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기후위기 시대 ‘경자유전’의 재해석

 

 

 

“가짜로 (작물을) 심었다가 방치하면 매각 명령해 팔아 버리게 해야 한다.” 지난 24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들어 농지 투기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밝혔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원래는’ 헌법상 농사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한다는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상속 등 특정 예외 요건을 빼면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에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어요. 농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으면 1년 이내에 팔아야 해요.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경자유전이란 말이 정말 헌법에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농사짓지 않는 이들이 땅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요. “현재 국가 통계상 임차농 비율은 이미 60%를 넘어섰으며, 현장의 농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수준은 70%에 달한다.”라고 비판한 전국농민회총연맹도 이 대통령의 경자유전 발언을 환영했어요. 땅을 투기 대상으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데 많은 이가 공감할 거예요. 그렇죠, 그러나, 다만,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경자유전 원칙을 다르게 해석해 적용해야 하지 않을지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

 

 

농사짓기만 하면 땅 소유해도 좋은 걸까

생태적, 사회적 책임지는 경작자에게 우선되어야

 

경자유전의 원래 취지가 무엇인가요? 지주-소작 구조를 해체하고, 농민의 생존권과 자립을 보장하며, 토지를 투기나 착취의 수단이 아니라 생계 기반으로 두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은 상황이 좀 달라졌어요. 농업의 산업화·대규모화, 토지의 금융화·투기화,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붕괴, 농촌 고령화와 소농 소멸이 심해지는 오늘날 상황에서 “농지는 농업인이 소유한다”는 사실만으로 경자유전이 실현되었다, 박수 짝짝짝, 하고 끝내도 될까요?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농사지으며, 지역 먹을거리 자급과 순환 체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토지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한 경작과 책임’에 초점을 옮겨 경자유전을 적용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현행법상 ‘농업인’에 속하지 못했던 생태적 소농(小農)들도 농사지을 땅을 얻기 쉬워질 거예요.

 

소농이란 보통 ‘노동력과 자본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농사짓는 사람’을 일컫는데요,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적 방식으로 농사짓는 소농이 늘어나면 생물다양성이 살아나고 땅이 탄소를 흡수할 능력을 키우며, 지역 자급 기반을 만들 가능성이 커져요. 그러니 오늘날 경자유전의 원칙은 생태적·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작자에게 먼저 농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재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농은 경자(耕者)로 치지 않는 현실,

소농, 청년농, 생태농의 토지 접근권 보장 필요

 

지속 가능한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소농들을 만나러 가면, 열에 아홉은 1천㎡(약 300평)에 못 미치는 땅에서 농사를 지어서 농지원부를 받을 수 없거나, 직불금만 가져가려는 땅 주인에 의해 임대차 계약서를 쓰지 못한 대리 농부들이었어요. 땅심을 살리기 위해 화학 물질을 적게 쓰고, 자연에 주는 부담을 줄이려고 에너지를 덜 쓰거나, 해마다 토종 씨앗을 받아 이어오고, 친환경 농법을 연구하거나, 생태텃밭 교육을 펼치는 주체로 활동하는 소농들이지만, 그들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농민 아닌 농민’이었죠.

 

경자유전에서 경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아야 할까요? 농지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농지 투기를 뿌리 뽑고, 경자유전을 실현하는 것, 너무나 환영할 일이지만, 만약 그 결과가 결국 대규모 농업인 혹은 농지원부상 농업인만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농지 투기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기후위기를 막을 수는 없을 거예요.

 

 

유휴 공유지를 공공 텃밭으로 전환

공동체 기반 농지 신탁 마련 등

 

경자유전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농사짓지 않는 이들이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뿐 아니라, 애초에 땅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생태적 책임을 갖고 농사지으려는 이들이 농사지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필요해 보여요. 예를 들어, 유휴 공유지를 지자체가 도시농업용으로 임시 사용하도록 허가해서 수많은 소농이 텃밭을 무상으로 임대받거나 싸게 구할 수 있다면 좋겠죠. 또, 토지를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공적 자산으로 묶어서 지역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경작하도록 장기 보장하는 공동체 기반 농지 신탁 제도도 조례로 만들어 보장한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경자유전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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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시민의 경작권을 법으로 인정하는 영국에서는 지자체가 시민에게 텃밭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어, 지자체로부터 땅을 임대받아 텃밭을 운영할 수 있는 Allotment(시민텃밭, 공공텃밭)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어요. 사진은 에식스주 새프런 월든에 있는 시민텃밭. (출처: 가디언 Gary Yeowell)

 

 


 


글쓴이 : 홍버들

독립연구자, 지리산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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