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8-18(화)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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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함을 문제 삼는 인간의 속도에 맞추려 하면, 강도 땅도 산도 한 가지 모양으로 반듯해진다. 어떤 꼴의 재앙이 될지 알 수 없다.

 

 

 

   

친구들과 생강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밭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리하여 올해 생강 농사의 첫 일은, 갇힌 땅 구출하기였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제가 붙인 이름으로, 고랑을 꽉 덮고 있는 부직포를 걷어 내는 일입니다. 이미 있는 부직포를 굳이 걷을 필요가 있는지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몇 해나 묵은 부직포 위아래로는 또 다른 생태계가 끈끈하게 만들어졌고, 또 무엇보다, 걷어 낸 부직포는 또 다른 쓰레기가 되어 매립되거나 소각될 테니 그럴 바에야 땅에 그대로 두어 오랜 세월 뒤 땅으로 돌아가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함께 농사짓는 친구들 생각은 달랐어요. 플라스틱이나 다름없는 부직포가 밭에 있으면 땅이 숨쉬기에도 어렵고, 미세플라스틱이 계속 땅으로 들어갈 것이고, 자연농 숲밭의 순환 기능에 해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저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부직포가 다 벗겨진 우리 숲밭의 변화가. 그래서 친구들 의견에 따르기로 했어요.

 

 

내가 땅을 구출한 걸까, 땅이 나를 지켜본 걸까

 

갇힌 땅 구출하기가 시작됐습니다. 땅에 깔린 부직포와 현수막 겹겹을 벗기려고 힘을 주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덮개를 뚫고 자란 풀들이 덮개와 땅을 이어 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풀과 흙과 낙엽의 무게까지 더해져 잘 들어 올려지지 않았지요. 있는 근육, 없는 근육을 다 끌어모아 덮개를 들어 올리니, 그 밑에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얽히고설킨 잔뿌리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도망가느라 정신없는 무수한 곤충 그리고 지렁이들…. 아, 지렁이가 정말 많았습니다. 마침내, 고랑 흙이 다 드러났습니다. 비를 맞은 뒤로 더 다채로운 음영을 보이던 숲은 자기가 품은 밭에서 플라스틱 덮개가 사라지자 훨씬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제 눈에는요. 숲도, 숲속 생명들도, 오늘 우리가 한 일을 좋아할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겐 늘 의아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게 맞는가? 내가 하는 짓이 정말 옳은가? 내가 또 무언가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지난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갇혀서 내 고집만 부리며 산 것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러고 사는 게 아닌지 흠칫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자꾸 질문해 보는 거예요. 숲밭에서도 그랬어요. 시간의 속도가 인간과는 다른 생명들에게 인간의 속도에 맞추라고 강요한 게 아닌지, 뜨끔해서요.

 

 

인간의 속도로 만드는 ‘보기에 좋은’ 함정

 

얼마 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리산 국립공원 구상나무 보전 세미나 및 자연적응실험>이 있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과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일부 지역에서 말라 죽은 일을 두고 걱정해 왔습니다. 고심 끝에, 그들은 미리 세석에서 기른 구상나무 묘목 160분을 헬기로 날라, 반야봉에 심었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많은 이가 반야봉 땅을 밟았고, 할 수 없이 일회용품과 에너지가 쓰였고, 다른 곳에서 자란 묘목이 반야봉에 심어졌습니다. 그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숲은, 구상나무는, 그 숲에 사는 생명들은, 좋아해 줄까요?

 

인간이 자연에 대해 아는 건 고작 빙산의 쪼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인간은 기다리지 못할까요? 아직 구상나무 죽음을 둘러싼 자료가 충분히 쌓이지도 않았고, 다른 장소에서는 어린나무가 활발하게 자라는 등 지역마다 상태가 다를뿐더러, 자연의 천이 과정을 고려하려면 수십 년을 지켜봐야 할 일인데도, 왜 더 지켜보지 못할까요. 우리 사회가 복잡한 것을 견디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요? 불확실하고 복잡한 것을 못 견뎌서 측정할 수 있는 성과와 명확한 인과관계를 자꾸 요구하고, 이런 압력이 거세질수록 세계의 구불구불한 복잡성을 쫙쫙 펼쳐서 통제하려는 게 아닌지. 마치, 한 밭에 한 작물만 쫙 심고, 한 숲에 한 나무만 쫙 심고, 학교에선 아이들을 쫙 줄 세우고, 다양한 개성 같은 건 별종 취급하며 교정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것처럼요.

 

다양한 요인, 가지각색 요소, 저마다 가진 색깔, 무수한 변이를 느긋하게 바라볼 여유가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인간의 속도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들, 딱 거기에 맞춰서 해결책을 내려고 하다 보니 다양성도 사라지고 기다릴 여유도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구불구불, 꿀렁꿀렁, 가지각색, 제멋대로, 울퉁불퉁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것들을 좀 내버려둘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요. 그런 세상이라면, 인간들이 반야봉의 구상나무를 좀 더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 세상이라면, 땅이 맘껏 숨을 쉬고, 아이들도 맘껏 숨을 쉬고, 내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탐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일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세상 어떤가요?

 

 


글쓴이 : 문홍현경 _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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