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연대 순례하는 청명9
냉장고와 탈핵

냉장고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지리산 집에 있는 전기냉장고를 여름이 시작되면 전원을 켜고, 추석이 지나면 끄곤 합니다. 1년에 3개월 정도 켜는 셈이지요. 지난해에는 집 뒷곁에 약 1.5미터 깊이로 구덩이를 팠습니다. 땅굴 냉장고라 부르는데, 김치를 비롯한 여러 음식들을 보관하였습니다. 바깥 온도와는 다르게 일정히 선선함을 유지합니다. 짱입니다.
이렇게 전기냉장고를 덜 사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전기냉장고는 너무 많은 것을 감춥니다. 문을 닫는 순간 내부는 하나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됩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채우게 됩니다. 보이지 않으면 잊게 되고, 아직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뒤편에서 조용히 상해 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들을 발견하고는 버리게 됩니다.
땅굴 저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곳은 드러나는 공간이었습니다. 내용물을 확인하고,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고, 버려지는 일이 줄어들며, 음식은 더 분명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 말이죠. 종종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그때는 전기냉장고가 없었지만 계절에 따라 먹었고, 적으면 덜 먹거나 남으면 나누어 먹었습니다.


지금은 더 많아야 한다는 압박과, 더 편리해야 한다는 기대가 쌓이며 우리의 감각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기준에 따라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 대표성을 가지는 물건이 전기냉장고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있으니까 쓴다.’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가?’
사실 제가 냉장고 얘기를 하는 것은 탈핵운동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탈핵이 비움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움은 개인과 사회를 포괄하여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이 아닌, 정신적 비자율성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폐해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핵문제 또한 에너지와 관련된 하나의 사회적 비움의 대상입니다. 저에겐 탈핵은 수많은 비움에서의 하나입니다. 핵은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지탱하는 에너지원으로 현재와 미래의 생명을 망가뜨리는 폐해가 따릅니다. 그래서 탈핵을 비롯한 모든 비움을 이름하여 ‘탈핵비움실천’을 해보자고 다닙니다. 비워야 할 게 많은 물질주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3월 말 마감을 앞두고 지방 의회 의결을 거쳐 울주군과 영덕군은 대형핵발전소를, 기장군과 경주시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유치 신청을 완료하였습니다.
합리적이지 못한 수많은 사례들로 점철된 핵발전. 이를 용인하는 우리 사회의 난제를 어디에서 풀어가야 할까요? 그래서 탈핵의 수만 가지를 연상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거 풍으로 치자면 ‘민중의 힘’이 살아날 방법이 없을까?를 궁리하게 됩니다. 신규핵발전을 가시적인 거리 행동으로 막는 만남과 순례, 피켓 시위, 기자회견, 작고 큰 집회 등의 탈핵운동도 있습니다. 더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돈과 편리’로부터의 탈출, ‘적정한 소비’로의 전환이라는 비움실천도 탈핵과 연동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냉장고 얘기를 들추었네요. 험난한 탈핵정세를 시민사회의 비움의 지혜로 극복하자는 작지만 절실한 마음으로요.



요즘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길을 나섭니다. 서울 광화문에서의 거리 행동에 나서기 위함입니다.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먼저 이동하는데, 숙소는 대부분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 공간을 이용합니다.
제가 소속된 ‘신규핵발전소저지전국비상행동’ 탈핵직접행동팀의 활동은 전에 말씀드린대로, 기존의 ‘광화문탈핵목요행동’에서 ‘광화문청와대탈핵행동’으로 변화했습니다. 활동의 범위가 넓어진 것입니다. 시간도 목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이틀 동안 이어지고 있습니다.
10:30-11:00 청와대 분수대 앞 피켓 시위
11:30-12:30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피켓 시위
15:00-16:00 광화문-청와대 왕복순례, 해태상 앞 출발
광화문 광장은 젊은 세대와 직장인, 관광객이 많이 오고가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연결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음악’입니다. 익숙한 노래를 바탕으로 가사를 바꾸어 탈핵의 메시지를 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딸에게 추천 받은 여러 멜로디가 아직은 쉽지 않지만, 계속 연습하며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내려 합니다.
00은 내 맘을 모르죠
I can't stop no nuke nuke
아파도 계속 탈핵하죠
I can't stop no nuke nuke
있나요 탈핵해 본 적
00을 뽑아줬는데 왜
투표권 다 줬는데 왜
모든 걸 다 줬었는데 왜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 가사를 일부 차용)
외국인에게 짧은 인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서툰 영어, 베트남어, 중국어, 일본어 몇 마디도 익혀 탈핵 의지를 전하려 애쓰고는 있습니다.^^;;


순례는 기도문을 시작으로, 깃발을 들거나 모형 고준위핵폐기물 통을 두드리며 걷습니다. 무선 마이크와 나팔 마이크를 통해 시민들에게 말을 건네고,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순례단을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이들은 잠시 멈춰 서서 구호를 듣거나, 현수막과 몸자보를 읽고 응원을 전하기도 합니다. 청와대에 도착하면 40초 발언문을 읽습니다. 누구나 발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규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에서 전합니다. 핵발전소 주변지역은 방사능 피폭지역입니다. 신규핵발전소는 피폭지역을 확대하게 됩니다. 주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5조는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존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규핵발전소는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는 사고의 위험을 가지고 있으며,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위험 또한 높아집니다. 신규핵발전소는 대한민국을 핵사고의 위험국가로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정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핵사고를 막기 위해 신규핵발전소를 철회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
놀랍게도 얼마전 뉴스타파가 입수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내부 문건에서는 핵발전 출력을 기존의 50%에서 80%까지 줄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감발운전이라는 이러한 위험한 상태에서 체르노빌 핵사고가 났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무감증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핵사고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섰습니다. 하여 공포는 시민사회의 몫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생명존중은 아예 뒷전에 둔 ‘비국민정부’의 행태를 마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하~~


그렇지만 주변에는 탈핵 연대의 꽃이 하나 둘씩 피고 있음을 봅니다. 엄마의 탈핵운동을 위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고 위트 있는 개사로 힘을 보태는 딸, 탈핵행동을 위해 원형 피켓을 만들고 바느질로 손을 보태준 원도심레츠 사람들, 순례단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녹색연합은 나팔 앰프를, 양기석 신부님은 무선 마이크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과정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주시는 비정규직 꿀잠공간과 쫑쨍이 런닝클럽의 해당화와 재희, 그리고 다양한 도움을 주시는 지리산 실상사의 수지행, 날이 좋다며 한컷의 사진을 담아주신 느티나무 현경, Burn fat not oil( 자동차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몸자보를 두른 실상사작은학교의 한형민 선생님, 따뜻한 차를 순례단에게 제공해주신 나눔문화 사람들. 이처럼 탈핵은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손길과 연대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정한 소비’로 탈핵을 앞당기는 시민사회의 연대도 간절히게 희망하면서... 앗싸 탈핵!! 외쳐봅니다.

글쓴이 : 청명
연대! 나의 순례는 탈핵과 비움의 길, 그리고 연대의 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연대는 ‘각자 할 수 있는 역량과 방법으로 참여하고,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더하여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단절, 좁은 시야, 울타리, 권력, 불투명한 벽을 허물고 서로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여정이다.’ 한마디로 연대는 좋은 친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순례자 청명으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