 입으로 익혀야 해요. ”

 

금세 고문님이 쇠를 들고 장구를 치고 소고와 함께 어깨춤을 출 듯,

아니 나는 덩덩, 북이라도 치고 싶다.

 

KakaoTalk_20251218_132905816_01.jpg

 

먼 산을 바라보며 고문님은 어린 시절로 들어간다.

 

“다른 멀메들은 중학교 가는데 나는 나무 지게 짊어지고 나무하러 갔지요. 그때 성중학교나 재건학교만 갔어도 좋았는데…. 낮에는 나무하고 일해야 하니까, 서당에서 6개월 동안 밤으로만 공부했어요. 소학을 읽으며 명심보감을 들으며 외웠어요. 그런 식으로 노력을 하면 돼요.”

 

고문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구례 농악이 보이고 구례의 소리가, 한 사람이 살아온 여정이, 그 안에 서린 한이 고였다 내린다. 농악의 가락보 마냥 그 지난 시간이 출렁이며 되살아난다.

 

“음악은 따라 놀아야 해요. 영감들이 장구를 무릎에까지 내려서 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혀. 농악에서 소고를 치면, 소고를 어떤 방식으로 치고 놀아야 예쁜가를 배워야 하지요. 소고는 너스레가 좋아야 해요. 소고는 너스레를 못 하면 안 돼.”

 

명언이다. 좌도농악에서 소고 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너스레를 각자 상상해보자.

 

하루는 회원이 맨 북을 보고 “줄이 되! 줄이 되!” 되다는 말은 구례 말로 짧아 당긴다는 뜻이다. 북을 어떻게 매는지 줄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자상한 모습으로 북을 고쳐 매 주시던 고문님, 북을 허리에 돌려 매서 넉넉하게 하고 나니 북 치기가 훨씬 수월했던 적이 있다.

 

“우도농악은 보여주는 농악, 무대 농악이에요. 반면 좌도농악은 듣는 농악이고, 몸을 놀리면서 배우고, 박자를 맞추고, 박을 찍고, 돌고 멋있게 춤추면서 천천히 내 것을 만들어서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오세요. 농악 하러 오세요.”

 

그 말씀이 꽹과리 여운처럼 남는다.

 

 

 

고단함과 시름 잊게 하던 농악, 그 맥 이어가길 바라며

 

고문님은 아드님을 농악단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아드님이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가기 전 즈음 3일 저녁을 따라다니더니 3일 만에 어지간한 가락은 다 쳐버릴 정도로 잘했다고 넌지시 아드님 자랑을 한다.

 

“아버님이나 저에게 농악은, 고단하고 힘든 일상 속에서 농악을 통해 심적 위안과 활력을 주는 원동력 같은 것입니다. 아버님이 연로하시면서 저에게 용방면 농악단 강습을 부탁하여 어느덧 15년 세월이 흘렀어요. 용방면 농악단은 3년 전부터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라고 김종광 선생님은 농악하는 이유를 들려준다.

 


KakaoTalk_20251218_132905816_04.jpg

 

용방면 농악단은 새해 첫날, 산성봉에서 해맞이를 시작으로 정월대보름이면 죽정마을에서 달집태우기를 하고 초여름이면 통일벼 심기 행사에 참여하여 농악으로 풍년을 기원한다. 매년 8월에는 쑥골 계곡에 모여 피서 겸 단합대회로 잔치를 벌이고 지역사회 인사들과 소통의 장을 갖기도 한다. 가을이 되면 통일벼 베기 및 각종 마을 축제는 물론 군 내 행사에 공연함으로써 마을 사람들과 하나 되어 농악을 즐긴다.

 

농악단 회원들은 모이면 다 동네 언니, 오빠, 누님이 되어 금세 가족처럼 어울린다. 김종광 선생님은 북과 장구, 소고, 꽹과리, 징을 가르칠 때면 엄한 스승이 된다. 설명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회원들 보는 선생님 삼정은 오죽할까. 일하다 와서 든 장구와 북이 제대로 쳐지지 않아 한바탕 웃고 또 웃는 사이 하루의 피로가 가시는 게 농악의 매력이다.

 

박현아 씨는 농악단 회원이자 김종광 선생님의 배우자다. 대학에서 풍물패 선후배로 만나 꽹과리를 가르치고 배웠다고 한다. 그 시절 꽹과리 가락을 못 외우면 꽹과리 대신 머리에 가락을 칠 정도로 엄하게 가르쳤다며 후일담을 들려준다. 그 후일담을 듣던 김기춘 고문님은 애정이 없으면 지적도 하지 않는다며 웃으신다.

 

KakaoTalk_20251218_132905816_03.jpg

 

농악단 단장은 고문님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동창이 서울에서 귀향하자, “어이, 나 따라다니세. 장구 치러 와!” 이렇게 농악단에 합류하여 지금껏 장구를 치고 있는 최성옥 단장님의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다.

 

김종광 선생님은 농악단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농악을 남에게 보여주기식이 아닌 잘하든 못하든 회원 스스로가 흥을 느끼고 농악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농악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농악단 회원들이 나이가 들어가고, 젊은 회원들이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요.” 라고 전한다.

 

2대에 걸쳐 제자 육성에 힘쓰는 김기춘 고문님, 김종광 선생님 부자의 농악단이 오래오래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면서,

 

화요일 오후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용방면사무소 주민자치센터 2층에서 들리는 농악 소리를 그 앞에 서 있는 500년 수령 버드나무는 고요히 듣고 있다. 아니, 어쩌면 버드나무 소리로 축원하고 있지 않을까?

 

덩 더 궁따따궁따따궁 따

덩 더 궁따따궁따따궁 따

덩 덩 더덩 덩

 

 



글쓴이 : 이촉

 

이촉 시인은 구례에 거주하며,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전체댓글 0

  • 3241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감천마을 숨은 멋쟁이 구례 '용방면 농악단' 김기춘 고문님을 찾아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