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0-12(월)
 

음력 4월에 드는 소만은 4월을 사巳월답게 해주는 절기일 겁니다. 巳월의 상징인 뱀의 기운은 불 화火인데 음적인 화, 곧 음화입니다. 음화는 차가운 불이 아니라 서서히 올라오는 불이라 해야 합니다. 봄의 시작은 양의 호랑이 기운으로 계란의 껍질을 깨듯 땅을 쩍 갈라 시작되지만, 여름은 뱀처럼 스멀스멀 시작됩니다. 이미 봄에서 따뜻한 기운이 쌓여 여름이 시작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소만의 소小는 작다는 뜻이 아니라 부사로서 서서히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거지요.

음 기운의 극인 겨울에서 봄은 양의 시작이라 겨울을 박차고 나와야 하니 그 모습도 양답다면, 여름은 봄과 같은 양의 계열이라 봄을 박차고 나오기보다 봄의 양 기운이 쌓여 서서히 시작되는 게 자연스럽죠.

올 봄은 봄스럽지 않게 겨울의 여운이 끈질기게 남아 있다가 별안간 여름 더위가 곡우 전에 잠깐 나타나더니 다시 꽃샘추위가 반복되었어요. 그리고 소만 되기 5일 전부터 비로소 더워지대요. 소만 전날인 어제는 낮부터 비가 밤새 내리더니 오늘까지 가랑비를 흩뿌렸네요. 그 참에 더위도 누그러지고 가문 날씨도 해갈을 시켜주면서 여름은 스멀스멀 우리 곁으로 기어 오는 것 같습니다.


소만에 서서히 들어오는 더위보다 더 힘들게 했던 게 있으니 바로 보리고개입니다. 지난 해 곳간에 모아 둔 곡식은 떨어지고 새로 먹을 보리는 익으려면 한달을 기다려야 하는 고개입니다. 그럼 무얼 먹고 힘든 고개를 넘어야 할까요? 맞습니다. 이때 먹을 수 있는 건 풀떼기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초봄에 많이 올라 온 냉이 같은 생풀들은 꽃피고 독이 올라 먹을 게 많지 않지요. 이를 대비해 나물을 데쳐 말려서 두고두고 먹습니다. 묵나물이라 하고 건나물이라고도 하죠. 독이 오른 쑥 같은 풀은 푹 데쳐 독을 빼고 쌀이나 밀가루로 쑥개떡, 쑥버무리를 해먹습니다. 초근목피라고 들어봤을 겁니다. 소나무의 부드러운 속 껍질(송기)을 벗겨 다져서 쌀과 섞어 죽을 쑤어먹거나 떡을 해먹기도 했죠. 하다못해 솔잎으로 김치도 담가 먹었다 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비참해 보이기도 할겁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뒤돌아보니 그런 굶주림을 버티게 해준 구황먹거리들이 다 영양식이라는 게 역설입니다. 풀이야 그럴 수 있다손 쳐도 나무껍질이 어떻게 영양식이냐고 따질 겁니다. 그런데 아무 껍질이나 다 먹는 게 아니고 좀 전 소개한 소나무 속껍질 송기는 혈액순환을 돕고 염증 제거에 탁월하다고 합니다. 솔잎 김치도 비타민과 미네랄과 섬유질이 풍부했다네요.

그래도 보리고개 때 대표적인 구황식물은 역시 곤드레일겁니다. 고려엉겅퀴라고도 하는 곤드레를 밥처럼 먹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맛이 없어서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맛 있으면 곧 물려 오래 못 먹잖아요. 나물 맛보단 양념 맛으로 먹는 게 요즘 식당의 곤드레밥일텐데요, 옛날엔 맛있는 양념은커녕 보리밥 한숟갈, 된장 한숟갈에 보이는 건 순 곤드레뿐이었답니다. 자극적인 맛은 없어도 구수한 맛에 담백해 물리지 않기도 했거니와  채소 중 단백질 함량이 높아 밥처럼 먹기에 손색이 없었다는 거죠.

저희는 밥으로 먹기보다 나물로 묻혀  먹거나 쌈으로 먹는 걸 즐기는데 아삭한 식감이 아주 좋습니다.


토종씨앗도 수집하고 옛날 농법도 배우려고 시골 할머니들 찾아 다닐 때 한분이 이런 말씀을 주셨어요. 여름은 거지처럼 나고 겨울은 임금처럼 나야 한다고 말이죠. 다르게 말하면 여름엔 풀떼기나 거친 보리밥을 먹어야 더위를 버틸 수 있고 겨울엔 찰지고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는 거죠. 곰곰 생각해보니 베트남 같은 열대지역의 사람들은 작고 마른 체질이라면 모스크바나 북서유럽 사람들은 덩치도 크고 뚱뚱한 사람들이 많은 게 떠오르더만요. 더위와 추위를 이기는 전략이었을겁니다. 한번은 시베리아 도시로 유명한 러시아 이르쿠츠크라는 도시를 가봤는데 공원의 참새들이 뚱뚱한 거에요. 겨울이 춥고 긴 지역에 먹을 게 뭐 많다고 참새들이 뚱뚱할까요? 맞습니다. 먹을 게 많아서라기보다 추위를 이기기 위한 전략인거죠.

계절 구분 없이 찰지고 기름진 음식들만 먹는 요즘  세태가 아쉽기만 합니다. 고기를 일상적으로 먹는 것도 그렇구요, 하다못해 떡도 죄다 찰떡이에요. 고실고실한 메떡이 사라졌어요. 예전엔 겨울밤에나 찹쌀 떡 장수가 있었잖아요. 여름에 먹는 음식이 아니라는 거죠.


조선시대 임금  중에 풀떼기와 보리밥 즐겨 먹은 분이 있었는데 누굴까요? 바로 영조대왕입니다. 그래서 오래 장수했을 것으로 보지요. 대부분의 임금들이 단명한 이유 중엔 부드럽고 고소한 음식 위주의 식습관이 커요. 예를들면 왕들은 된장을 먹지 않았답니다. 엑기스 간장만 먹었지 된장은 찌꺼기로 본 겁니다. 우리가 자랑하는 세종대왕님은 사실 고기 중독자였어요. 결국 당뇨로 돌아가셨지요. 영조는 풀떼기와 보리밥이 백성들의 천한 밥상이 아니라 지혜로운 건강 밥상이란 걸 어릴 때부터 알았을 겁니다.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맞습니다. 천하디 천한 무수리 궁녀 어머니였겠지요. 근데 제가 더 주목하는 건 영조시대는 할아버지 왕이었던 현종부터 기후위기로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는 사실입니다. 1670 경술년 1671 신해년 2년에 걸쳐 이른바 경신대기근이 발생해 자그마치 100만명이나 굶어죽은 무서운 가뭄이 들이닥친 거에요. 당시는 소빙하기라 해서 추위와 가뭄, 역병 등으로 우리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난리였습니다. 이 난국을 영조는 풀과 보리밥으로 이겨내려 한 셈입니다. 말하자면 근검절약 문화를 퍼뜨리고 몸소 실천한 것이죠. 대표적인 게 강력한 금주정책이었고 농사에선 물 없으면 안되는 벼 모내기를 금하고 직파를 권장한 겁니다.(ebs 역사채널e, 조선 모내기를 금하다) 모내기 방법은 수확량도 높고 제초도 손쉬우며 보리와 이모작이 가능한 선진농법이었지만 가뭄이 들면 한방에 망해버릴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거든요. 기후위기 시대에 이른바 물 없이 농사짓는 한전旱田농법이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서양이나 일본은 기후위기를 제국주의로 극복하려 한 면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위기를 극복하는 거죠. 반면 우리는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의 순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 것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결국은 실패했지만 자체적으로 극복하기 전에 외적이 쳐들어 온 거에요.


어쨌든 기후위기를 대처할 지혜를 보리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조상들로부터 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장황하게 말씀드렸음을 양해 바랍니다. 다만 물 의존도가 너무 높고 외부의 석유화학 자재를 너무 많이 사용하는 지금의 농법은 매우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계하고자 함입니다.


올 봄은 늦은 음력으로 추위가 지속하여 저는 모든 지 늦게 심었습니다. 이제야 상추, 배추를 먹을 수 있고 고추 가지는 아직 모낼만큼 자라지 않아 직파도 병행하고 있지요. 다만 다년생 나물을 많이 심어 3월부터 밥상에 나물이 끊이지 않는 호사를 누리고 있네요. 굳이 심지 않더라도 야생 나물은 좀만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채취할 수도 있습니다. 농사와 채집을 병행했던 우리의 전통 농경문화를 되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긴 글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만 일정.jpg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대문사진 : 필자의 보리고개를 넘게 해준 고마운 곤드레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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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보리고개 넘는 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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