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하면 생각나는 사람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이촉 시인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꽃, 하면 생각나는 사람

지천에 꽃들로 어지러운 봄, 꽃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노란 후리지아는 폐쇄 병동에서 근무할 때, 생각에 빠져 있던 한 여인의 얼굴, 후리지아는 그녀의 앙다문 입술, 콧방울 따라 고통이 배어나던 눈빛. 그 눈빛은 툭 하면 터질 듯한 아우성, 아니 텅 비어버린 마음, 그녀와 함께 햇빛 내린 창가에 앉아 있었다. 그녀만 아는 동굴에서 그녀가 한숨을 쉬면 후리지아가 노랗게 피어나는 듯했다. 그녀는 뒷짐을 지고 목적 없는 배회를 했다. 누가 목적 없는 배회라 했나? 후리지아가 해마다 목적 없이 피어난다고 생각해? 아니, 그 아픔을 가슴 깊이 묻어버린 탓이라고. 땅속 깊이 묻어버린 탓이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려고. 문득 생각나는 그녀와 후리지아, 장날 꽃집에서 후리지아를 보았다. 자꾸 뒤돌아보았다. 그 향이 자꾸 따라왔다.
담장을 넘어 핀 꽃을 보는 일은 특별하다. 구월이면 담 밑에 떨어진 주홍빛 능소화를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능소화는 가정간호사 근무 당시 기관절개를 하고 비위관을 통해 밥을 먹던 소녀 같다. 나는 1달에 한 번 능소화 피어있는 집을 방문한다. 안녕, 능소화, 그녀의 목에 걸친 기관 절개관을 교체한 후 가래를 뽑고 비위관을 교체한다. 그리고 능소화에 말을 걸지, 능소화는 누워서 눈으로 답하고 때론 물가래로 말을 걸지. 어쩌면 좋아 퉁퉁 부어버린 물관이 보이는 것 같다. 능소화는 부은 물관의 시간을 견디고 있다. 그 곁을 견디는 어머니가 있고 함께 견디는 아버지가 있다. 그 그늘에서 저절로 뿜는 물가래를 닦는 손길이 노련해서 마음이 아팠다. 소녀는 외출이 필요할 때 그 시간은 병원으로 옮긴다. 수술실로 옮긴다. 퉁퉁 부어오른 능소화 꽃잎. 나는 오므리고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능소화의 시간에 잠겨 있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