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반달곰1%유람기]

작은 숨으로 쉼을 만드는 공간, 소식다료

 

 

순간적으로 장면이 바뀌는 영화처럼 구례읍 성당 뒷골목을 걷다 보면 갑자기 풍경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소식다료. 반듯한 벽면에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수묵화 같은 인테리어 공간이 나타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작은 숨을 쉴 수 있는 찻집’. 누군가에게 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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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이끌림, ()그리고 구례

 

소식다료를 운영하는 장이 님이 처음 차를 접한 건 12년 전 엄마와 함께한 여행에서였다. 도시에서 커피에 익숙한 그녀에게 차()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그 순간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되짚어보니 그곳은 선암사의 다실이었는데 구례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곳인지, 본인이 구례에서 다실을 운영하며 살게 될지 그때는 몰랐다.

 

여행이 끝난 후 차에 대한 호기심에 폭풍검색이 시작됐다. 마침 회사 근처에서 티소믈리에 과정을 수강할 수 있었고, 한국차를 공부한 이후에는 차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차를, 그리고 대만차, 일본차를 순차적으로 공부해 갔다.

 

사실 5년 전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처음 자리 잡은 곳은 구례가 아니었다. 화개에 머물면서, 남해와 하동, 악양에서 살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검색을 하면 네비게이션이 구례로 길을 안내했다. 볼 일을 보러 구례에 오면 가끔은 구례읍을 탐험하듯이 산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성산 주변을 산책하다가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거기서 주택매매팻말을 발견했다.

 

뭐에 홀린 것 같았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어 계약을 했죠.”

 

그리고 찾아든 불안감. 지인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구례에서 살 수 있을까? 잠도 오지 않았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호호의 숲 류호화 님이다.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묻는 질문에 울음이 터져버린 장이 님의 손을 이끌고 구례의 다정한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여기저기를 안내해줬다. 그렇게 구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꼼꼼히 챙기면서 매일을 화개에서 구례로 출퇴근하다시피 한 공사를 마치고, 239월 소식다료가 드디어 문을 열었다. 

 

 

굳이 호지차여야 하는 이유

 

소식다료는 호지차 전문점이다. 찻집을 준비하면서 손님들이 쉽고 편안하게 차를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호지차를 선택했다. 한국의 차는 격식과 예를 중시하는 느낌이라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반면, 일본의 호지차는 우리나라의 보리차처럼 남녀노소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차로 맛도 구수해서 호불호가 거의 없다는 게 장점이다. 아기도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아기짱차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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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차는 증찜과 건조 후 고열로 로스팅을 하는데, 소식다료에서는 개조한 커피로스팅기로 일주일에 한 번 직접 로스팅한다. 또 소식다료의 호지차는 장이 님의 개성 있는 블렌딩으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커피와 블렌딩한 코히호지차는 때때로 강한 커피향에 유혹되지만 카페인에 민감해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메뉴다. 다과로는 호지차 베이스에 간장과 마스코바도를 졸인 소스를 곁들여주는 소식차병이 있다. 구례사람은 10% 할인된다.

 

호지차를 팔고 있어서인지 일본풍 찻집이라는 후기가 많은데, 약간은 억울한 면이 있다. 인테리어는 깔끔한 걸 좋아하는 주인장의 취향이고, 구비되어 있는 찻잔이나 다구, 소품 등은 대부분 한국작가가 만든 것들이다. 호지차도 일본차를 수입하는 게 아니라 하동 제다원에서 가져오고, 걸려 있는 그림도 구례에서 알게 된 친구가 그린 민화, ‘책가도이다. 굳이 말하자면 소식다료는 주인장의 안목과 취향으로 탄생한 감성과 개성의 공간이라는 것. 소식다료만의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다실이 작고 테이블이 바테이블처럼 배치되어서인지 혼자 오시는 여자 손님이 많은 편이다. 그 중에서도 말없이 조용하게 차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나가면서 수줍게 인스타 메시지를 확인해달라고 했던 손님이 기억난다. ‘그 동안 힘든 일이 많았는데 차를 마시고 이 공간에 머물면서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고맙다.’는 메시지였다.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오히려 손님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왜 찻집을 하려고 했는지 초심을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고.

 

 

0.1초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자연의 힘

 

장이 님은 사실 구례로 오기 전까지는 여행객처럼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그 안의 동식물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구례에서 만난 친구들 덕에 환경이나 동물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반달곰 복원사업이나 오삼이에 대해서도 친구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반달곰 1%가게로 참여하는 것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귀촌해서 세운 목표 중에 하나가 절대 로드킬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단다. 그런데 차도로 뛰어드는 개구리들은 피할 수가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니. 새삼 나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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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 1% 가게로 참여하면서 미리 쿠폰을 알고 오시는 손님도 많지만, 소식다료에서 쿠폰을 보고 관심을 보이시는 손님도 많은 편이다. 입구 옆쪽으로 호지차를 전시 판매하는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함께 자리한 반달곰 쿠폰이 꽤나 존재감 있게 보인다. 손님들이 발견하고 궁금해하면 자연스럽게 설명해드리고 있다.

 

구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 중에 하나가 눈을 들면 어디서나 지리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장이 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출근을 하려고 집에서 나오면 보이는 지리산은 그녀를 0.1초 만에 무장해제시킨다. 도시를 벗어나 귀촌해 살면서도 사실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부대끼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는 순간들은 존재한다. 그런데 그 0.1초의 순간, 평화와 안정이 찾아든다. 신기하고 감사한 경험이다.

 

장이 님의 목표는 앞으로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찻집을 하는 것이다. 살면서 깊이 빠져들게 된 첫 취미가 바로 차()였는데, 그녀는 선암사에서 처음 차를 접했던 그 순간, 그때 알았던 것 같다고 한다. ‘, 나는 죽을 때까지 차와 관련된 일을 하겠구나!’하고. 10, 20년 후에도 구례성단 뒷골목 어느 곳에 소식다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2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 : 강은경

구례 봉서리에서 반달곰1%가게인 '느긋한쌀빵, 느긋한점빵'을 운영한다. 

 

 

* 이 글은 가게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고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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