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리산 자락에 사는 윤주옥이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곰주옥도 이곳 지리산 자락에 살며 ‘BF-8’로도 불린다. ‘BF-8’은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여덟 번째로 들어온 암컷 곰을 뜻한다.
오늘은 ‘주옥들의 하루’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비교적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보통 새벽 4시 전후에 깨어난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비결은 일찍 자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난 나는 절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아침밥 준비와 빨래도 한다. 아침밥을 먹은 후 외부에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한겨레숲으로 간다. 한겨레숲에 도착한 나는 차를 마시면서 오늘 하루가 어떤 날일지, 무엇을 할지를 생각한다. 그리고는 차밭을 돌아보고, 김철호의 집 앞 상수리나무를 바라본다. 낮밥을 먹은 후에는 풀을 메고, 오후 5시가 넘으면 한겨레숲을 나와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나의 하루가 흘러간다. 그렇다면, 곰주옥의 하루는 어떨까? 장우찬 수의사로부터 들은 곰주옥의 하루는 이렇다. 아침 7시 전후에 일어나 놀거나 쉬다가,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에 오전 밥을 먹는다. 이후 오후 4시경 두 번째 밥을 먹을 때까지 다시 쉬거나 논다. 오후 밥을 먹은 후에도 놀거나 쉬다가 저녁 9시쯤 잠든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이런 하루가 반복된다.
내가 곰주옥을 하루 종일 관찰하고 싶다고 했을 때, 김만우 팀장은 “그 시간 동안 할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 그 말의 의미를 종일 관찰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곰주옥은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누워 있으며, 움직임이 적다. 굴에 올라가 엎어져 있다가 내려와서도 비슷한 자세로 앉아 있다. 곰주옥의 시간은 나보다 백 배쯤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 방 안 굴 아래에서 쉬고 있는 곰주옥 (사진 제공: 구례곰마루쉼터)
그러나 그 느린 시간 속에서도, 곰주옥은 나름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곰주옥의 하루를 관찰하고 장우찬 수의사의 말을 종합해 보면, 곰주옥은 겉보기에는 움직임이 적다. 그러나 실제로는 곰쉼터의 다른 곰들에 비해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관절에도 큰 문제가 없어 굴 위아래를 오가는 것도 잘하고, 위협적인 행동도 없다.
색다른 것은, 다른 곰들은 해먹을 달아줘도 올라가지 못하는데 곰주옥은 해먹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는 것이다. 해먹 위에 누운 곰주옥이라니, 묘한 낭만이 느껴진다. 긴 시간 뜬장에 갇혀 지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올라가는 법을 익혔다. 그 사실이 다행스럽고, 어쩐지 뭉클하다.

↑ 해먹에서 자는 곰주옥 (사진 제공: 구례곰마루쉼터)
사육농장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곰들은 처음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곰쉼터 직원들의 노력으로 한 달 정도 지나자, 날씨가 좋으면 밖에 나와 햇볕을 쬐고, 도구를 넣어주면 가지고 놀기도 한다. 그들이 배워가는 삶은 지리산의 반달가슴곰들과는 다르지만, 곰으로서의 감각을 다시 익혀가는 과정이다.

↑ 곰쉼터 직원들이 넣어준 공으로 놀이 중인 곰주옥 (사진 제공: 구례곰마루쉼터)
내가 곰쉼터의 곰들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곰쉼터 곰들도 도토리를 먹냐고.
장우찬 : 사료를 기본으로 주고요. 부식은 계절에 따라 바뀌는데 지금은 고구마, 당근, 양배추, 단호박 정도입니다.
윤주옥 : 계절에 나는 걸 주는 거네요?
장우찬 : 네, 자연스러운 먹이를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여름에는 수박을 주고, 가을이나 겨울에는 사과나 배 같은 것도 줍니다.
지리산만큼 풍부하지는 않지만,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과일과 채소, 그리고 밤낮의 길이, 온도의 변화 등을 통해 곰쉼터의 곰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계절을 느낀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에서 보면, 곰주옥과 나는 서로 다른 자리에 있다. 그러나 나의 하루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깨어나고 - 생각하고 움직이고 - 먹고(아침밥) - 다시 움직이고 생각하고 - 먹고(낮밥) - 또 생각하고 움직이고 - 먹고(저녁밥) - 잠드는’ 일의 반복이다. 나는 나의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이 하루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곰주옥을 포함한 곰쉼터의 곰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는 각자의 하루가 있다. 그 하루는 특별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생명의 하루를 무너뜨려 왔다. 지금도 곳곳에서 그들의 삶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짓눌리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의 ‘하루’ 역시 우리의 하루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그 하루는 결코 가볍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