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26년 새해를 맞으며, 

『지리산人』 독자들께 특별한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저 날짜 하나 지나가는 것뿐이지만, 우리에겐 흩어지지 않을 희망과 용기가 계속 필요하니까요.

지리산 자락 다섯 개 지역에서 난개발을 막으려고 애써 온 현장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에서 무겁지만 가볍게, 가볍지만 무겁게, 길을 내 온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어 주세요.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새해 복은 넉넉히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지리산人』 드림



 

 

[활동가들의 새해편지] 5. 함양에서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여, 부디 건강하시기를

 

 

아닌 사진2.jpg



“지방 소멸 앞당기는 난개발을 그만두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에서 지곡면으로 넘어가는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이름하여 대광마을이다. 그 마을 초입에 나무 두 개를 기둥 삼아 펼침막이 하나 걸려있다. 펼침막에는 위와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각양각색의 펼침막이 저마다 주장을 담고 여기저기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달랑 한 장만 남아 마을을 지키는 장승 같은 느낌을 준다.



빛도 소음도 없는 곳을 찾아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도시에서 살다가 오래전에 귀농을 한 사람이다. 쓰기 쉽게 이제부터 ‘농부’라 하겠다. 농부는 도시에서 학교 선생을 하다 여차여차한 사정으로 오래전에 명퇴하고, 농부가 되었다. 농부라 해서 농사만 짓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젊어서부터 몸이 시원찮아 몸을 붙들고 씨름하다 보니, 몸(병)에 대한 나름의 식견을 갖추게 되어 ‘몸’을 살리는 운동도 보급하고 있다.


대광마을은 농부가 사는 마을이다. 농부가 이곳에 자리 잡은 해는 2007년. 20년이 다 되어간다. 농부가 이곳을 새 삶터로 정한 것은 개발이 되기 어려운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마을이 워낙 깊은 산속에 있는 데다 이렇다 할 풍광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풍광이 좋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농부는 빛도 소음도 없는 곳을 원한다. 조용히 살고 싶은 것이다. 일 년 열두 달 전 국토가 공사판인 나라에서 그런 곳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농부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개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런 곳이 지금 농부가 사는 대광마을이다.



개발 바람에 깨어진 바람, 그리고 전쟁


조용히 살고 싶은 농부의 바람은 지난해, 그러니까 2024년 1월에 끝났다. 1월 하순, 느닷없이 마을이 개발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잇달아 면에서 주민들에게 사업설명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기 무신 일?” 주민들은 어리둥절했다. 급히 마을회의가 열렸다. 마을회의라 해 봐야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마을 이장이 먼저 들은 바 있어 그것을 주민들에게 들려주었다. 


내용인즉슨, 함양군청이 경상남도에서 시행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 공모사업에 대광마을 개발 사업계획서를 내놓아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사업계획(함양사계포유사업)은 대광마을 일대의 산과 들을 지방정원, 야영장, 첨단농장, 그리고 분양과 임대를 위한 집단 주거지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산 너머에는 골프장도 계획하고 있었다. 목적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이주민을 늘려 군이 없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군의 계획대로라면, 사람이 사는 곳을 제외하고 마을 일대의 모든 땅이 관광지와 이주민들의 터가 될 판이었다. 주민의 삶을 챙겨야 할 군청이 해당 지역 주민도 모르게 사업을 벌여 주민의 삶터를 빼앗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을에 난리가 났다.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주민들은 급히 대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위원장으로 농부를 뽑았다. 마을 이장이 있으나, 이장이 농부의 가방끈이 길다는 이유로 억지로 떠넘겼다. 열 손가락이면 헤아릴 수 있는 주민을 대표하는 대책위원장이라, 기가 찼다. 당장 위원회를 꾸리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주민 대부분이 나이 많고, 어려운 살림이라, 싸움에 나서기 쉽지 않았다. 상상도 못 했던 싸움에 원치 않는 감투(?)까지 쓴 농부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어떻게 이 싸움을 끌고 갈 것인가? 위원장이 된 그날 밤, 농부는 잠도 안 오고 해서 생각나는 대로 싸움 계획을 짰다.


계획은 이러했다. 그나마 주민 중에 싸울 여력이 있는 서너 사람 중심으로 역할을 나누어 맡고,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의 도움도 받기로 했다. 군수에게 면담 신청도 하고 군 의회를 방문, 군의원들의 도움도 받기로 했다. 마을대책위는 먼저 군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군수는 면담을 거절했다. 군의회를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다. 군의원들은 말로만 돕겠다고 했다. 그들은 사업 예정지인 마을에 와서 현장답사를 하겠다고까지 했지만, 일이 벌어진 지 2년이 다 된 지금까지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있다. 군청 담당자들에게 따지기도 여러 차례. 그들은 이미 정해진 사업이라 어쩔 수 없으니 양해하라고만 했다.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싶지 않았다. 단체는 있으나 활동가는 드물고 그나마 나이 많이 들어 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다행히 농부와 같은 녹색당 당원인 민영권, 정기용 두 분이 함께 힘을 실어 주었다. 민 선생과 정 선생은 각각 서울과 화성에서 사회운동을 하다가 최근에 귀농했는데, 귀농해서도 자기 사는 지역사회에 관심을 두고 꾸준히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그 외도 수달 아빠로 알려진 최상두,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다가 귀농한 마용운 님도 우리 마을 일에 관심을 갖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대광마을의 ‘함양사계포유사업’ 뿐만 아니라 지리산권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난개발을 막기 위해 아예 ‘난개발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난개발대책위원회는 ‘함양시민연대’, ‘지리산사람들’과 같은 기왕의 단체들과 연대하여 ‘난개발’에 맞서 싸우기로 하고, 싸우고 있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싸우는 기술, 그리고 휴전


몇 안 되는 사람으로 그런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기자회견이라, 기자회견을 많이 했다. 기자들이 취재를 제대로 안 하거나 취재해도 보도를 안 해서 서운하기는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군청 앞에 가서 시위도 했다. 아침, 또는 점심때 군청 앞에서 손팻말과 방패 팻말을 들고 매고 시위했다. 군청 직원들은 시위대 앞을 지나갈 때 짐짓 모르는 척했다. 시위할 때는 이동식 소리틀을 들고 가서 노래를 틀었다. 노래는 ‘쾌지나칭칭’을 시위에 맞게 고쳐 쓴 것인데, 마을 사람 중에 소리 가능한 이 모두가 참여하여 만들었다. 인기가 좋았다. 인기가 좋은 만큼 군수는 싫어했다. 농부는 농부의 누리그물망(카톡,밴드 등)에 대광마을 사정을 알리고, ‘함양사계포유사업 반대 서명’을 받아 군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짧은 기간 천 명 넘는 분이 참여해 주어 힘이 되었다.


군수는 계속 만나기를 거부하고, 담당 공무원들은 하던 말 되풀이하고, 군의원은 주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아닌 군수의 의원이 되어있고. 결국 법리로 다투기로 했다. ‘지리산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결과는 아직 안 나왔다) 


싸움이 일 년 넘게 이어지자 예상한 대로 주민들의 투쟁 동력이 떨어졌다. 분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함양사계포유사업’에도 변화가 있었다. 주민의 투쟁 때문인지, 군청 자체 사정인지 몰라도 군청의 계획이 변했다. 원래 계획했던 사업을 많이 줄였다. 난개발대책위는 전체 일됨새를 놓고 의논한 끝에 알맞은 선에서 군청과 타협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었다.


주민 대책위는 군청 실무자들을 만나 타협안을 냈다. 안은 이랬다.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내놓아라. 그러면 동의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 이에 군청이 응하여 새로운 계획안을 가져왔고, 주민들은 그 안을 놓고 생각을 주고받은 끝에 맞장구치기로 하였다. 단, 사업을 해나가는 동안 주민의 민원을 군청이 잘 들어주는 것을 사부주(조건)로. 이렇게 하여 2025년 6월부터 대광마을 주민과 군청은 휴전에 들어갔다. 사업은 진행 중이고 주민은 지켜보고 있다.


지리산과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늘 빚을 지고 사는 기분이다. 산이 돈이다, 강이 돈이다, 새가 밥 먹여 주나?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이 해가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지리산과 함께 살고자 하는 모든 이가 부디 건강하기를 바란다.


 

                                  

글쓴이 : 신종권(아닌) 

전 부산한살림이사장, 전 부마항쟁기념사업회이사, 전 5.18기념재단이사, 전 만세협동조합이사장, 현 대광마을사계포유사업반대대표. <통증보감>이라는 이름의 책과 블로그가 있다. 같은 이름의 유튜브도 있다. 어디든지 아픈 데 있으면 찾아보세요.


전체댓글 0

  • 29839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활동가들의 새해편지] 5. 함양에서 :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여, 부디 건강하시기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