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길이가 밤낮이 같은 춘분부터는 음보다 양이 세지는 본격적인 양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겨울을 나고 새싹, 새움들이 입춘에 꿈틀거리기 시작해 드뎌 춘분에 얼굴을 드러냅니다. 겨울 되기 전 추워 죽은 것 같던 생명들이 부활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때 부활하신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생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활동하는 양의 시대이니 부활하시기 딱 좋은 철인거에요.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부활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실제로 예수님이 언제 부활했는지 기록도 없고 진짜로 부활하셨는지도 알 수는 없어요. 만물이 부활하는 춘분에 온생명을 대표하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걸로 보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을 겁니다.
한 번은 춘분 직전 어느 성당에서 절기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강의 전 여는 말씀을 하신 신부님이 곧 다가올 부활절의 의미를 얘기해주시는데,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 부활하는 삶 을 사는 게 더 중요하다 하셨지요. 맞습니다. 일일신우일신은 아니어도 적어도 춘분이 되면 부활하는 새삶을 계획하면 어떨까 싶어요. 이게 괜한 얘기가 아닌 게, 예컨대 사람도 춘분이 되어 목욕을 하면 때가 더 나옵니다. 몸이 먼저 부활하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매일 목욕하는 경우가 많아 춘분이 돼도 우리 몸에 내재된 달력이 작동하지 않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희집 마당의 삽살개도 춘분이 되면 몸에 진드기가 생기기 시작하죠. 온생명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겁니다.
동양에선 춘분이 되면 용이 하늘로 승천한다 했어요. 용은 하늘의 메신저로 여겨 임금은 용이 새겨진 용포를 입었지요. 임금은 천자, 곧 하늘의 아들로 여겼으니 기독교와 비슷하죠. 춘분에 승천한 용은 여의주 물고 비를 뿌려주며 만물의 성장을 돕다 추분이 되면 하늘에서 내려온다 했어요. 이젠 성장을 멈추고 이삭과 열매를 맺어 후손을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불을 뿜으며 만물을 죽이는 서양의 드래곤과 대조되죠. 사실 이건 날씨의 차이를 닮은 겁니다. 우리의 여름은 비 많이 오는 것과 반대로 서양의 여름은 건조하고 따갑기만 하니 다 죽는 거죠. 용이 문제는 아닌 거에요.
작물 중 춘분에 부활하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늘입니다. 우리는 마늘 먹고 인간이 된 후예답게 마늘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먹고 좋아하죠. 사실 마늘은 참 희한한 작물이에요. 한 쪽 심어 여섯쪽 수확을 하니, 한 알 심어 몇천알 이상 거두는 곡식에 비하면 한심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몇 천알의 기운이 여섯쪽에 집약된 것으로 본다면 완전히 얘기는 달라지죠. 그것도 추운 겨울을 견디며 춘분에 지 스스로 부활한 것을 보면 저는 마늘이야말로 성聖스런 기운을 품은 작물이라 봅니다. 그런 마늘을 먹고 버텼으니 곰이 인간될 만하고 드라큘라가 마늘 보고 도망 갈 만 하지 않겠어요? ㅎㅎ
근데 재밌는 것은 곰이 먹은 마늘은 지금의 마늘과 다르다는 거에요. 지금 마늘은 이집트나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라 그걸 먹지는 못했을 거라는 거죠. 제 생각엔 아마 달래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우리 땅에서 오랜 세월 자생한 원조(야생) 마늘이거든요. 아니면 산마늘이라고 하는 명이일지도 모르겠어요. 달래는 20년도 더 전에 다섯뿌리 얻어다 심은 게 지금 우리 밭엔 지천입니다. 어제부터 달래장 만들어 밥에 비벼먹으니 봄이 입안에 한 가득이더이다. 요즘은 명이가 또 한참 올라오고 있어 아내가 오늘은 명이에 달래장을 비벼 두부와 치즈를 넣어 국적 불명의 샐러드(겉절이)를 비벼 주는데 반주를 걸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암튼 제가 사는 안산 같은 중부지방에선 겨울되기 전 씨마늘을 심고 얼지 않게 볏짚 덮어주면 춘분에 싹이 올라옵니다. 그러다 꽃샘추위가 가시는 청명 즈음해 볏짚 벗겨주고 웃거름을 줍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 소한 전까지 따뜻한 날이 많아 마늘 싹들이 많이 올라왔어요. 그러다 소한 대한 추위, 입춘 후 꽃샘추위까지 이어져 마늘의 동해 피해가 클까봐 걱정도 컸지요. 다행히 얼어죽거나 동상을 입은 애들은 많진 않아 겉으론 그럭저럭 괜찮은 편인데 속은 안보이니 어떨지 모르겠어요. 수확해 봐야 정확한 건 알겠죠. 그냥 하던대로 웃거름 주고 남은 꽃샘추위 걱정되어 약간 흩어진 볏짚 잘 덮어주고 왔습니다. 하늘은 늘 농부를 전적으로 도와주진 않는다는 걸 떠올리면서 말이죠. 어쩌겠습니까.
* 대문 사진 : 춘분 한 참 전에 캐 본 마늘, 겨우내 잠만 잔 게 아니었습니다. 거의 뿌리 없는 마늘을 심었는데 겨우내 땅 속을 파고 들어 이만큼 뿌리가 자랐아요.
** 마늘은 우리나라에서 한지형과 난지형으로 나뉜다. 필자 안철환 선생이 농사짓는 안산은 한지형으로 겨울이 오기 전 싹을 거의 내밀지 않고 땅속에서만 성장한다. 반면에 남쪽에서 재배하는 난지형 마늘은 푸른 잎을 낸 상태로 겨울을 난다.(편집자)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