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농가월령가 첫 시작인 1월령의 1월은 음력의 정월인데요 1월에 입춘과 우수가 든다 했어요. 근데 정확히 말하면 입춘은 정월 1월에 들 때도 있고 섣달 12월에 들 때도 있다 해야 합니다. 반면 우수는 꼭 1월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입춘이 섣달에 들면 봄이 일찍 오지만 춥다했어요. 올해가 딱 그럴 때입니다. 입춘이 음력 12월 17일이거든요. 입춘인데도 요즘 날씨가 춥고 눈 많이 오는 걸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에 어찌 봄이 오는 입춘일 수 있을까요?  아직도 날은 한겨울인데 말이죠.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반드시 봄이 오는 걸 모르는 건 사실 흙을 떠나 콘크리트, 유리, 플라스틱 박스에 사는 사람 뿐이라고 저는 강조합니다. 흙을 밟고 사는 농부, 나아가 흙과 자연 속에 사는 미물조차도 입춘에 봄이 온 줄 알게 되어 있다는 거죠. 어떻게 알까요?

사실 입춘만이 아니고 절기 모두는 기온으로 나누는 게 아니에요. 그럼 뭐로 나누죠? 맞습니다. 절기는 태양의 각도로 나누거든요. 다르게 말하면 해 그림자로 나누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해시계, 곧 앙부일구입니다. 그러니까 절기마다 고유의 해 각도가 있고 해 그림자 길이가 정해져 있으니 흙을 밟고 해를 등지고 사는 생명이라면 다 안다는 거죠.

실제로 아무리 날은 추워도 입춘에 밭에 가보면 봄이 온 지 느낄 수가 있답니다. 정오 근방이 좋죠. 그래서 입춘날엔 꼭 봄맞이 하러 밭에 가자고 역설합니다. 이게 진짜 새해 맞이 일지 몰라요. 동지 다음날 해보다 입춘날 해맞이가 더 새날의 기운을 받는 것이지요. 새벽 일출을 보는 것보다 한 낮 밭에 드리워진 해의 기운을 받는 게 더 새해의 첫 기운이 됩니다. 그 새날의 기운을 듬뿍 담은 게 있으니 바로 입춘 냉이입니다. 입춘 냉이는 지난 가을에 싹이 터 겨울을 난 애에요. 그래서 저는 입춘 냉이는 산삼보다 보약이라고 강조합니다.

 

makamuki0-branch-2143281_1920.jpg

 

아무튼 입춘 맞이를 새해 맞이로 본 조상들은 그 의례로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문구를 붙였습니다. 입춘첩입니다.

새해가 되면 갑자년이니 을축년이니 하고 그러죠. 거기에다 색깔로 동물을 나눠부르잖아요. 올해는 병오년, 빨간말  또는 적토마의 해라고 호들갑이지만 그건 입춘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갑자 달력에서 신정은 아직 새날이 아니거든요.

입춘 근방엔 더불어 음력 정월 설날이 옵니다. 입춘에 앞서 오기도 하고 뒤이어 오기도 하죠. 우리의 설날은 그래서 두 개입니다. 음력 정월 설날과 양력 입춘 설날이 있는 거죠. 명리학 하는 분들은 어느 게 진짜 설날이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둘 다 우리의 설날인데 다만 선후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지금 서양 달력의 신정 설날은 로마에서 시작된 것으로 사실 이는 동지 설날에 근거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합니다. 당시의 천문기술 상 동지날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 해가 길어지는 걸 육안으로 느낄 수 있는 동지 열흘 후쯤을 임의로 삼은 거죠.

그럼 왜 우린 입춘을 새날로 삼았을까요?

천문 기준으론 동지가 기준이지만 동지 이후 본격적으로 추워지니 날씨 기준으로는 봄 기운이 시작되는 날, 곧 입춘을 새날로 잡은 겁니다.

입춘은 12지지로 인寅에 해당하는데요 이를 일년이 아닌 하루에 적용하면 새벽 3시에서 5시까지가 인寅시에요. 이 인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인월에 드는 입춘을 한해의 시작으로 본 것이나 같은 이치입니다. 입춘에 봄이 시작되듯이 인시에 하루가 시작되는 건 닭이 알려주었어요. 새벽을 알리는 알람이었죠. 사실 자시의 자정을 하루 시작으로 한건 좀 그래요. 저 같이 1시쯤에나 잠드는 야행성인 사람은 하루의 시작을 잠으로 맞이하는 꼴이니 말이죠. 오히려 일출을 알려주는 닭 우는 시간이 하루 시작인 게 자연스러울 겁니다. 소한 대한 추위 지나 인월을 정월로 삼은 게 자연스런 것처럼요. 그렇다고 제가 인시에 일어난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아직 한밤중이니 저는 여전히 섣부른 나일롱 農夫인가 봅니다.

그럼 봄은 왜 닭이 아닌 호랑이(寅)를 상징으로 표현했을까요? 곰처럼 제대로 된 겨울잠은 아니어도 겨울잠처럼 웅크리고 지내다 입춘이 되면 기지개를 켜며 질러대는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숲 속에 봄을 일깨워 준다고 했어요. 봄이 되면 언 땅이 풀리며 쩍쩍 갈라지는 금들이 마치 호랑이 포효소리로 땅이 찢어지는 것처럼 느꼈던 것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추워도 농부는 입춘되면 슬슬 기지개를 켜야 하는 까닭입니다. 기지개  켜며 하는 제일 중요한 일은 종자 손질과 거름 준비에요. 씨앗과 흙의 생명을 여는 행위이니 이처럼  성스런 일도 흔하지 않을 겁니다.

 

apnear40-winter-7701553_1920.jpg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태그

전체댓글 0

  • 87634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입춘, 우리의 양력 설날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