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소한 때 다 못 쓴 대한 편지
겨울잠 속 사는 얘기
소한 때 다 못 쓴 대한 편지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추위가 계속되니 밭에조차 가는 일이 겨우 2,3일에 한번뿐이고 가더라도 일은 아주 적고 둘러보는 것 정도만 하고 집에 오기 바쁘네요. 집에 일 있는 것도 아니고 저야말로 요증 빈둥빈둥 그 자체입니다. TV드라마나 다큐 보고 유투브 쇼츠나 음악 듣고 아니면 같지도 않은 운동이나 아니면 폰으로 게임하듯 글이나 긁적이고 있는데 시간은 왜 이리 잘 가고 밥 먹는 시간은 어떻게 그리 빨리 오는지 참 웃기게도 바쁜 겨울잠(농한기)을 보내고 있네요. 그래도 역시 먹는 일이 제일 좋습디다. 잘 숙성된 김장 김치의 감칠맛은 요즘이 절정입니다. 김치만 있으면 뭘 먹어도 맛 있지 않은 게 없지요. 그렇지만 김치 못지 않은 겨울 채소는 역시 묵나물입니다. 지금은 김치가 세계적인 채소 먹거리가 되었지만 머지않아 묵나물이 뒤를 이을거라 저는 기대하지요. 아마 묵나물처럼 건조한 채소음식을 우리만큼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겁니다. 쳇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말린 채소 먹는 나라는 많은데 대부분 보조재, 첨가재, 양념으로 먹지 우리처럼 나물이라는 독립 반찬으로 해서 일상적으로 또는 제사나 명절 때 주요 음식으로 먹는 나라는 없다네요.
너무 맛있게 먹느라 봄에 올라올 것만 남겨 놓고 다 캐먹은 시금치 기운이 아직 입가에 맴돕니다. 겨울에 먹는 노지 시금치 맛을 아시는지요? 시금치는 추운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푸르른 녹색의 채소거든요. 제가 심는 건 토종시금치라 겨울에 더 강합니다. 씨에 가시가 있어 뿔시금치라 하는데 크기는 작지만 담백하면서 은은한 기운, 그리고 겨울을 이기기 위해 만든 깊은 단맛이 아주 울림이 있어요. 채소 싫어하는 애들도 좋아할 맛입니다. 아이들이 채소 잘 먹지 않는 이유 중엔 질소비료를 많이 주고 키운 요즘 채소들의 찝집한 뒷맛도 클 거라 봅니다. 옛날 분들은 이런 맛을 지리다 표현했어요. 시금치는 특히 질소질 비료를 좋아해 이를 많이 시비하면 크기는 크지만 감칠맛보단 지린맛이 많아져 애들은커녕 어른들도 젓가락을 잘 내밀지 않죠. 저는 질소질이 많은 요소비료는커녕 퇴비도 주지 않고 오줌만 주고 키웁니다. 물론 이도 질소비료이긴 한데 과다시비할만큼 줄 수가 없어요. 물타서 두세번 주고마니 줬다고 하기에도 그렇죠. 다만 토종시금치는 늦가을 또는 이른 겨울과 초봄에나 먹을 수 있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것만큼 길게 먹을 수 없는 약점이 있어요. 근데요, 제철이 아닌 건 차라리 먹지 않는 게 몸에도 좋다고 저는 믿습니다. 수박은 여름에 먹어야지 아무리 건강하게 키운 수박일지라도 겨울에 먹는 게 무에 좋을까요?
암튼 깊은 겨울의 끝자락인 대한이 되니 마음엔 벌써 입춘이 온 것 같기만 합니다. 대한이 소한 네 갔다 얼어죽었다는 뻥처럼 원래 소한보다 따뜻한데 이번엔 대한 추위가 소한 못지 않게 올 것 같습니다. 애동지 드는 겨울엔 소한 대한 추위가 약하다 했는데 이번엔 조금 모자란 듯 해도 겨울답네요. 가뭄이나 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겨울이 좋은 건 애타게 기다리는 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농한기 절정인 소한~대한 때는 몸과 마음 다스리는 것으로 정중동 놀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소한 때 다 못한 얘길 이어서 소개할까 합니다.
우선 여기에선 놀이를 운동으로 표현하겠습니다. 제가 주로 하는 몸 다스리는 운동은 이름 붙이길 이른바 '쫀쫀한 운동'입니다. 이거 진짜 남이 보면 쫀쫀하기 그지 없어요.제가 몸이 불편해서이기도 하고 또 누구나 결국엔 불편해지잖아요. 그래 저를 비롯해 누구나 아무데서나 돈 안들이고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한 건데요, 예컨대 애기 때 배웠던 잼잼, 곤지곤지, 도리도리 운동 같은 거에요. 참 유치하죠? 저는 이중 잼잼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진짜 열심히 하는 건 발끝부터 머리까지 온몸을 두드리는 겁니다. 손가락 끝을 이용하든가 지압봉 같은 걸로 두드립니다. 저는 나무로 만든 오십견 지압봉을 주로 씁니다. 오십견에 좋게 갈고리 모양이라 몸 어디나 두드릴 수 있구요, 특히 손가락 무릅 등 관절염에 좋아요. 하다못해 편두통에도 좋고 불면증에도 좋고, 혈액순환에 참 좋습니다.
어쨌든 저처럼 몸 불편해 유산소 운동 못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할 겁니다. 사실 좋다고 추천하는 대부분 운동은 다리운동에 기반한 것들이에요. 이해는 하지만 다리 못 쓰는 사람들로서는 아쉬운 바가 없지 않지요.
근데 그 좋은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서 사람들은 으레 뒷풀이로 꼭 술을 즐기는 게 안쓰럽지요. 술 좋아하는 저로서도 이해도 가고 부럽기도 하지만 걱정은 떨칠 수 없어요. 더더욱 꼼지락 운동을 권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진짜 추천하고 싶은 쫀쫀한 운동은 숨쉬기 운동입니다. 앉아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자다가도 하고 새벽에 잠이 깨 잠들기 힘들 때도 하지요. 하여간 수시로 하니 누구나 아무데서나 언제나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다리와 몸을 많이 쓰는 유산소 운동은 한 때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반면 숨만 쉴 수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숨쉬기 운동이다라는 거지요. 죽을 때까지 말이죠.
제게 숨쉬기 운동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분 중엔 심장병으로 고생한 선배님이 계셨는데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건 숨쉬기라고 하셨어요. 결국 그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그 병에 관해선 도사가 되신 것 같더라구요. 그래 비유하시길 폐는 심장(구들)의 아궁이 같은 건데 구들을 데우려면 장작도 중요하지만 공기를 잘 통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하셨죠. 특히 공기를 잘 통하게 하려면 잔숨을 다 빼내야 한다 했는데 폐속에 남은 잔숨은 일종의 오염된 공기로 이게 심호흡을 방해해 폐한테도 좋지 않고 심장에도 나쁘다 한겁니다. 그래서 숨은 들숨보다 날숨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폐를 쥐어 짜듯이 날숨을 하면 저절로 깊은 들숨이 들어오게 되어 있죠.
제 호흡운동 방식은 명상이나 단전호흡처럼 가만히 앉아 순전히 숨쉬기에만 집중하는 것이 있고 팔과 어깨를 이용해 근육운동을 같이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절로 허리근육도 강화되고 괄약근 운동 효과도 있어 대장에도 좋지요. 방귀도 잘 나오고 속도 편해지거든요.
숨쉬기 운동은 드러누워서도 할 수 있어 아닌말로 죽는 순간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 싶어요. 운동하며 삶을 마감하는 셈이지요. 그러면 죽음이 덜 힘들지 않을까 기대해보곤 합니다.
겨울 농한기에 죽음까지 생각해보는 건 슬픈 일이 아니라 삶을 더 진지하게 살도록 하는 동력이 될거라 기대합니다. 겨울의 죽음이 봄의 희망으로 부활하는 농한기가 되길 바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