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자개를 먹고 있는 수달, 날카로운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는 동자개는 먹기 까다롭습니다. 연어도, 수달도 살기 위해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먹이를 사냥합니다.
봄은 생명이 싹트는 계절입니다. 뭍에는 꽃이 피어나고 계곡에는 개구리들이 생명을 낳고 강에는 새 생명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합니다. 이 중에는 연어도 있습니다.
연어는 북태평양으로 넘어가 2~4년 정도 지내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고향인 강과 하천으로 돌아옵니다. 바다를 지나 강을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하천의 상류로 올라갑니다. 고향의 향기를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겁니다. 강물을 지나 산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계곡물을 만나면 비로소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온 것을 깨닫고 미래의 씨앗을 심습니다. 고향의 모습은 자갈과 굵은 모래가 깔린 맑은 계곡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는 녹록지 않습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계곡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연어는 온몸을 던져서 오르기 때문입니다. 오르는 과정에서 지느러미가 부서지고, 비늘이 벗겨지는 고통을 견디며, 강을 거슬러 계곡을 올라갑니다. 모든 고통이 끝나고, 씨앗을 심고 나면 그들은 자신의 몸을 고향의 계곡물에 바칩니다. 온몸을 다한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몸은 그 과정 속에서도 다른 이들의 생명을 키우기 위한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보시와도 같습니다. 수달과 새들에게... 그리고 그들이 먹다 남은 몸은 다시 다른 까마귀나 까치, 너구리의 먹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연어의 보시를 받은 이들은 그 힘으로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워냅니다. 죽어서도 값진 그들의 희생은 강이 생명의 원천임을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어족자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일대기는 국가의 자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몸’을 탐하는 자들은 ‘적’으로 규정합니다. 그들의 몸은 ‘자원’이기에 ‘자원’을 축내는 수달은 ‘적’입니다. 연어의 ‘몸’ 속의 알들은 생명을 만드는 원소가 아니라 하나 하나가 ‘돈’이어서 빼앗길 수 없기에 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치고 그들의 귀향을 막아섭니다.
하지만 여기서 막아서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더 괜찮은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돌아갈 고향은 이제 없기 때문입니다. 조상들이 찾아들던 고향 땅은 ‘고향의 강’ 사업으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제 후손들의 고향은 ‘어항’이 되어버렸고, 그들의 기억 속 고향의 향기는 어항 속 살균된 물의 향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계속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이유는 아직 몸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모습(향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신을 막아서는 그물이 사라지고 ‘진짜’ 고향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계속해서 온몸으로....

▲ 베스는 '어족자원'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자원이 다른 자원을 먹어 치우자 다시 '악'으로 규정하고'퇴치'를 외치고 있습니다. 물론 베스, 황소개구리와 같이 외래종이 기존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하지만 황소개구리의 개체수가 알아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면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었다는 것 입니다.
이 기사는 봉성신문에도 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