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지리산에서 보내는 편지 5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 아내가 아픈지 벌써 3년째다. 다행히 열흘에 한 번 통원 치료하며 병을 어느 정도 관리,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날씨가 좀 풀리니 아내는 걷기운동도 하고 봄나물도 캐면서 봄기운을 받아낸다. 나도 밭에 퇴비를 넣고 뒤집어 고르며 텃밭일을 시작했다. 감자와 생강을 심고 상추, 케일, 청경채, 아옥, 쑥갓.. 등 모종들을 시장에서 사와 심었다. 고장 난 외등도 고치고 마사토를 1톤 트럭 분 들여와 패인 잔디밭에 고루 뿌렸다. 집안일은 하다 보면 끝이 없다더니 과연 그랬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많이 달라진 일상 현실에 잘 맞춰 살고는 있으나 언뜻언뜻 어떤 결핍감에 시달리곤 한다. 누구나 그렇듯 갇힌 듯 사는 시간과 공간 아니냐고 달래보지만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오늘, 의사는 마냥 수혈에만 의지할 수는 없게 되니 골수 이식에 대비해서 대상자를 찾는 등 준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 지금까지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싶다. 20대 청춘에 만나 함께 살아온 날이 얼만데 이제야 부부의 깊은 정이라는 게 무언지 느끼게 해주는 날들이다. 같이 외출할 읍내의 오일장을 기다리는 하찮은 일상마저 사소한 기쁨으로 오는 하루하루가 소중한 날이니 그렇다.
전에는 아내를 시에 올리는 일을 꺼렸었는데 요즘은 아내를 대상으로 쓴 시가 많아졌다. 예전 같은 마음에 걸림이 없어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삶의 중심으로 깊게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다. 아내와 관련된 시 2편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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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너무 슬프네
아내를 태우고 화순 암센터 다녀오는 길
가로수 화려한 나무들은 바람에 꽃잎을 날리고
옆자리에서 아내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끊어질 듯 가녀린 노래가 가까스로 이어지는데
..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겨우 한 소절 중얼거리더니
가사가 너무 슬프네, 하며
몸을 차창 쪽으로 뒤척이더니 말이 없다.
아마 아내는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을 것이다.
모처럼 밖으로 드러낸 아내의 마음에
나는 피할 수 없는 과녁이 되어
깊고 선명하게 박히는 화살 하나를 받아냈다.
누군가의 안으로부터
농축된 오랜 슬픔이 새어나 올 때
사람이 지극히 사랑스러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목까지 차오른 심정心情으로
차를 세우고 안아주고 싶었는데
차창을 스치는 가로수처럼
일상은 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사는 일의 무상無常함이야 일러 무엇하랴
어느새 두텁나루숲이 가까웠나
차창에 지리산 자락들이 가득 차 있고
저무는 빛들이 능선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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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세월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화려한 세상에 눈멀어 한세상 꿈속을 살며
사랑도 하며 꿈의 실상實相을 짐작해 보건만
서투른 사랑은 늘 구름처럼, 구름의 그림자처럼
시시각각 변하며 흩어지고
그렇게 형해形骸도 없이 사라지는 사랑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그 사랑에 대한 기억 하나로
아슬아슬한 세월을 건너고
그렇게 사랑을 얻고 또 여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