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⑥ 풀 : 자급하며 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⑦ 상이 : 작은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변화가 시작되는 공간을 함께 만드는 일”
편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자급하며 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작일 거야”
_풀
뭐 먹고살려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이십 대 초반을 보내고 중반이 됐을 때,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당시 저에게 자립이란
‘돈을 벌어서’ 먹고산다는 의미였죠. 제가 밥을 먹고 생활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어요. 그런
저에게 선택지는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벌까?’였어요.
그래도 뭔가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을 벌어야만 먹고살 수 있는지,
어딘가에 취업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지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손으로 뭔가를 하는 일, 맛있는 냄새와 빠른 출퇴근. 뭐 이런
막연한 까닭으로 빵집에서 빵 만드는 일을 시작했어요. 생전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마음만은 ‘장인’의 마음으로 새벽을
열었던 것 같아요. 주로 팥빵을 만들고 오븐에 굽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빵을 만드는 일은 꽤 재밌었고 돈을 벌며
살아가는 것도 만족스러웠어요. 그렇지만 비싸지는 인건비를
감당하느라, 또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산출을 내려는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반죽은 냉동 반죽으로 자리를 대체하고 점차
‘내’가 없어도 되게끔 바뀌어 갔어요. 이런 변화를 맞으면서
빵집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러곤 갑작스레 일본 빵집과
음식점을 중심으로 우핑WWOOFing을 떠났어요.
여행 전 빵집에 다니며 빵을 하루에 수백 개씩 구웠었죠.
그렇지만 우핑을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빵 만드는 온 과정을
‘몸으로’ 느꼈어요. 직원들이 여럿 있는 보통 빵집은 아주 잘
분업화가 되어 있어서 반죽을 치는 사람은 종일 반죽을
만들고, 오븐을 보는 사람은 종일 오븐을 봐요. 그래서
빵집에서 하루 열 시간 일하더라도 반죽, 성형, 굽기 모든
과정을 경험해 보지 못하기도 해요.
우핑을 통해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반죽하고, 발효와 성형을
거쳐 제가 먹을 빵을 구웠어요. 내가 오기 전에 방문했던
다른 우퍼가 적고 간 조리법을 읽고 따라 해 보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항상 성공적이진 않았지만요. 염소 우리를 치우고,
버섯을 따고, 닭 모이를 주고, 요리해서 나눠 먹고 밭일을
돕고, 누군가가 해 주는 집밥들을 먹고, 지역 장터에 판매자로
참여하기도 했죠.
우핑을 하며 다양한 일을 했지만, 크게 보면 주요 일과는
먹을거리를 준비(농사와 요리 포함해)하거나 먹는 것이었어요.
제가 전날 닭장에서 가져온 달걀이 오늘 아침밥이 되고, 며칠
동안 뜯은 쑥이 모찌가 되었어요. 가시 가득한 나무에서
조심조심 꺾은 순은 두릅튀김이 되었고요. 논이 둘러싼 시골
빵집에서 밀을 키우고 제분해 빵이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또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음식’에 대한 관심이 ‘재료’에 대한
관심으로, ‘농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분명 전에 우리 할머니께서도 집 앞 우영(제주도 말로 텃밭)에서 쪽파를 뽑아
오시거나 고구마를 캐거나, 호박잎과 콩잎과 깻잎을 따고
고추를 따 오셔서 밥상을 차려 주셨는데, 그땐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는다’는 행위는 너무
당연해서 내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인식하며 먹은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책이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얻는 간접 경험이
아닌, 내 눈앞에서 ‘생명’이 ‘음식’이 되는 경험을 우핑을 통해
날마다 해 오면서 그제야 깨달은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인지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고 나니까 ‘그
음식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또 ‘그 재료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길러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반대로 농사일을 하면서는
이 아이들이 어떤 음식으로 탄생할지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여행을 하며 사
먹기도 했지만, 점차 배낭에 재료들을 들고 다니며 요리해
먹었어요. 한 해 동안 번 돈을 열 달 정도 여행하면서 거의
다 쓰고 돌아왔어요. 이제 제게는 30만 원이 있었고 당장
다음 달에도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었죠.
그래도 우핑 덕분에 좋은 먹거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우핑은 재밌었지만 농사를 한번 해 보는
체험이나 경험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내 방식대로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집
근처 빵집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고, 할머니의 텃밭을 빌려
작게 휴일 농사를 시작했어요. 농사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앉은키밀, 무화과나무,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을 심었어요.
그땐 아는 게 없어서 ‘일단 심고 보자’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나름 멀칭mulching을 한다고 다 익은 씨앗이 잔뜩 달린
갈대를 베어다가 밭에 뉘어놓기도 했죠. 할머니는 갈대 키울
일 있냐며 한 소리 하셨어요. 할머니는 비닐 멀칭도 안 하고,
토양살충제도 뿌리지 않고, 풀도 그대로 두고, 비료와 농약도
안 뿌리면서 알아서 한다는 손녀를 답답해하셨어요. 가끔은 저
몰래 풀도 베고, 농약을 치고 가시기도 했죠. 아무튼 돈 벌러
일을 다닐 때 텃밭은 제게 숨통이 트이게 하는 공간이었어요.
농사가 잘되고 못 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어요.
착취는 어느 곳에나 있더라
다시 돌아온 빵집에서의 일. 하루에 기본 열 시간 바쁠 때는
열두 시간, 열세 시간씩 하는 노동. 물론 제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사장과 직원의 관계로 일하며 ‘착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사장님에게 착취당하고 있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착취를 인지하기
시작하자 착취가 내 삶 모든 곳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장에서 사장님과 직원 간 착취도 있었지만, 저 또한
인정받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저 자신을 착취했던 것
같아요. 또 빵을 만들어 팔고 사는 모두는 저렴한 비닐
포장지와 일회용 컵과 빨대들을 날마다 쉽고 당연하게 쓰고
버리며 환경과 자원을 착취하고 있었어요. 착취는 고리와
고리로 연결되어 많은 다른 착취를 낳는 것 같아요.
착취당하고 싶지도, 누군가를 착취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솟구쳤어요. 혹시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 내가 먹고 쓰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졌어요. 지금 이렇게 싸게
공급되는 많은 고기와 달걀, 우유가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마침 착취라는 단어 뜻이
‘젖이나 즙을 짜서 취한다’잖아요. 젖소를 계속 임신시켜 젖을
나오게 해, 송아지들이 먹을 젖을 내가 먹어야 할까?
유제품들을 좋아했지만, 그렇게까지 먹어야 하나 싶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싼값에 우유를 먹기 위해 젖소들을 끊임없이
임신시키는 구조. 더 많은 일과 더 늦은 퇴근을 강요당해도
사장님 말에 ‘네’라는 답만 할 수 있는 구조. 이 둘이 무엇이
다를까요? 해결책 같은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마음은 들었어요. 그래도 저는 다행히 이 고리를
스스로 끊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안타까움과 고민이
더해지는 시간을 뒤로하고 퇴사를 선택했어요.
자급과 공유 그리고 믿음
<내일>이라는 다큐에서 ‘퍼머컬처permaculture’라는 단어를
처음 봤어요. 정확하게 뭔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2021년 퍼머컬처 농사를 해 보고, 빵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곡성에서 ‘자연, 자립, 공유’라는
키워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청년 자자공自自共’에
참여하게 되었죠. 한 해 동안 자급 농사를 기본으로
생활기술들을 배우고 익히며 지내게 되었어요. 곡성에서 지낸
한 해는 돈을 조금 벌고 조금 쓰며, 함께 이것저것 배우고, 또
각양각색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확인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생각 차이를 조율하는 시간이었어요.
제가 해 보고 싶었던 퍼머컬처는 가진 것과 필요한 것 사이를
잘 연결해서 함께 잘 살아가게 하는 전략(?)이에요. 밭에서뿐
아니라 제 삶과 공동체 안에서도 공생 관계가 잘 연결되면
좋겠지만, 자자공에서 지내보니 정말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공유 공간에서 공동 생활을 하고 공동 일정을
소화하는 건 일상 ‘수행’과 비슷한 일이었어요. 나의 쪼잔함과
분노 같은 감정들을 자꾸 마주하게 되죠. 누군가가 속이 좁고,
못되거나 나빠서 그렇다기보다는 함께하는 것에 서로
서툴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서 ‘함께’ 지내며 일을
했으니까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계속 마주하며 살아야 하기에 어떻게 그것들을 풀어
나갈지가 지난해 큰 숙제였던 것 같아요.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누구 한 명이 시키고 따르는
관계에 익숙해져 있다가,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다름을 드러내는 자리에 오니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 농사 일정을 정하는 일부터 화장실
쓰는 방식 하나까지 서로 의견을 듣고 결정하려고 하니,
끊임없이 뭔가를 조정하기 위해 회의를 열어야 했어요. 우리는
공동으로 짓는 밭에서 언제 어떤 작업을 할지 주마다
회의했는데, 결국 나중에는 방법을 바꾸어 날마다 공동 일정을
만들기보다는 구역을 나누어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어요.
자자공 생활에서 이런 수평적 결정과 삐거덕거림과 조율
과정을 겪은 덕분에, 공동체라는 게 모두가 생각을 하나로
모아 같은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이 모여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인정받으며 살 수 있는
곳이어야 오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동생산
공동분배로 일을 하면서는 왜 공산주의가 잘 안되었는가를
몸소 느낄 수 있었죠. 자기 일은 그렇게 잘하다가도 공동
일이 되는 순간 책임은 증발해 버려요. 함께 쓰던 여러
호미와 낫들이 공동밭에서 유물처럼 발견되곤 했거든요.
공유라는 말은 참 아름답고 평화롭게 들려요. 위계와 사유가
곧 질서라고 배워 온 사람들이, 그 위계와 사유 공식을
벗어나 무언가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서로 책임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하루하루 부딪침 속에서 배웠어요.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쩔 수 없어’라는 태도가 아니라요. 안
그러면 ‘모두의 것’이라고 공유되는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돼서 방치되고 고장 나 버리죠. 물건이든 생각이든
그것이 공유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가 필요해요. 이 바탕
위에서 만들어진 공유야말로 내가 그토록 의심하고
꺼림칙해하던 착취 구조를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거든요.
우리는 밭을 공유하고, 공간을 공유하고, 일손을 공유하고,
먹거리를 공유하고, 어떤 문제를 고민해 대안을 찾는 시간도
공유했어요. 돈을 매개로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아도, 내가 필요한 것과 내가 가진 것 사이 괴리를
조금씩은 허물 수 있었죠.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
괴리감까지도요. 시간이 필요하고 믿음이 필요해서 조금
어렵다는 것뿐, 착취를 맞설 대안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전문가 아니어도 괜찮잖아
곡성에 내려오며 내가 먹을 것들을 기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그 생각에 ‘논농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요. 끼니마다 먹는 쌀이지만 논농사는 뭔가 밭농사에
비해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누군가가 할 일’이라는 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자자공을 하며 친구들과 작은 논에 손모를
내고 낫으로 수확하고 우여곡절 끝에 탈곡기로 탈곡해
보고서야 논농사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엿기름을
내고, 두부를 만들고, 술을 빚고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그는
일도 사실 엄두를 내지 않던 일이에요. 생각해 보면 늘 먹어
왔던 것들이었는데도요. 요새는 다들 당연하게 사 먹는 것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 예전에는
누구든 해 왔던 과정들이잖아요.(‘잘하는’ 경지에 이르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요.)
요 몇 해 동안 제가 가훈(?)처럼 들고 다니는 문구가 ‘잘 먹고
잘 살자!’예요. 제게 잘 먹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누군가가 주는 것을 제외해서 생각하면요. 좋은
이웃을 두고 서로 나누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지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산된 것을 소비함으로써 그 생산을
응원하며 먹는 방식이 한 가지고요, 내가 스스로 생산자가
되어 잘 먹는 일이 또 한 가지 방식이에요.
둘 다 이 세상에 중요한 일이지만 후자가 제게 있어서는 더
재밌는 일이에요. ‘팥빵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국산
밀과 유기농 팥으로 시간을 들여 빵을 만드는 빵집을 찾는
것도 좋죠. 찾는 소비자가 있어야 생산자들도 그런 생산을
이어갈 테니까요. 그렇지만 직접 앵두팥, 재팥, 흰팥, 비단팥,
검은팥… 갖가지 팥들을 두 알씩 땅에 심고 애들이 커 가는
것을 보고, 풀도 정리해 주고, 익어 가는 대로 따고 말리고
꼬투리를 까서 고르는 일부터 팥들을 물에 불려 두었다가
냄비에 넣고 삶는 일, 빵을 반죽하고 기다려서 구워 내는
모든 일은 참 흥미로워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누군가에겐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 수 있어요. 저렴하게 재료를 수입해
기계로 뚝딱 만든 완제품들을 얼마든지 인터넷이나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이 시기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하고
물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시간과 돈을 아껴서 결국
얻으려 하는 게 행복이라면, 나는 돌고 돌아서 행복을 얻는
대신 내 손으로 얻는 길을 택하고 싶어요. 그 덕분에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팥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어요! 팥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서 지난해에 여기저기 모서리 땅에
심었는데 잘 자라 주었어요. 어떤 팥이 나올지 꼬투리마다 까
보는 재미가 있었죠.
막 돈을 벌기 시작한 노동자이자 소비자였을 때, ‘가격이
저렴한 것’이 제게는 가장 중요했어요. 농산물 가격만 보고
싸다, 비싸다고 말했죠. 그런데 지난 한 해 농사를 지어 보고
그 노고와 시간을 알게 되고부터는 고춧가루 한 근에
20,000원이라는 가격에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너무 저렴한 농산물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저렴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앞서 말했듯 저는 착취당하고
싶지도 않지만 착취를 응원하는 소비를 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내가 먹을 것을 내가 직접 만드는 자급 생산자가 된다는 것은
느리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행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생산량과 효율을 떠나, 내가 심고 싶은 다양한
것들을 심고 요리할 수 있죠. 내 가치관에 반하는 것들이
들어갔는지 일일이 성분표를 확인할 필요도 없어요.
여기 시골에서 지내며 종종 빵을 굽거나 친구들 생일 때
케이크를 구웠어요. 사 먹을 때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비건
지향 친구들을 위해 달걀, 우유,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찾기에는 더 쉽지 않았거든요. 맛은 둘째 치더라도 만드는 게
더 편한 환경이었어요. 발효종, 우리밀, 소금, 물로 식사빵을
굽고, 제주레몬, 쑥, 오디, 산딸기, 단호박, 당근, 밤, 팥… 그
철에 주변에서 구한 것들을 넣어 가며 빵을 만들었어요.
맛있을 때도 그냥 그럴 때도 있었지만 나눠 먹기에는
충분했어요. 가끔 인터넷에 기공이 뻥뻥 뚫린 치아바타나
뤼스틱, 멋지게 쿠프가 나 있는 바게트, 반들반들한 베이글
들을 볼 때면 나도 저런 멋진 빵들을 굽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덜 발효되거나 지나치게
발효된, 시큼하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한 그런 빵들을 구워
내며 ‘완벽’하지는 않아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요. 투박한
빵에다가 근처에서 딴 산딸기로 만든 잼과 만든 땅콩버터를
곁들이면 거의 완벽한 것 같기도 하고요. (좀 아니다 싶은
애들도 어떻게든 살려 내려고 변형에 변형을 더하거나 정
아니면 퇴비통으로 가서 새로운 탄생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더 쉽게 더 잘 나온다는 수입밀을 이용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것, 내 둘레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굽다 보면 언젠가는
나름 꽤 괜찮은 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봐요.
지난해 가을에 밭에 조금 심어 둔 참밀, 흑밀, 앉은키밀이 잘
자라 언젠가는 이 밀로 빵을 구울 거예요.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한 빵.
밭에서는 생각보다 잘 자란 애들도 있고, 씨나 겨우 건진
애들도 있었어요. 저는 뭔가를 시작할 때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고 당연하지만 뻔뻔해 보이는
마음을 가져요. 농사와 여기 생활을 시작할 때도 그랬죠.
다음에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조그마한
자신감도 생겼어요. 제가 자급을 시작하며 벗어던지는 허울은
‘완벽이라는 환상’인 것 같아요. 누군가는 내가 어설프게 만든
것보다 장인이 만드는 빵, 오랜 시간 자연농을 해 온 농부의
채소들과 잘하는 목수가 만든 의자가 더 ‘좋고 완벽한
것’이라고 하겠죠. 그렇지만 제 삶에 필요한 것들은 완벽한
것보다는 내가 계속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상 같은
것들이었어요. 제가 먹고 싶을 때, 뜨끈뜨끈한 식혜를 끓여
먹고, 두부도 만들고, 그때 나온 비지로 찌개도 끓여 먹어요.
남은 비지들을 어찌할까 궁리와 실험도 하고요. 궁금한
씨앗들을 심어 다양한 토종 참외들도 기르고 갓 딴 옥수수를
쪄 먹죠. 이런 어설프지만 하나씩 해 가는 것들이 일상을
채워 가고 있어요. 가끔은 제 실험 정신으로 만들어진 애들을
보곤 친구들이 냄비 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곤 하지만요.
아무튼, 이것들을 기르고 만드는 재미를 접고 다시 착취
구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농촌에 사는 것은 만능인이
될 수 있는 기회!)
사실 제가 하는 일은 누구든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에요.
농사는 땅이 있고 돈이 있는 은퇴자나 이미 어릴 때부터 해
온 누군가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빵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해요. (그런
까닭으로 제가 <<벗자편지>>에 글을 쓰겠다고 덥석 물게
되었죠.)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꼭 필요한 대단한 생산도구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마음속 벽이 자급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자급. 저도 완벽하지 않지만
시작할 수 있었듯, 마음을 먹는다면 누구든 차근차근히 해
나아 갈 수 있을 거예요.
◌ 풀 ◌
밤하늘 속 어둠이 궁금해 천문학을 공부하다가 빵을 만들고
농사를 짓게 되었다.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터라 일단 겪어 보는
것이 답답함을 푸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손으로 뭔가
하기를 좋아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편이다. 농촌에 오니 온갖
일거리가 가득하고 다 손발로 해야 하는 일들이라 아직은 즐겁게
쏘다니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궁리하는 일을 좋아한다.
어디든 있는 풀처럼 누가 애지중지 보살펴 주지 않아도
어디에서든 그곳에 맞게 알아서 잘 살아 있고 싶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