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은 보통 단오에 가깝게 드는데 올 망종은 음력 4월 21일에 드니 단오와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그래 재밌는 사실은 음력이 늦어 밀, 보리도 따라 늦게 익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평년보다 더 빨라요. 망종 일주일 전인 어제 그제 갑작스럽게 익더만요. 다음 주에 베려던 걸 내일 하려고 부랴부랴 품을 쓰려 합니다. 망종은 망종이더이다. 까끄라기(망) 있는 곡식을 심는 절기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지역에선 밀, 보리 거두는 절기로 봐야죠. 물론 같은 까끄라기 있는 벼는 심는 게 맞긴 맞습니다.
단오(端午)는 오(여름)의 시작이자 끝이에요.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머리(정점)입니다. 최고로 해가 높은 하지가 곧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단오는 하지하고도 관련이 깊지요. 무더위는 그 다음에 오지만요. 아궁이의 불이 달군 다음에야 구들이 따뜻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단오라는 명절은 참 이상한 축제입니다. 보리고개라는 먹을 게 없는 시절인데 무슨 축제를 열까요? 그 이유도 시골 다니며 만난 할머니들에게서 들었습니다. 바로 벼 모내는 축제였어요.
한번은 도시 변두리에 논을 만들어 도시농부들과 모내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 한분이 그러는 거에요. "모내면서 떡도 안 해먹어요?" 맞습니다. 축제니 떡 해먹으며 모를 냈던 겁니다. 그게 단오에 해먹는 수리취떡이죠. 곡식은 귀하고 풀은 많으니 취나물 많이 넣어 떡 해먹은 거겠지요. 모를 낼 땐 꼭 풍악을 펼칩니다. 그것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할머니, 바쁘고 먹을 것도 없어 힘 드는데 빨리 끝내야지 풍악은 왜 울려요?"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힘드니 쉬면서 천천히 하라는 거지." 합니다. 하긴 풍악도 행진곡풍이면 그에 맞춰 일하기 좋을텐데 늘어지는 풍이니 놀면서 하기 딱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재밌는 얘길 해 주십니다. 모낼 때 띄우는 못줄이 원래 우리 방식이 아니라는 얘긴데요, "그거 일제 때 들어온 것이요. 각지게 빨리 심으라는 건데 일 못하는 사람 허리 망가지게 하는 못된 방식이지. 원래는 모꾼이 알아서 제각각 심었지. 막모내기, 판모내기라고 해서 일머리 적은 사람은 천천히, 일머리 있는 사람은 빨리 나가서 한소리 하며 늦은 사람들 흥도 돋우지." 얼마나 재밌게 일 했을지 눈에 그려지대요. 그렇게 제각각 심어도 오와 열이 착착 맞았다니 참 신도 났을 겁니다.
저희 농장의 조그만 논에 이맘 때면 어린이집 유치원 애들 200명 가량이 모내기 체험을 옵니다. 애들이라 못줄 띄워 모심기를 해도 들쭉날쭉 심지요. 보통은 애들 돌아가면 어른들이 다시 심곤 하는데 저는 그냥 놔두고 남은 모를 심습니다. 아이들 지도하던 선생님들이 심는데 못줄 띄우지 않고 막모내기 합니다. 그래도 벼들이 스스로 자리잡아가는데요, 사이가 좁은 데는 벼가 덜 분얼하고 넓은 데는 더 많이 분얼하는 거에요. 좁은 데는 벼가 웃자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더만요. 신기하죠?
옛날에 허벅지까지 빠지는 수렁논의 경우 들어가질 못하니 둑에서 모를 던지는 이른바 투묘 모내기를 했답니다. 오와 열이 맞을리 없죠. 그렇게 모를 던지고 나선 한동안 논엘 가보질 않았답니다, 괜히 미리 가봤다가 어지럽게 펼쳐진 모들을 손보고 싶어 들어갔다간 더 망가뜨린다는 거죠. 그렇지만 까먹고 한참 뒤에 가보면 모들이 알아서 지들끼리 자리잡아 정리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고 하니 참 신기하죠.
어쨌든 그래서 단오는 벼 모내기 축제라는 겁니다. 모를 망종에서 하지까지 짧으면 보름, 물 사정 좋으면 입하부터 하지 지나 장마 전까지 한달 넘게 모를 내니 이렇게까지 긴 축제도 없을겁니다. 그것도 노는 축제가 아니라 일하는 축제, 배불리먹는 축제가 아니라 배곯는 축제였으니 그런 축제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강릉 단오축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모내기와는 무관한 것이 유감인 이유입니다. 제례 굿 놀이 민속행사 등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인데 본질보단 말단이 인정된 것이라 좀 씁쓸하지요.
벼 모내기는 두레라 해서 마을 모두 나서서 니논내논 구별없이 자기 논처럼 모를 냈습니다. 물 사정 좋은 논부터 시작해 과부 장애인 등 노약자 논을 우선 모내기하는 이타적인 공동체 문화였지요. 물론 지주 논도 우선 했겠지요. 그 정도 갖고 두레의 공동체 가치나 기능이 훼손되진 않았을거라 봅니다.
지금은 이앙기로 모를 내니 모내기 공동체 문화는 싹 사라졌어요. 기계가 공동체를 대체한 것인데요, 기계로 조금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농부가 부자된 것도 아니고 농업농촌은 소멸의 위기에 처해있고 식량은 넘쳐나도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는 많지 않으니 농업의 기계화를 환영할 수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기계를 없애면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니 참 씁쓸 할뿐이네요.
그나마 곳곳의 도시농부들의 논에서 모내기 공동체가 살아나고 있어 미약하나마 희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농진청 유전자원센터에서 잠자고 있던 토종벼 400여종을 완전히 복구하는 데 성공한 주역이 바로 도시농부님들입니다. 그많은 종자와 작지않은 논에서 도시농부들은 주말휴식을 내팽개치고 손 모내기를 하며 토종벼도 지키고 모내기 공동체도 이어가고 있습니다.(전국토종벼농부 모임 참고 https://www.facebook.com/share/p/18yEGbU98a/" target="_blank" rel="noopener" data-mce-href=" https://www.facebook.com/share/p/18yEGbU9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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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로 치면 티끌에 불과하나 희망의 씨앗을 이어가고 있기에 노아의 방주가 따로 없고 언젠가 태산이 될지도 모릅니다. 우공이산이 별거겠습니까?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대문사진 : 아이들 두레꾼입니다. 어릴 때 이런 체험을 해 본 사람 중에 큰 인물이 나올 거라 기대합니다. 시골출신 중에 인물 많은 건 오감교육의 현장에서 자랐기 때문 아닐까요? 지식교육은 전문가 키우는 데 맞지만요.