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22(수)
 

기후위기를 생각하며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편집자가 전하는 제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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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끝나기 하루 전, 책이 나왔습니다.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는 오랜 시간 준비해 마침내 나온 책입니다. 구례 문척면에 사는 정환이 쓴 책이고, 구례에서 ‘포도시’ 책을 내는 니은기역 출판사가 만든 책입니다. 책을 펴낸 사람으로서, 구례분들께서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만큼 잘 만든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환경 보호 같은 일에 열심히 매달리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살다 보니, 저절로 스며들 듯, 기후위기를 걱정하게 되었어요. 자연스레,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 때도 될 수 있으면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싶더라고요. 얼마나 환경에 도움이 될진 모르지만, 책이 사라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책을 안 만들 수 없다면, 덜 해롭게 만들도록 ‘노오력’은 하자고 생각했어요.

 

 

콩기름 잉크, 너, 뭐 돼?

 

니은기역은 2019년에 『살자편지』를 펴낼 때부터 콩기름 잉크를 쓰기 시작했어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이 전혀 없는 ‘무용제 잉크’가 가장 친환경적 잉크이긴 하나, 국내에서 선택하기가 어려워서, 그다음으로 덜 해로울 (거라고 믿는) 콩기름 잉크라도 쓰려고 했지요. 이번 책에도 콩기름 잉크를 썼습니다. 석유 용제 기반 잉크 대신 콩기름 잉크를 쓰면 인쇄, 건조 및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VOC와 스모그 현상 같은 각종 공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해요. 또, 책을 읽는 분들과 책을 만드는 작업자분들의 건강에도 좋고요. 또, 콩기름 잉크를 쓴 인쇄물은 재생 종이를 만들 때 종이에 묻은 잉크를 지워 내는 탈묵 과정이 기존 잉크보다 훨씬 쉽다고 평가받아요.

 

그런데 이 콩기름 잉크가 좀 더 비싸요. 또 취급하는 인쇄소도 적어요. 그러다 보니, 무용제 잉크만큼은 아니지만 콩기름 잉크도 쓰기가 쉽지 않아요. 콩기름 잉크로 인쇄할 수 있는 인쇄소도 제한되어 있고, 그마저도 책을 소량 찍을 땐 콩기름 잉크를 쓰기가 어려워서요. 인쇄소에 물어보니, 콩기름 잉크 찾는 분이 많지 않아서 콩기름 잉크 쓰는 기계를 따로 들이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이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이건, 소비자한테 ‘콩기름 잉크 쓰자’고 말할 일이기보다는, 출판문화협회나 관련 정책 기관에서 나서서 지원하고 정책을 만들어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말이 길어지니, 다음으로)

 

 

재생종이, FSC 인증 종이, 무표백 종이

(책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물음에 대한 변명을 곁들여)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는 산속에 살던 한 사람을 생태활동가로 만든, 갖가지 새와 숲 생명을 기록한 책이어서, 읽는 동안 그 생명 옆에 선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내용 구성 방식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종이와 인쇄, 제본 방식도 지은이의 철학과 편집자의 의도가 담기도록 고려해 결정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표지 종이와 내지 종이 모두 FSC® 인증을 받은 국내 재생종이를 썼는데, 표지는 100% 재생 펄프가, 내지는 30% 재생 펄프가 들어간 종이입니다. (참고로, FSC® 인증 종이란 산림 훼손을 막기 위해 엄격히 관리되는 숲에서 생산된 목재로 만들어진 종이를 말합니다.) 또, 양면이 ‘쫙’ 다 펼쳐지는 노출사철제본 방식을 선택해서 한 생명을 오래 바라보기 좋게 했는데요, 노출사철제본은 두꺼운 합지를 붙여야 하는 양장본보다 종이와 에너지와 풀을 덜 쓸 수 있습니다. 겉표지를 두르지 않은 덕에 책등에 보이는 매듭끈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책의 핵심 가치를 보여 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아쉽게도, 책을 만들 때 조금이나마 환경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싶어서 선택할 수 있는 방식들은 대체로 ‘보통 만드는 방식’보다는 비쌉니다. (그래서 책값이 그 모양….) 농사로 따지면, 관행농과 유기농의 차이 정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품으로 따지면, 대량 생산품과 수제 생산품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이런 말이 다른 출판인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서 조심스러워요. 그냥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고, 다른 출판인들은 또 자기 나름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책이야말로, 진짜 친환경

 

위에 말씀드린 것들 말고도 여백과 빈 종이 줄이기, 표지에 코팅하지 않기, 인쇄 규격 판형 우선하기, 잉크 적게 쓰기, 도서관 구매 북돋기 등등 여러 방식을 써 보고 있지만, 제가 항상 강조하는 건, ‘나무를 베어 만들어야 할 만큼 좋은 책인가?’ 하는 물음에 먼저 ‘그렇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아무리 친환경 방식을 썼다고 해도, 책 내용에서 소비와 경쟁을 부추기고, 혐오와 차별을 말한다면 그런 책은 안 만드는 게 가장 친환경적일 테니까요.

 

저도 늘 고민하며 책을 만들겠습니다. 또, 제가 하는 방식이 꼭 옳다는 생각도 갖지 않겠습니다. 더 나은 방식을 가르쳐 주시면 열린 마음으로 바꿔 나가고 싶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인간만 살고 있는 건 아니라서, 급격하게 일어나는 기후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존재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루하루 내 선택이 사랑하는 존재들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는 것, 그 생각은 잊지 않고 걸어가겠습니다.

 

 

 



 

 

 

글쓴이 : 문현경 

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 출판사 소개 

니은기역

책 짓고, 농사짓고, 기후악당에겐 짖어요!

틀을 깨는 소리, 순서를 뒤엎는 몸짓을 기록합니다. 생명의 편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아홉 농부가 생태순환의 삶을 담아 쓴 『살자편지』, 에코페미니스트 농부들이 자급하는 몸을 되찾자며 보낸 『벗자편지』, 반달가슴곰KM-53의 삶을 통해 야생동물과 한 터전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오삼으로부터』, 지리산골프장 예정지 숲에 살던 동식물의 목소리를 담은 『집에서 쫓겨났어』, 지키고자 하는 이의 시선을 담은 사진 에세이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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