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2 - 박두규 

 

고등학교 때, 글내라는 동인지를 만들며 함께 문학을 했던 친구 중 이재형이라고 있다. 문학적 감수성이 나보다 한 수 위였던 이 친구의 글을 부러워하며 시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는 대학생 시절(한국외대 불문과)부터 번역을 하며 졸업 후에도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간행하는 대부분의 프랑스 소설들을 번역해왔다. 그리고 결국은 프랑스로 넘어가 현재는 파리에 살고 있다. 그가 요번에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는 멜리사 다 코스타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하늘은 온통 푸른색 Tout le bleu du ciel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프랑스에서 1백만 부 이상 팔린 책이라고 한다. 나는 다 코스타라는 작가도 모르고 그의 소설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래의 이재형이 올린 글을 읽고 이 작품은 요즘 내가 삶의 화두로 생각하고 있는 존재의 새로움, 새롭게 살기에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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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시작되는 삶을 위하여

 

이재형

 

 

1. 모든 끝은 사실 시작이었다.

 

우리는 흔히 마지막이라는 단어 앞에서 움츠러든다. 마치 그것을 인정하는 일 자체가 패배나 단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리사 다 코스타의 소설 하늘은 온통 푸른색은 이 단어를 뒤집는다.

이 책은 끝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독자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깨닫는 것은 이것이다. 끝은 종착지가 아니라, 삶이 비로소 자기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문턱이라는 사실. 에밀, 서른 살의 젊은 남자는 치명적인 병을 진단받는다. 인생을 다시 설계할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채, 그는 조용하게 사라질 준비를 하는 대신, 뜻밖의 선택을 한다. 그는 광고를 하나 올린다.

중고 캠핑카 동행자 구함. 긴 여행. 목적 없음. 조건: 지나치게 말이 많지 않을 것.”

세상에 둘도 없는 엉뚱한 제안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는 마지막 시간에 여정을 입히기로 한다. 그리고 그 광고에 응답하는 한 여자, 조안. 두 사람은 서로의 과거를 절대로 묻지 않겠다는 약속 아래 하나의 삶을 함께 굴려 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이 만남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또한 삶의 마지막에서 바라본 세계가 얼마나 새롭고, 얼마나 넓고, 얼마나 맑은 푸른색을 띠는지 보여준다. 이 에세이는 바로 그 푸른색에 대한 이야기이다. 끝이 시작이 되는 그 지점에서, 인간이 비로소 자기 삶을 회복해 가는 순간들에 대하여.

 

2. 인간은 언제 진짜로 살기시작하는가?

 

하늘은 온통 푸른색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언제부터 진짜로 살기 시작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질문을 미루며 살아간다. 우리는 계획과 의무, 사회적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척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멀리 보내고 싶었던 감정이나 회피했던 상처들은, 침묵 속에서 슬그머니 무게를 늘려 우리의 영혼을 서서히 잠식한다. 그러나 병이라는 돌발적 통지가 남긴 폭력성 앞에서, 인간은 종종 다른 눈을 얻게 된다. 에밀이 선고받은 병은 다른 말로 하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유예된 시간이었다. 과연 삶을 바꾸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멜리사 다 코스타는 이렇게 답한다. 삶을 바꾸는 힘은 끝에서 바라본 세계의 시선에서 온다. 죽음을 아는 사람은 비로소 삶을 본다. 잃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가진 것의 진짜 명징함을 깨닫는다.

에밀은 죽음을 향해 떠나는 동시에 삶을 향해 떠난다. 그가 캠핑카에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들은, 벼락처럼 의미가 생겨난다. 한 줄기의 빛, 바람의 자잘한 떨림, 나무의 냄새, 모닥불의 소리, 서로에게 말을 아끼는 낯선 사람의 동행. 이 소설은 거창한 사건 대신, 생의 가장 미세하고 사소한 것들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문학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매일 지나치던 세계는, 사실은 아직 단 한 번도 온전히 바라본 적 없는 순수한 푸른색이 아니었을까?

 

3. 멜리사 다 코스타의 문장은 감정이 아니라 체온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언어가 감정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넘어, 언어가 체온을 갖는 순간을 경험한다. 멜리사 다 코스타의 문체는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그녀의 문장은 절제되어 있지만, 그 절제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채워져 있다. 잔잔함과 고요함으로 밀려오는 침묵의 문장들. 폭발적인 묘사가 아닌,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사유의 파동. 독자는 이야기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숨결을 함께 쉰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의 강점은 바로 이 미묘한 정서적 진동이다. 그녀는 서정성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풍경은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비추는 구조적 장치다. 기억, 후회, 상실, 용기, 그리고 다시 살아갈 힘. 모든 것은 자연과의 동행 안에서, 풍경의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밝히고 또 천천히 치유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느끼도록 만든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영혼이 스스로 정화되는 과정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구나.”

이것이 멜리사 다 코스타 문장의 고유한 힘이다.

 

4. 두 개의 상처, 두 개의 비밀, 그리고 하나의 길

에밀의 병만이 이 소설의 중심 축은 아니다. 그와 동행하는 조안 역시 깊고 어두운 곳에 자신의 과거를 묻어둔 사람이다. 이 소설이 단순한 치유여행이야기를 넘어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조안은 에밀의 여행에 합류하지만, 그녀 역시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나온 사람이다.

그들은 서로의 비밀을 묻지 않는다. 묻지 않는다는 약속이 서로를 가볍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묻지 않는다는 것이 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 코스타는 이 아이러니를 천천히, 그러나 매우 아름답게 풀어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장소를 서로에게 제공한다.

이것은 자기 구원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돕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옆에서 말없이 존재해준다는 사실이 어떻게 한 개인을 구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이 두 인물의 여정은 죽음과 삶, 상처와 회복, 도망과 귀환, 상실과 선택의 문제를 모두 품어낸다. 그리고 그 끝에서, 문학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손을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아니, 누가 우리의 곁을 묵묵히 지켜만 주어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가?’

 

5. 풍경이라는 문학, 자연이 인물의 내면을 대신 말하는 순간들

 

하늘은 온통 푸른색의 가장 빼어난 문학적 특징은 풍경과 인물 내면의 동조율이다. 이 소설에서 풍경은 단지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대사의 다른 형태이며, 침묵의 서술자다. 숲의 색이 변하는 순간 인물의 감정도 달라진다. 바람이 갑자기 거세지는 순간, 인물의 갈등도 더 깊어진다. 하늘의 푸른색이 짙어지면, 생에 대한 의지가 되살아난다. 이 모든 연결은 인위적이지 않다.

소설은 풍경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만 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 그 절제는 오히려 독자의 감각을 확장시킨다. 특히 조용한 장면들나무 사이로 비가 스며드는 소리, 모닥불 앞에서의 침묵, 도로 위 캠핑카의 흔들림, 안개가 걷히는 새벽의 산등성이이런 묘사들은 인물의 말을 대신해 서사적 결정을 내린다. 문학적 쾌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폭발한다. 보이지 않는 감정이 보이는 풍경 속에 녹아들어, 독자의 눈앞에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순간. 멜리사 다 코스타는 풍경 묘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마음도 자연처럼 회복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6. 이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질문

 

소설을 읽고 난 뒤 남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삶의 핵심을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다시 태어나는가. 하늘은 온통 푸른색은 거창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삶의 한복판에서 작고 사소한 것들을 건져 올린다.

한 사람의 미소, 조용한 아침 공기, 함께 타는 불빛, 누군가가 말없이 내 곁에 있는 시간. 인생은 사실 거대한 목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천천히 살아가는 법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인생은 어느 날 문득 온통 푸른색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것을 바라볼 여유를 허락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른다.

 

7. 이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가 문학 독자를 위한 마지막 권유

 

문학을 읽는 사람은 단순한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너머에 있는 세계의 구조, 감정의 층위, 삶의 깊이를 탐색한다. 하늘은 온통 푸른색은 그런 독자를 위한 작품이다.

 

 

이 책은 인간 존재의 본질, 상실을 대하는 태도, 삶이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진실된 시선을 탐구한다. 문학적 완성도, 서정성, 구조적 탄탄함, 정서적 깊이.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읽는 동안 우리는 여행자가 된다. 에밀과 조안이 보는 풍경을 함께 보고, 그들의 침묵을 함께 들으며, 세상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삶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독자는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었다. 우리가 고개를 들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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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박두규

시인, 지리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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