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혼자가 아닌 나, 잘 키우기보다 같이 키우기

 

_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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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찌뿌둥한 날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목욕탕에 간다. 돌 전부터 나와 목욕탕에 들락거렸던 우리 아이들은 목욕탕 가는 걸 놀이터 가는 것만큼이나 좋아한다. 겨우 두 살, 네 살 된 조그만 내 딸들이 탕 안에 의젓하게 앉아서 반신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은 내가 봐도 좀 귀엽다. 동네에 내 또래 젊은이도 거의 없고, 아이 키우는 집도 별로 없는 데다, 그중에 목욕탕을 다니는 사람은 더 드물어서 목욕탕에서 우리는 언제나 시선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신발장에 아이들 신발이 있으면, 사람들은 들어오면서부터 “아이고~ 아가야들 왔나.” 하면서 좋아해 주신다. 존재만으로 기쁨을 준다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을까. 내가 다 기억할 수도 없이 많은 동네 어른이 다 우릴 기억한다. 인사해 주시는데 못 알아 뵈어서 난감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낯선 우리 식구에게 축복을 보낸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고 감사하다.

 

아이들이 목욕탕 가는 길에 잠이 들면, 탈의실에 털썩 눕혀놓고 나 먼저 들어가 씻는다. 아이가 깨면 누구든 아이가 옷 벗는 걸 도와주시고, 아이 손을 잡고 탕에 데려다주신다. 아이들만 탕에 두고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올 때도 걱정이 없다. 누구든 내가 다녀올 때까지 아이들을 지켜봐 주신다. 이런 일상은 목욕탕뿐 아니라 동네 카페도, 길에서도, 어디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이들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육아는 배로 힘겨웠을 거다. 하지만 언제든 나와 아이들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아이 키우는 일이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시스템을 갖춘 공동육아는 아니지만, 내 일상은 공동육아 그 자체다. 공동육아 멤버는 주로 불특정 다수의 산청군민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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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가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서 ‘아이고~ 힘든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라든지, ‘고생한다.’, ‘대단하다.’, ‘애들을 수월하게 키우는 것 같다.’라고 한다. 나는 은근히 뿌듯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아이들을 잘 키운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들을 자연스레 돌봐주도록 육아 환경을 조성해 두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동네에 내놓고(?) 키우는 데에 주저함과 어려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어른들의 기준으로 아이의 존재를 납작하게 만드는 말들도 자주 듣는다. 아이는 달라고 한 적 없는데 과자를 꺼내 보이면서 "나 안 안아주면 이거 안 줄 거야."라고 한다든지,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부당하고 불편한 상황인데도 "왜 징징거려, 울지 마! 왜 떼를 써!" 같은 말로 서둘러 아이의 정당한 감정 표현을 막아버린다든지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분들 역시 아이들에게 악의가 아닌 선의로 관심을 표현한 것이니, 내가 일일이 해명하거나 대변하기도 애매한 순간들이 많다. 그럴 땐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냉랭하고 새침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내 품에 꼭 끼고 있었다면 그런 상황 안 겪었을까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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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 둘을 키우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아이들을 키우면 키울수록 내가 첫 아이를 키울 때 가늠하고 희망했던 모든 기준에 좀 더 가까워지고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철저히 지켜가고 싶었던 그 많은 원칙과 소신들이 얼마나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유로 조정되고, 타협될 수 있는지 배웠다. 좋은 것만 취하고, (내 기준에) 해로운 것은 단 하나도 아이한테 닿지 않게 하는 게 얼마나 불가능하고 아이에게 해로울 수 있는지 배워야 했다. 부모 경력이 쌓일수록 내가 더 대단하고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얼마나 나 혼자서는 육아를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지 점점 더 분명히 알게 되는 것에 가까웠다. 육아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었다.

 

할머니들이 재미 삼아 한 주먹씩 가득 쥐여주시는 달콤한 과자들은 아직도 아찔하긴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 사랑이 얼마나 푸근할까 싶어 나서서 막지 못한 때도 많다. SNS에 흔히 보이는 감성 육아 사진들처럼 언제나 뽀송한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도 싶었지만, 현실을 살다 보니 늘 아이 방에 널브러져 쌓이는 빨래를 어느 날 비효율적인 시간에 걸쳐 아이들과 함께 놀이 삼아 개는 일도 큰 기쁨이었다.

 

이렇게 내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을 좀 더 믿어보고 싶은 의지로, 아이들을 좀 더 세상으로 내놓고 키우려 했다.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일찌감치 아이들을 삶의 주인공으로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만의 세상(어린이집, 놀이터, 키즈카페)뿐만 아니라 목욕탕, 면사무소, 은행, 우체국, 세탁소 같은 일상생활의 세상도 함께 경험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웬만하면 아이들과 함께 다닌다. 아이들이 이 동네를 아주 편안하고 믿음직스럽게 느끼고, 어딜 가도 낯익은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나의 자녀로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이 동네를 경험하고 관계 맺어가면 좋겠다. 왠지 그러면 아이들이 더 단단하게 자랄 것만 같다. 아이들과 늘 함께 다니다 보니, 다른 이들의 손길이 자연스럽게 필요한 때가 생기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런 도움에 기댄다. 내게 손이 부족하면 손이 오고, 아이들을 돌볼 눈길이 부족하면 어디선가 눈길이 채워진다. 그렇게 아이들을 환대하며 어른들의 마음에도 기쁨이 자랄 거라 믿는다.

 

셋째를 가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대단하다’, ‘용감하다’라며 많이 칭찬하고 응원해 주신다. 하지만 막상 내게는 ‘셋째까지 가져보겠어!’ 같은 웅장한 결심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새 아이와 함께 새롭게 조율해 나갈 새로운 우리 식구의 모습이 기대되는 마음이 더 컸다. 우리 집에 새 아이가 또 온다면, 얼마나 곱절로 재미있고 행복할까 하는 생각만 했다.

 

지난여름 무서운 수해가 산청을 휩쓸고 간 다음 날 아침, 남편이 폭삭 물에 잠겼던 딸기 하우스와 작업장을 확인하러 갔을 때, 하필 그때. 나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했다. 수많은 생명이 물에 잠겨 목숨을 잃었던 그날, 내 몸에는 새 생명이 막 싹을 트고 있었다. 지난 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원인으로 기후 재난이 일어났듯이,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훨씬 더 많은데, 그런 세상에서 내가 바라는 대로 이렇게 귀한 생명을 품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이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둘째 때는 임신 사실을 알고 너무 신이 나서 ‘야호! 오예!’를 외쳤다면, 이번엔 마음 깊이 ‘아-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묵직하게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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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도와 세상 사람 모두 다 같이 잘 살고 싶다는 남편의 인생관을 받들어 첫째, 둘째 아이 이름은 ‘서로’, ‘도와’가 됐다. 셋째 임신 소식을 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셋째(와 넷째까지) 이름을 지어주곤 했다. 그 이름들은 대부분 이런 거였다. ‘함께’, ‘사랑’, ‘마음-모아’, ‘행복’, ‘나눔’, ‘모두’, ‘기쁨’, ‘희망’, ‘평화’ … 그 이름들을 지어주는 얼굴들이 하나같이 얼마나 설레어 보이던지. 아마 모두가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일 거다.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인구 과밀이라는 다소 씁쓸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한 사람을 이렇게 귀하게 여기고, 느끼고, 환대하는 마음이 살아있다는 것만큼은 이 지리산 자락의 농촌이 지켜가고 있는 순수한 마음이자 진실한 아름다움일 거다. 이런 곳에서 아이를 낳고, 모실 수 있다는 건 특혜임이 틀림없다. 지리산에 기대어, 앞으로도 아이들과 서로 도와 함께 사는 설렘과 기쁨을 맘껏 나누며 살고 싶다.

 

 


 

글쓴이 : 푸른

대도시에서 자랐지만, 알고 보니 시골살이가 찰떡인 30대 청년. 엄마로 태어난 지 5년 차. 두 아이와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와 함께 날마다 세상을 새롭게 배우고 있다. 어린이, 농촌, 평화, 교육에 대해 늘 생각한다.

 

 

(첫 번째 사진 출처 unsplash, 이후 사진은 모두 필자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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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천사

아이들 키우면서 올라오는 많은 느낌과 생각들을, 이렇게 사랑스럽게 담아내는 푸른님, 따라다니며 그 느낌 안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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