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5-12(화)
 

 

벚꽃은 우릴 서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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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올해도 아름답습니다. 한참 바라보았어요. 걸음을 멈추고 사진도 찍었어요. 개나리, 목련, 수선화, 산수유 다 한꺼번에 피었어요. 벌들은 혼란스럽겠지만, 풍경은 알록달록 별천지입니다.

 

저기 중동 땅에서는 전쟁 소식이 계속 밀려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 있으니, 좀 민망합니다. 눈을 내리깔아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에요. 아이 교복 빨고, 먼지 쓸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정리하고, 겨울 난 시금치 다듬고, 밥하고, 친정엄마랑 통화하고, 때 되면 돈도 벌고, 뭐 이러다 보면, 전쟁이니 기후위기니 머릿속에서 사라져요. 그러다 그렇게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내다가, 문득, 아주 잠깐, 생각이 납니다. 폭탄, 펑, 와르르. 그러면 또 잠시 멍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이에요.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해요. 낮에 찍어 놓은 아름다운 꽃 사진을 천천히 넘겨 봐요.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말이에요.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릅니다.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 어데서 좁쌀 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 「수라(修羅)」

 

 

 

당장 전쟁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시 속의 화자는 추운 밤에 거미를 세 마리나 문밖으로 내보내요.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리를 내보냈는데, 그다음으로 어미처럼 보이는 큰 거미가 나타났지 뭐예요. 자기가 아까 쓸어 내버린 거미의 어미인가 싶어 문밖으로 또 내보내요. 아까 그 새끼와 만나길 바라면서 말이죠. 죄책감을 느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뿔싸, 이번엔 아주 여린 새끼 거미가 나타났어요. 화자는 가슴이 메요. 밖이 춥지만, 그래도 가족 있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해 문밖으로 내보내려는데, 이 녀석이 자꾸 달아나요. 화자는 서러워해요. 결국 그 작고 여린 녀석을 종이에 받아 문밖으로 내버려요. 화자는 적극적으로 거미 가족을 따뜻한 방에서 살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차디찬 밖으로 내버린 거미들을 생각하며 슬퍼해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지라도, 화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슴이 짜릿하고, 서럽고, 가슴이 메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전쟁이 멈추기를 바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벚꽃을 보다가도, 돈을 벌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집안일을 하다가도, 잠시라도 멈춰서 ‘제발 전쟁이 멈추게 해 주세요.’ 하고 바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은 ‘제발, 지구 생명들이 더 사라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비는 마음과 같을 거예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마음은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과 연결될 테니까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살육과 착취가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잊지는 않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이 멈추어야 한다는 마음,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죄 없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이 지구 가열이 멈추길 바라는 마음, 이런 마음들을 꼭 붙들고 살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전쟁을 막고, 독재자를 막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막고, 일상의 폭력을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적어도, 폭력배 무리와 한편이 되지 않겠다는, 그런 짓거리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은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나를 속이고, 그저 안도하는 걸까


 

그러나 때로는 이런 순간순간의 알아차림이, 고작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헛웃음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소설 속 인물들, 예를 들면, 『몫』에 나오는 희영 같은 인물이 나와 내게 쏘아붙일 것만 같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최은영, 『몫』

 

 

나도 그런 사람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으로, 그저 순간순간 전쟁이 멈추길 바라는 기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그저 부정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마치 내가 내 몫을 다한 것처럼 안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휘청거리다가, 또 마음 한자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시인 윤동주가 적극적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서지 않았더라도, 일제강점기 민족의 비극과 한을 제 몸에 담아 고뇌하고, 제 역할을 의심해 부끄러워하고 우리말 시를 써 온 그의 마음을 소극적이라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깎아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날마다 하는 반성과 깨어 있음이야말로 나를, 그리고 서로를 붙들 힘이 되지 않는가, 또, 스스로 변질되지 않는 길이자,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않게 나를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종말을 늦출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곤 합니다.

 

 

 

서러움과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다시 벚꽃을 봅니다. 여린 것에 몹쓸 짓을 한 것만 같아 느끼는 죄책감이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여 드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우리가 지금 이 아수라장 같은 세상에서 끝끝내 버리지 말아야 할 마음 조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은 시 한 구절이기도 하고,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이기도 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는 따뜻한 선생님의 손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백석의 시 수라가 일제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표현했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시 교육을 하고, 시험 문제로 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국어 선생님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요. 벚꽃이 나리는 계절에도 아름다움을 느낄 새 없이 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일보다, 당장 내 주식이 떨어지는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요. 전쟁의 끔찍함과 아픔은 대체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도 깨어 있는 시민이 있어서, 트럼프의 전쟁을 비판하며 “노 킹”을 외치고, 전쟁에 참전하지 않겠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권리 옹호를 위한 미국 시민단체인 ‘양심과 전쟁 센터’의 소장 마이크 프라이스너는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 문의가 무척 늘었는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렵다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정당성이 없는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게 될까 봐 드는 두려움, 그 두려운 마음이 모여 점점 커지면 좋겠습니다.

 

전쟁을 막는 마음은 큰 결단과 엄청난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느끼는 아주 작은 서러움과 서글픔과 부끄러움, 아픔, 슬픔, 두려움 같은 마음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 ‘서러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그렇게 서로서로 붙잡을 수 있도록, 시 한 구절, 벚꽃 한 이파리, 사랑하는 이의 얼굴, 따뜻한 손길을 일상 사이사이에서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선거철에 더러운 돈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반성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전쟁이 멈추기 어렵다는 것을요. 전쟁은 마치 트럼프 같은 사람만 일으키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가 나날이 하는 선택들이 전쟁이 될 수 있음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양심을 파는 일이 곧 전쟁의 씨앗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치 군인들은 매일 1,000구가 넘는 유대인 시체를 불태우고, 집에 오면 착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가족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썼다고 하지요. 아름다운 봄 사이사이 느끼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이 우릴 구원하길 빌어 봅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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