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이상과 현실 사이
청년농부 서동형이 가는 길
오늘의 농업, 농사는 지구의 심각한 위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많은 이들이 땅을 죽이는 농사를 마다하고 생명을 살리는 농사를 실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농부들은 시장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도 명징한 사실이다. 어머니 대지가 신음하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농사를 지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식을 키우는 분들에게 원칙과 이상만을 들이댈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현실의 농부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냉정하게 이해하고 보다 섬세하고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청년농부 서동형님과의 대화 속에서 이상(또는 당위)과 그이가 마주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청년농부 서동형님은 젊다. 올해(2026년) 우리 나이로 서른여섯이다. 여자친구는 있지만 아직 미혼이다.
귀농에 이르게 된 과정을 물어보았다.
- 저는 광주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님이 선생님이신 탓에 이리저리 이사를 다녔어요.
- 순천에서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했는데 방송사 취재팀이었어요. 하필 그때가 코로나 시기였는데 고생을 엄청 했어요. 이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오게 됐죠. 그리고 귀농 준비를 1년 동안 했어요.
‘준비’란 어떤 것일까?
- 제가 농업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을뿐더러 내려오면 먹고 살기 위한 기반이랄지 능력이랄지 이런 게 있어야 되니까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어요. 아울러 농협 교육 프로그램이나 청년농부 사관학교에서 기초지식과 실습을 하면서 다양한 준비를 했지요. 그러다가 22년 4월에 귀촌을 했어요.
그에게는 자신의 땅, 농장이 있다.
- 22년과 23년에는 아버지 땅을 증여받아 제 자신의 농장으로 만드는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아버지 일도 도와드리고요. 사실상 그 두 해에는 별로 한 일이 없어요. 수익도 없고 농사도 거의 뭐 망하는 수준으로 했습니다.
- 23년에 수박을 수직 재배하는 시범 사업이 하나 나왔어요. 거기에 참여하면서 25년까지 점차 확대를 했습니다. 하우스가 다섯 동인데 네 동은 수직 재배, 한 동은 포복 재배로 기존 방식으로 키우고 있어요.
- 여름에는 그렇게 제 농사를 짓고 가을에는 아버지 과수원 일을 도와서 함께 합니다. 그 농장은 3,500평인데 거의 다 생과로 한살림에 납품해요.
대화 과정에서 아버님 얘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버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다.
- 아버지가 귀농한 배경은 이래요. 어머니가 늦게 교사로 임용이 되었는데 처음에 해남으로 발령이 났어요. 아버지도 광주에 계속 있기가 좀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어머니를 따라다니시다가 정착할 곳을 정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오신 것 같아요. 구례에 할머니가 주신 땅도 있었고, 해서 구례에 자리를 잡으신 거죠.
- 처음에 감나무를 심는 일부터 아버지가 다 하셨어요. 원래 그 땅은 대나무 밭이었는데 싹 개간을 해서 감나무를 심고 지금까지 키우셔서 이제는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 되었어요.
귀농을 하기까지 아버님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 아니요. 전혀 받지 않았어요! 어느 정도 있기는 했겠지만 저는 제가 선택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 대학 다닐 때까지도 제가 아버지를 도와드렸어요. 수확하고 포장하는 일을 다 도와드렸는데, 나는 커서 농사짓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도시에서 살거야, 이런 생각이었답니다.
- 그런데 아버지께서 계속 권유를 하시긴 했어요. 직장 다닐 때 와서 같이 하면 나쁘지 않다고요.
- 아버지는 굉장히 개방적이셔요. 저랑 편하게 이야기를 다 해요.
아버님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와 경험에 비추어 굉장히 빠르게 농사에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조력자는 농업기술센터? 아니면 아버님?
- 거의 배운 건 없어요. 기술센터에서는 그냥 지원만 받은 거고 연구는 거의 제가 했다고 봐야죠. 아버지랑 이렇게 키우면 어떨까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 수박을 포복으로 키우는 것도 여러 가지인데 수직 재배를 하면 방법이 더 분산될 수밖에 없죠. 수직으로 바꿨을 때 재배하기 편하고 더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되니까 거기에 대한 연구를 했죠.
알기 위해서는 인내를 전제로 한 관찰이 필수다. 청년농부의 진득한 열정이 그려진다.
농사를 짓는 일도 어렵지만 그걸 판매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농부는 장사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지 않으면 헛농사가 된다. 내가 보기에 청년농부 서동형은 이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이 있어 보였다. 아니 그만큼 열심히 알아보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 아버지는 그냥 편하게 공판장에 내자는 생각이셨어요. 저는 그게 아니에요. 공판장에 내면 우리가 제값을 못받아요.
- SNS는 제가 해보니까 인스타든 YouTube든 잘 나가진 않아요. 소비자의 지갑이 열리기까지 쉽지가 않아요. 라이브 커머스나 아니면 스마트 스토어로 제가 직접 알리는 방법밖에 없어요.
- 라이브 커머스도 플랫폼이 되게 많아요. 라이브 커머스 주 고객층이 다 저희 어머니 또래들이어서 많이 보셔요.
멋진 젊은이가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산품을 설명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 작년에 수박이 좀 잘 돼가지고 방송을 탔어요. SBS 생방송 투데이에 나가니까 한 번에 다 품절이 된 거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SBS에서 바이럴 마케팅이 돼서 한 번에 큰 것도 있어요.
그래서 이제 안정적인 판로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지속적인 소득으로 연결이 된 걸까? 길이 만들어진 걸까?
- 음 길은 사실 매번 찾고 있긴 해요,
수확 시기와 주된 소비 시기의 불일치 등 관리의 복잡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요컨대 시장 은 기다리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변화로 긴 시간 흘린 땀방울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대화 내내 입이 근질거렸다. 이 멋진 청년농부는 친환경농업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 관심이 있죠.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가 제초제 치는 거랑 농약 치는 걸 안 좋아하세요. 왜냐하면 아버지 농장에서는 제초제랑 화학비료를 쓸 수가 없어요.
- 근데 저는 어느 정도는 써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풀이 감당이 안되거든요. 천천히 줄여나갈 생각은 하고 있어요. 저도 그게 안좋은 걸로 알고 있고 또 한살림이랑 계속 일을 해 나가려면은 안 써야 되니까 저도 맞춰가려고 하고 있긴 해요. 근데 그게 또 기술력이 있어야 그렇게 할 수가 있거든요. 기술력이 없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 공판장에 가서 내 친환경 수박이랑 일반 수박이랑 비교할 때 가격이 내것이 훨씬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거든요. 오히려 제것이 싸요. 친환경 수박이라 벌레도 좀 먹고 흉터도 좀 있고 예쁘지도 않고 크기도 좀 더 작아요. 그래서 공판장에 내는 거 제일 싫어해요. 그래서 개인 판매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소비자가 그 가치를 알아주니까.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연농법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물론 자연농법으로 상업농을 하는 분들은 아마도 극소수가 아닐까?
- 관심을 가지고 보기는 해요. 근데 현실적으로 이걸 실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해요. 또 제가 그걸 현실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죠. 너무 어려워요. 어렵다고 생각이 드니까 시작을 안 하는 거죠.
솔직하다!
농부라고 하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도시청년의 이미지, 청년농부 서동형은 농사에 회의를 느껴본 적이 없을까?
- 매번 고민하고 좌절도 했어요. 근데 제 자체가 감정의 기복이 없어요. 혼자 생각을 많이 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거죠. 감정을 있는 대로 다 느끼면서 살진 않아요. 제 스타일 자체가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올해도 사실 엄청 실패를 한 거죠. 심지어 하우스를 세 동이나 늘리면서 실패를 한 것이어서 더 힘들긴 했죠.
그가 좌절하는 일이 없기를 빈다.
청년농부 서동형이 기술적으로도 크게 진보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여 우리 농업의 변화를 일구는 일꾼이 되기를 빈다.
미래에 그의 자식들이 아름답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수 있기를, 그 환경을 만들어내는데 그가 한 축을 담당하기를 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는 일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