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못 받아서 억울한가요?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는 2026~2027년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지역으로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과 옥천, 전북 순창과 장수, 전남 신안과 곡성, 경북 영양, 경남 남해 10개 군을 뽑았습니다. 선정된 지역은 2년 동안 달마다 15만 원을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받게 됩니다.
구례군은 이번 사업에서 똑 떨어졌지요. 불만과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옆 동네 곡성이 월 15만 원씩 받게 되자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듯해요. 저도 구례군민으로서 무척 안타깝더라고요. 그러나 우리 지자체가 선정되지 못한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게 있어요. 기본소득이 성장의 도구로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게 뭐가 안타깝냐고요?
기본소득은 성장이 멈춰도 괜찮은 사회를 위해 쓰여야
기본소득은 정부가 시혜적으로 주는 공짜 돈이 아니에요. 우리가 응당 받아야 할 돈이죠. 기본소득은 시민의 권리입니다. 토지를 예로 들어 볼게요. 토지는 원래 인간의 것이 아니에요. 누구의 것도 아니지요. 굳이 따진다면 모두의 것이라고 해 두죠. 누구의 것도 아니던 토지를 사유화해서 이득을 얻은 이들은 ‘모두의 것(공유부)’에서 얻은 이익을 혼자만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여기까지 동의하시지요?
모두의 것을 이용해서 얻은 이익을 혼자만 가져가는 구조에 이의를 제기하며 나온 게 바로 기본소득이에요. 모두의 것을 이용해서 얻은 이익을 모두에게 되돌려 주자는 기본소득은 당연히 우리가 받아야 할 권리인데, 지금까지 사유화되고 있는 거죠. 토지세든, 기후위기세든, 자본세의 형태로든, 모두의 것에서 얻은 이익을 거두어, 기본소득으로 모두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어디서 태어나든, 얼마나 일했든 ‘조건 없이 누구에게나 일정 기간에 나누어 현금으로 각자에게 지급하자’는 기본소득의 다섯 가지 원칙은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기본소득의 철학에서 나왔습니다. 또 이러한 철학은 산업자본주의와 임금노동 중심 사회가 만들어 낸 구조적 불안정과 생태 파괴를 비판한 결과이기도 해요. 생태적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오늘날 기후위기 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지요.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기본소득(엄밀하게 말하면 기본소득이라고 볼 수 없지만)을 성장의 도구로 쓰려고 해요. “나쁜 성장이 아니라 좋은 성장” “불균형 성장이 아니라 균형 성장” 같은 표현을 쓰며,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성장은 신자유주의 시대 성장과는 다를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리고 그 균형 성장의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말하고 있는데요,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이 그저 소비를 유지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보완하며, 성장 동력을 안정시키려는 수단이 돼 버릴까 봐 안타깝다는 거예요. 성장은 화석연료와 자원 채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할 뿐 아니라, 진짜 기본소득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멋진 세상을 포기하는 일이니까요.
시민들이 바라는 건 성장 아닌, 불안 없는 사회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에 관심 두고 기본소득을 주장해 온 이재명 대통령이 기본소득의 철학과 원칙조차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왜 그는 기본소득을 균형 성장의 도구로서 주장하는 걸까요? 이 역시 알 만하지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성장은 표심과 연결되고, 사람들은 탈성장을 혐오하는 대신 성장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더 파고들면 사람들은 성장을 사랑하기보다는 불안을 두려워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월세, 대출, 의료비, 노후, 실직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것이지 성장을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시민들이 마치 성장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줄로만 아는 것 같아요.
성장은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부추겨요. 기본소득으로 더 소비하고, 더 유연하게 일하고, 더 성장한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불안할 텐데, 대체 무엇을 위한 기본소득인지. 이렇게 성장에 매달리기만 하면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이재명 정부가 정말 애써서 풀어야 할 국정 과제가 ‘좋은 성장, 균형 성장, 진짜 성장’인가요? 시민들이 불안해하는 요소들을 없애서, 성장 없이도 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이상 자원과 생명을 약탈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국정 과제여야 해요.
탈성장은 돈 없이 살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불안을 부추기는 경쟁과 과시 소비에서 벗어나자는 거예요. 성장해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성장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일하다가 죽지 않아도 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만큼 일하며,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덜 버리고 덜 소비하는, 모두에게서 얻은 이익이 모두에게 돌아가며, 모두의 것이 누군가에 의해 독점되거나 착취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자는 거예요. 그게 탈성장 사회예요. 기본소득은 바로 이 탈성장 사회를 위한 도구예요. 다른 성장을 위한 도구가 절대 아니에요. 사람들이 덜 일하고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도구여야죠. 기본소득은 성장을 더 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성장에 덜 의존하기 위한 제도로 사용되어야 해요.
그러니 옆 동네가 15만 원씩 받아서 배 아프시더라도, 우리는 못 받아서 억울하시더라도, 지금 우리가 열받아야 할 핵심을 헷갈리지 마세요. 지금 화내야 할 것은 물 건너간 15만 원 혜택이 아니라, 모두의 것으로부터 얻은 이익이 특정인에게 돌아가는 이 자본주의 구조입니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를 또 하나의 성장 도구로 삼아 우리를 불평등과 불안 속에 계속 머물게 하려는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 정책에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진짜 성장’이 아니라 ‘진짜 기본소득’이자 ‘진짜 다른 삶’이어야 하는, 기후위기 시대니까요.
홍버들 (독립연구자)
사진 설명 : 18세기 말 『토지 정의(Agrarian Justice)』를 통해 최초로 체계적인 기본소득 개념을 제안한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내가 주장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며, 박애가 아니라 정의다.” (이미지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5269404 )
이 글은 <봉성신문>에 연재되는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