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입춘에 봄이 일어선다지만 사실 아직은 땅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몸으로 체감하긴 이릅니다. 요즘 처럼 입춘 이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더하죠. 그러다 땅속의 양의 기운이 체감되기 시작하는 게 바로 우수입니다. 속담에 우수비에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 했어요. 실제로 우수에 비 오는 경우가 많지만 찔끔 오고 마는데 밭에 가보면 제법 온 것처럼 땅이 질퍽하죠. 언땅이 녹아서입니다.

그런데 올 해 우수엔 비는 오지 않았네요. 밭에 가보니 비는커녕 땅에 가뭄기가 제법 느껴집디다. 좋은 조짐이 아니에요. 날은 풀렸지만 언땅이 녹으면 흙이 좀 끈기가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으니 말이죠. 흙이 가물면 산불화재도 걱정이지만 봄 농사에도 좋을 일 하나 없습니다.


우수 전 후로 대보름이 옵니다. 추석 보름과 함께 대보름은 달도 크고 밝지요. 그 달이 밝지 않다면 좋은 징후가 아니라 했어요. 대기에 습이 많거나 저기압이란 얘긴데요, 봄이 땅속에서 잘 일어나려면 대기가 맑아야 양의 기운이 많아 흙의 음기운을 더 잘 깨울텐데 말이죠.

옛말에 멀리 일 나간 자식 설엔 못 와도 대보름엔 꼭 온다 했어요. 아무리 늦어도 대보름부터는 농사일 시작해야된다는 뜻이죠. 그만큼 대보름부터는 확실히 날이 풀리니 농한기는 이제 끝이라는 거겠지요.

대보름에 하는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행사는 농사 시작을 알리는 축제 놀이였습니다. 빈 깡똥으로 하는 쥐불놀이는 아마 일제 강점기 이후 통조림 통, 페인트 통이 흔해진 이후 생긴 것으로 원래는 들녘에 솔가지 횃불이나 새끼줄 등에 불씨 담아 불을 놓았답니다.

아무튼 이런 불놀이는 기본적으로 월동한 병해충 살균과 풀씨 제거의 의미가 있었을거구요, 또 불이라는 양의 기운으로 남은 겨울 기운 제압하고 봄 기운 재촉하며 농사일에 사람들 기운 북돋으려는 축제의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요즘은 화재 위험 때문에 엄두 못내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요.

올해는 우수가 음력 1월3일이니 대보름 12일 전이네요. 그만큼 대보름이 늦으니 봄도 늦고 꽃샘추위도 기승을 부릴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농한기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니 쉴 날이 연장된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에요. 이래저래 바쁠 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하늘은 농부의 게으름을 기달려 주지 않아요. 열심히 한다고 좋은 일만 주지도 않지요. 둘은 주지 않지만 하나는 꼭 준다 하니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냥 내 갈 길 가는 수밖에요.

 

* 대문사진 : 밭에 갔더니 손님이 와 있네요. 음력 2월(묘卯)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먼저 토끼님이 오셨어요. 행동이 민첩하지 않고 살이 찐 걸로 보아 집토끼 같은데 아래밭 선배에게 전화하니 당신 토끼가 달아난 것 같다 하십니다. 혹 월동 작물들 뜯어먹지 않았나 살펴 봤더니 별 문제도 없구요. 늘 제 일이라면 당신 일처럼 도와주시는 선배님의 토끼이니 좋은 소식일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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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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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언 땅이 녹기 시작하는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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