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한국 농산물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가격이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농산물만 비쌀까? 아니다. 대한민국은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가 OECD 전체 2위다. 1위인 스위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교통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생활비용 또한 최상위권이다. 그러니 농산물 가격이 비싼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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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한국은 농지 가격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일본이나 북유럽 대부분의 나라보다 비싸다. 한국보다 농지 가격이 높거나 대등한 나라는 대만, 몰타, 덴마크, 룩셈부르크 정도뿐이다. 몰타와 룩셈부르크는 국토가 아주 작아 개발 압력이 극심하고, 덴마크는 스마트팜과 유리온실 등 고부가가치 시설 농업이 집중된 세계적 물류 허브 국가이면서 국토가 좁다. 우리나라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지대가 높으니, 높은 토지 가격이 농산물 원가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임대료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전남 구례의 중심지 10평 상가 임대료가 월 50만 원 수준이라면, 서울 명동 메인 로드는 월 3,500만 원에서 5,000만 원에 달한다. 명동은 전 세계 상권 임대료 순위에서 9위를 기록할 만큼 비싸다. 땅값이 세계 5위권, 핵심지 임대료가 세계 9위권인 나라에서 농산물 가격만 저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주변국인 일본,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 농산물은 비싸다. 일본은 우리보다 농지 가격이 저렴하다. 반면 대만은 세계에서 지대가 가장 비싼 나라임에도 농산물 가격은 우리보다 30~50% 이상 저렴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대만은 겨울이 없어 3모작이 가능하다. 같은 땅에서 세 번 농사를 지으니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월등히 높다. 또한, 국가가 농지 임대료 상한선을 정하고 엄격히 관리한다. 공판 가격 결정 역시 국가와 대만 농협(농회)이 주도하며 낮은 수수료 체계를 유지한다. 대만의 농산물 공판을 담당하는 타이베이 농산물운송공사는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한다. 한국의 공판 수수료는 약 7% 수준이지만 대만은 3~4%에 불과하다. 심지어 한국은 농산물이 공판장에 도착하면 발생하는 하역 수수료를 농민이 부담하지만, 대만은 이 비용이 수수료에 포함되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의 도매법인을 농업과 관련 없는 대기업들이 운영하며 수익을 챙기는 반면, 대만은 정부와 농협의 합작법인이 운영한다는 점이다. 한국 농협은 규모 면에서 대만 농협보다 6~7배 이상 크다. 하지만 한국 농협의 매출은 대부분 금융업과 수수료 장사에서 나오고, 대만 농협의 이익은 농산물 판매와 유통이라는 본연의 업무에서 발생한다. 한국 농협은 '돈 장사'에 치중하고 있고, 대만 농협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셈이다.
한·일·대 3국은 모두 2차 세계대전 이후 농지개혁에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은 미군정이, 한국은 미군정이 시작한 것을 이승만 정부가 완료했다. 대만 국민당 정부는 본토에서의 패배를 거울삼아 미국의 도움으로 철저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세 나라의 개혁 규모가 가구당 1헥타르(3,000평)로 균일한 이유는 미군정 소속 농업 전문가 울프 라데진스키가 설계한 '성공 공식'을 이식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한 가구가 가장 효율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을 계산한 결과였다.
오늘날 이 세 나라가 아시아에서 독보적으로 번영한 기초에는 이 평등한 토지 분배가 있었다. 만약 지금까지 대지주 밑에서 소작을 하고 있었다면 한국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농업은 지속적으로 몰락하고 있다. 지대가 워낙 높다 보니 신규로 진입하려는 젊은 농민이 없다. 우리 동네나 내 고향에서 농사짓는 가장 젊은 층이 60대 중반이다. 그 아래 세대 농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농산물 가격은 비싼데 농민은 부자가 되지 못한다. 높은 지대와 인건비, 자재비 상승에 기후 변화라는 변동성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유통 문제 또한 심각하다. 금융업의 달콤함에 빠진 한국 농협이 농민과 진정으로 연대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대만 농협처럼 금융 수익을 농업에 재투자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수수료 체계도 개선이 시급하다. 일본은 농협이 수거, 검품, 포장, 물류를 전담해 농민이 농사에만 전념하게 하지만, 한국은 농민이 이 모든 작업을 개별적으로 수행하며 비용을 추가로 부담한다.

결국 한국 농협은 농민에게 가장 비우호적이면서 수익은 가장 많이 챙기는 조직이 되었다. 일본은 직거래 비중을 높여 공판장 의존도를 낮췄고, 그 결과 공판 수수료가 자유화되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한국 농산물 가격이 비싼 이유는 단순히 농민의 탓이 아니다. 높은 지대와 낙후된 유통 구조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농산물 가격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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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산물 가격이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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