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한 해 농사 시작은 동지부터
설날 중 설날 동지 이야기
새해 일출을 보려면 동지 다음날 해를 봐야 합니다. 해가 가장 짧았다가 길어지는 동지 다음날 해가 진짜 새해거든요. 그와 달리 신정 해는 새날의 의미가 없어요. 이미 새날이 온 지 열흘은 지난 거지요. 굳이 말하면 새날이 밝았다는 걸 체감할 수 있는 건 동지 지나 한 열흘쯤 되어야 느낄 수 있어서 일 겁니다. 이 신정 설날의 기원은 로마인데요, 당시 천문 수준으로는 동짓날이 딱 언제라고 확정할 수도 없었던데다 행정 입장에선 언제가 새날이 시작되는지 정해야 하니 새날의 기운을 체감할 수 있는 날을 임의로 정한 게 관습이 된 거지요.
그렇다고 저는 동지 다음날 해도 보러 가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뜨는 동해로 해 보러도 가질 않는데 한번은 간 적이 있어요. 한 30년 전 쯤 신정 새해 보러 속초 갔다가 다시는 해 보러 가지 않기로 한겁니다. 키가 작아서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전날 술 먹은 사람들 냄새 감수하면서까지 안간힘을 써가며 볼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지요. 그리고 농사짓고부터는 동해에서 뜨는 해보다는 밭에서 뜨는 해를 보는 게 훨씬 감동이라고 기염을 토하곤 합니다. 그 장관이 대단하거든요.
처음 일출을 본 그 밭이 마침 동남향이었어요. 앞에는 저 멀리 야트막한 구릉 말고는 탁 트여 일출이 괜찮겠다 싶어 밭을 얻고 봄 되자마자 동트기 전에 갔지요. 아~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감동은 뜨는 해 그 자체가 아니었어요. 우선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 순간의 깊은 어둠을 뚫고 곧 해가 떠오른다고 팡파레를 울리는 애들이 있었어요. 누굴까요? 맞습니다. 바로 새들이었습니다. 그 새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속으로 그랬지요. “어떤 오케스트라 소리가 저 소릴 흉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알았습니다. 왜 새를 하늘의 메신저라 하고 천사에겐 왜 날개가 달렸는지를요. 그냥 하늘의 메신저가 아니라 태양의 메신저였던 겁니다. 태양이 하늘의 주연배우인 거죠. 배우가 등장하기 전 어두운 장막을 거둬내듯이 여명 직전의 깊은 어둠을 걷는 게 새였던 겁니다.
새벽을 알리는 닭도 새긴 새이지요. 하지만 닭소리는 너무 시끄러워요. 그 소린 들어본 사람이면 압니다. 성질 같아선 뛰쳐나가 닭 모가지를 비틀고 싶지만 그렇다고 오던 새벽이 돌아가진 않지요. 암튼 저는 그 새소리를 매일 듣고 싶어 마당 있는 집을 얻어 25년째 살고 있습니다. 낡은 집이라 단열창을 설치한 이후 날이 선선할무렵부터 창문을 닫으면 새소리도 닫히고 마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만 한 철 외엔 아침마다 듣는 소리가 천사 소리 같기만 하지요.
팡파레 새소리와 함께 여명이 밝아오고 해의 기운이 땅에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할 즈음의 장면 또한 못지않은 울림이 있어요. 흙에 비친 은은한 빛살과 흙의 요철 모양에 따라 드리워진 해 그림자가 새 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막 떠오른 해는 아직 온 세상을 밝게 비추진 못해요. 그냥 저 멀리 떠 있는 예쁜 조명 전구불 같다고 할까요. 그러다 천천히 퍼져오는 그 빛의 기운이 흙 그림자와 함께 비추는 기운은 참으로 안온해요. 벌레들도 깨어나 꼼지락 거리기 시작하고 봄 기운을 받아 움트는 새싹들의 기운도 참 싱그럽지요. 그래서 일출의 감동은 해 그 자체만이 아니라 한 것입니다. 해와 함께, 새들과 함께 온 세상의 생명들이 깨어나는 그 기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밭에서 보는 일출 장관입니다.
대설 얘기와 달리 동지는 참으로 많은 얘길 품고 있는 절기입니다. 아마 이 글도 한번에 끝나지 않고 2탄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지는 동서양 공히 새날의 전야(이브)였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도 동지에서 왔어요,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기록은 없지요. 중요한 것은 예수의 탄생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고 그게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동지였던 겁니다. 예수와 태양을 동일시 한 셈이죠. 예수님 머리 뒤로 그려지는 빛나는 원은 바로 태양일 거에요. 그리고 좌우 위로 팡파레 부는 천사들이 있으니 그건 다름아닌 새이겠지요.
동양에서도 동짓달은 정월의 전달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2월 섣달이 있지만 섣달의 섣은 섣부르다의 말처럼 덜 익은 달, 앞과 뒤의 경계 달이라 정월로 삼기에 알맞지 않았어요. 날씨로도 섣달엔 소한 대한이라는 맹추위가 있어 새달로 삼기 적당치 않았지요. 서양엔 섣달에 맹추위가 없더라도 봄이라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음력 섣달이 양력으로는 1월인데요 이름을 January라고 했어요. 이는 야누스(Janus)에서 온 것으로 정월의 뜻보다는 이중성을 지닌 경계의 의미로 이름을 단 것을 보아도 일맥상통하는 게 엿보입니다.
동양에선 동지를 12지지 중 자(子)월이라 해서 자(子)를 기점으로 삼았습니다. 일년 12달 중 자월(동지달)이 기점이듯 하루 중에도 자시(23~01시)가 기점이어서 그 중 정가운데를 자정이라 하지요. 그래서 제사를 돌아가신 날 자시에 지냈던 겁니다. 지금은 자시보다 일찍 지내는 게 자리를 잡아 돌아가시기 전날 지낸다고 알려져 있지만 따지고 보면 조상이 왔더니 지들끼리 먼저 다 먹고 잠 자고 있는 꼴입니다. 죽은 조상이 오긴 뭐 오겠어요. 남은 후손들이 조상을 기리며 그 핑계로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 다지요.
그런데 우리의 설날은 절기로는 동지가 아닌 입춘이에요. 동지가 태양 기준으로는 설날에 적합하지만 날씨로는 적당치가 않아요. 동지 지나 소한 대한 맹추위가 닥치니 봄날이라 할 수 없었을겁니다. 고대 중국에선 동지 지나 설로 적당한 절기로 대한 입춘 우수 셋 중에 하나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음력 정월이 위 세 절기 중에 오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농경 국가로 알려진 고대 하夏나라 전통을 따라 입춘을 설 절기로 삼았어요. 자세한 거는 입춘 때 말씀 드리는 거로 하구요, 암튼 절기 시작을 입춘부터 읽는 게 그래서입니다.
올해 동지가 음력 11월3일, 곧 11월 초순에 드는 전형적인 애동지입니다. 이런 겨울은 대체로 따뜻하다 했지만 좀 심하다 했지요. 어디는 개나리가 꽃을 피윘다 하고요, 저희 밭에선 내년 춘분에나 싹이 틀 마늘이 벌써 올라와 버렸어요. 이거 보통 일이 아닙니다.
비도 잦고요. 가물면 산불이 걱정이라 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요. 그렇다고 꼭 좋지만은 않을겁니다. 따뜻한데다 습기가 많으면 토양에 곰팡이와 병균이 많아질 수 있지요. 일진으로도 동지 전날이 갑자甲子인데요. 60갑자 중 첫날이니 봄 기운처럼 따뜻하다는 신호이긴 합니다.
애동지와 관련한 재밌는 일화가 적벽대전 영화에 나옵니다. 화공 전략을 쓰려고 제갈량이 고사를 지내 북서풍을 남동풍으로 바꾸는 장면이죠. 신통술을 부린 것 같지만 제갈량은 애동지 때 남동풍이 분다는 걸 안겁니다. 고사 지낼 때 깃발을 꽂았는데 남동풍을 부르기 위해 기에다 갑자甲子 글자를 새겨 놨답니다. 60갑자의 기점이자 따뜻한 남동풍을 부르는 주문이었지요. 아재 개그를 좋아하는 저는,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꼈다해서 '갑자기'라는 말이 거기에서 나온 거는 아닐까 상상해봤지만 그건 아니고, 갑작스럽다에서 온 말이라 하네요. ㅋ
암튼 애동지 때는 따뜻해 잘 쉬는 팥죽 먹지 않고 팥밥이나 팥떡을 먹습니다. 영화에도 그 장면이 나와 나름 고증을 잘 했다 했지요.
애동지 말고 동짓날이 음력 11월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했어요. 양력 달력인 절기를 음력으로 나눈 겁니다. 말하자면 절기는 양력이지만 음력과 같이 봐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나아가선 절기는 양력과 음력의 통합이라 할 수도 있을겁니다.
서울 강동구 도시농업 논 썰매장:아이들을 위해 물을 담은 건 아닌데......
동지 지나면 해가 길어지는데 날은 본격적으로 추워집니다. 이게 이상한 현상이에요. 난로 볼륨을 키운 꼴인데 왜 추워질까요? 비슷한 예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가면 추운 현상입니다. 태양에 8천미터나 더 가까이 갔는데 왜 더 추울까요? 맞습니다. 공기입자에 의한 복사열 때문이에요. 우리는 태양빛보다는 빛이 달군 공기 입자로 열을 느끼거든요. 동지 전에 추워진 공기가 동지 이후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태양의 흐름과 그에 뒤쳐지는 지상의 공기 흐름의 관계를 이해하면 날씨 변화의 기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이런 날씨의 특징은 우리가 속한 몬순기후 지대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고 계절로는 한여름의 무더운 장마에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그에 대해선 하지 때 가서 자세히 말씀드리죠.
최소한 동지 전까지 농부는 겨울 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중 제일 중요한 거는 겨울 한랭건조한 기후로부터 토양을 마르지 않도록 지키는 일입니다. 지금은 온난화로 한랭 문제는 적지만 가뭄 문제는 여전합니다.
그럼 농부는 어떻게 토양을 지켰을까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번째는 월동작물을 심는 겁니다. 대표적인 월동 작물, 곧 겨울을 나는 작물로는 보리, 밀, 양파, 마늘, 시금치 등이 있어요. 월동 작물이 겨울 토양을 지키는 것은 피복(멀칭) 효과입니다. 추위와 가뭄으로부터 땅을 보호하는 거지요. 땅을 놀리지 않아 토양의 생산성을 높여주기도 하고, 사계절 녹색의 농경지를 유지해 주니 탄소중립에도 기여를 할 겁니다. 저는 이걸 작물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사실 겨우내 방치되어 있는 농지를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겨울 사막 같아서요. 겨울에만 국한되지 않고 봄까지 갑니다.
우리의 겨울농사를 높게 평가한 일제 강점기 일본 농학자가 있었어요. 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라는 사람으로 조선의 미개한 농법을 개조할 이른바 식민농학을 퍼뜨리려 왔다가 오히려 조선 농민의 지혜로운 겨울농사를 보고 감탄해 사비로 책까지 썼습니다.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이란 책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었지요. 단작시스템을 근대농법으로 보는 식민농학이라는 선입관은 전제로 깔고 있으면서도 단작과 배치되는 겨울농사 중심의 2년3기작 윤작시스템을 높게 평가한 것만 해도 안목이 꽤 열린 농학자였습니다. 저는 기후위기 시대에 이 윤작시스템이 다시 주목받을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 봅니다,
두 번째는 동지 전까지 땅을 깊게 가는 겁니다. 대략 20센티까지 갑니다. 우리 쟁기는 속의 흙과 겉의 흙을 뒤집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볏이라는 추가 장치가 있어서 가능하지요. 서양쟁기는 그 볏이 없어 좌우로 훑어 놓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볏 대신에 그들은 무거운 쟁기를 개발해 땅을 깊게 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쟁기 개발로 서양은 점토질의 깊고 단단한 땅을 뒤집을 수 있게 되어 2년에 한번 휴경하던 2포식 농법에서 3년에 한번 휴경하는 3포식 농법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무거운 쟁기는 말 4~8마리가 끌만큼 중(重)쟁기였고 지금 트랙터의 원조였던 셈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깊게 갈면 갈린 표토층이 심토를 보호해줍니다. 표토와 심토를 분리시켜 표토까지 이어지는 모세관을 끊어주고 이로써 토양의 건조화를 막아주지요. 저는 이걸 흙멀칭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 외엔 풀로 멀칭하거나 녹비 멀칭법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해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밭에 난풀로 밭을 다 덮는다는 건 양을 감당할 수 없어요. 녹비도 마찬가지에요. 반면 흙으로 흙을 덮는 건 모자람이 없지요.
세 번째는 물을 이용하는 겁니다. 이건 논의 경우인데요, 추워서 이모작이 되지 않는 중부 이북지방에서 많이 했습니다. 벼 수확 후 두 번째처럼 논을 깊게 갈고 바로 물을 담는 겁니다. 겨우내 물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흙도 고와져 논의 보수력(담수력)을 높여주고 둑새풀 같은 논잡초 씨도 죽이고 벼 밑둥 같은 논 유기물 부숙도 도와주지요. 뿐입니까? 겨울 철새들이 날아와 이삭줍기도 하고 벌레도 잡아먹어 똥도 누워주고 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해주는 공생의 현장이 됩니다. 더 재밌는 것은 겨우 내 논의 얼음은 아이들에게 신나는 썰매장이 되어준다는 겁니다. 문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주는 Agri(땅)-culture(문화)의 생생한 현장입니다. 저는 이걸 물 멀칭이라 했지요.
땅을 가는 일이 농사의 시작이라면 농사의 시작은 봄이 아닌 동지라고 애써 역설합니다. 그러나 요즘 농촌에 가보면 겨울 되기 전에 갈아놓은 땅을 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물을 담아놓은 논은 눈을 뒤집고 찾아봐도 없지요. 김장 작물 수확하고 내팽개치듯 멀칭 비닐 방치해 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으니 참 안쓰럽습니다. 고령화와 지역소멸의 현장일 겁니다.
동지 지나면 이젠 바야흐로 농한기입니다. 농한기는 무조건 쉬는 건 아닙니다. 빈둥빈둥 쉬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정중동(靜中動)의 시기이지요. 한 해 농사를 북돋아 주고 일궈 준 하늘과 땅, 그리고 뭇 생명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하려는 이웃들이 있음에 고마워하고, 잘했든 못했든 나를 성찰하고 아무리 기후위기라 해도 한 톨의 씨앗을 즐거운 마음으로 심는 새해가 되길 기원했으면 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