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기후위기를 생각하는 다른 시선을 찾아서, 문홍현경
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에게, 길가의 마거리트(마거렛) 꽃이 주는 햇살 같은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피어나는 꽃들을 빌려 계속 안부를 묻겠습니다.
지난 4월 22일 구례에서는 지구의 날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2021년부터 해마다 열린 ‘구례 지구의 날 어린이·청소년 기후행동’으로 거리가 시끌벅적했던 지난 해들과 달리, 올해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기후운동을 이어가기로 한 까닭입니다. 지구의 날, 다른 지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소식을 찾아보다가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구 걱정은 시험 끝나고. 지구의 날 10분 소등도 어려운 캠퍼스>. “대학생들에게는 10분의 소등조차 허락되지 않는 ‘중간고사 기간’의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라며 한 대학생 기자가 지구의 날조차 지구를 생각할 수 없는 캠퍼스 현실을 드러낸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보다 개인 성적 따기에만 몰두한다고 쉽게 혀를 찰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합니다. 그들의 무관심은 지난 2022년 대선 토론회에 나와서 “알이백(RE100)이 뭐죠?”하고 묻던 후보 시절 윤석열 씨의 무책임한 무관심과는 결이 달라 보입니다.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경쟁 압박, 우울, 고립과 은둔 등으로 종말보다 못한 현실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권력도 믿을 구석도 없으니 말입니다. 기후위기라는 재난만큼 청년들의 희망 없는 일상은 우리 사회가 조금씩 쌓아 온 ‘느린 재난’이 된 것 같습니다.
종말을 바라거나, 이미 종말을 살고 있거나
고민실 작가의 단편소설 「쓰나미 오는 날」(『홈가드닝 블루』)에 나오는 인물 유경은 쓰나미가 올 거라는 소문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고 출근합니다.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지 묻는 말에 유경은 “다시 취업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합니다. 이 사회에서,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려운 자들은 유경만이 아닐 것입니다. 기후재난보다 시험이 두려운 아이들처럼요. “기후위기로 학교 문 닫으면 시험 안 봐도 되겠지?” 우연히 들은 고등학생 청소년들의 대화였습니다. 이들의 어깨에는 지구보다도 무거운 짐이 들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선 기후위기를 시험 문제로 내는 ‘기후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2025년 8월에 열린 제2회 기후수능의 점수와 1등 학생에 대한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환경 과목이 거의 외면받고, 환경을 담당하는 교사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환경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최 측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들고 나온 대안이 또 다른 시험이고 줄 세우기라니…. 기후수능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 아이들 입에서 “기후위기로 다 한꺼번에 죽으면 시험은 안 봐도 되잖아요.” 같은 말이 안 나올 수 있을까요?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렵다는 유경이들은 환경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좀 덜 불안해할 수 있을까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2025년 여름 한반도에서 폭우로 사망한 이가 37명이었으며, 같은 해 폭염으로 사망한 이는 19명이었습니다. 한편, 2021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집계한 ‘자살 시도나 자해를 한 학생 수(자살한 학생 포함)’는 하루 평균 19.37명이었습니다. 수치만으로 어떤 죽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기후위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또 다른 재난이 가려지고 있음을 똑바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혹은 눈감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폐허’가 이미 재난이나 종말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끔찍하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막을 생태적 전환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종말보다 못한 현실, 각자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기지 말아야
지구의 날에 열린 한 토론회에선 청년들의 ‘기후 우울’을 주목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우울감이나 무기력함, 생태적 상실감에 시달리는 청년이 늘어난 현실을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후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불안을 만드는 방식을 가져와 불안을 잠재우겠다고 합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라, 좋은 직장에 가라, 돈 많이 벌어라, 같은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꼬드깁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방법은 오직 재난뿐이라는 생각에 재난이 오기를 갈망하는 청소년·청년들, 현실이 재난보다 더 무서워서 재난에는 무감해진 무수한 유경이들 그리고 기후위기 불안에 시달려 우울한 청년들이 ‘지금 우리 옆에’ 있습니다. 이것 또한 재난입니다. 각자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미 재난을 겪고 있는 무리에 인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뜨거워진 물속의 물살이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무 같은 생명도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의 역사와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폐허를 우리는 어떻게 계속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2020년 『살자편지』 『벗자편지』 책들을 기획할 때, 독자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똑똑한 소비자와 과학자가 정말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엔? 빈곤과 양극화, 각종 차별과 혐오, 지나친 경쟁과 열등의식, 한계를 모르는 성장 사회의 삶은 기후위기만큼 무서운 일상 아닌가?” 우리 사회가 느린 재난을 만들어 온 방식들을 의심해 보면 어떨까요. 왜 누군가의 일상이 종말보다 끔찍해졌는지 돌아보면 어떨까요. 저는 자꾸 까먹어요. 그래서 동료 지구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 옆의 폐허와 저 너머의 폐허를, 그리고 인간 언어를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폐허를 못 본 척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글쓴이 : 문홍현경
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